내가 흘린 씨앗 하나가 쑥쑥 자라고 있다.
쌀을 씻고 나온 뿌연 쌀뜨물을 올리브 나무에 주는 일은 식집사인 남편이 제게 맡긴 일입니다. 다른 화분은 작아서 욕실로 들고 가서 물을 듬뿍 주는데, 올리브는 너무 커서 옮길 수가 없어서 자주 물을 주어야하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올리브 나무 옆으로 삐죽 나와 제 존재를 알리는 길쭉한 푸른 싹이 생겼습니다. 남편이 그 싹을 보더니, 쌀뜨물과 같이 떨이진 곡식에서 싹이 난 것으로 아마 쌀이나 보리가 아니겠냐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쑥 뽑아 쓰레기통에 버리려고 하는 겁니다. 깜짝 놀라 뭐 하는 거냐며 다급히 물었습니다. "잡초니까 뽑아야지."라는 남편의 말에, 쌀이나 보리라며 왜 잡초냐고 다시 물었습니다. 올리브 나무 화분에서 올리브가 아니니 잡초로 분류하여 버리려는 것을 작은 화분에 옮겨 심게 했습니다.
'잡초', '이름 없는 들풀'이라는 지칭은 좀 안타깝습니다. 이름은 없는 것이 아니라 모르는 것이고, 잡초는 어떤 기준에서 잡초인지 정의되지 않아서입니다. 키우고자 하는 식물 이외에는 모두 잡초일까요? 살아 있는 것이 모두 생명인데, 사람의 기준에서 선을 가르고, 마구잡이로 들여와 번식한 것은 아닐까요? 핑크뮬리가 유행한 적이 있지요. 지금은 생태계 위해성 2급으로 분류되어 잠재적인 생태계 위해성 때문에 정부 차원의 식재 자제 권고 및 지속적인 관찰 대상이 되는 식물입니다. 예쁜 배경에서 생태계 위해성 식물이 된 것은 생명력 강하고 번식력 좋은 핑크뮬리의 탓이 아니라 마구잡이로 심은 사람의 잘못입니다. 잡초로 분류될 뻔한 푸른 싹을 보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 논에는 벼가 익어가고 있었습니다. 벼가 혼자 크면 기우는지 물어봤는데, 남편도 잘 모르는 듯 그렇지 않을까라고 하며 같이 자라며 비와 바람을 이겨내고 크지 않을까 합니다. 덧붙여 골프장에서 자라는 잔디에서 스윙을 하면 풀의 저항으로 공이 착지하는 거리가 줄어든다고 생각보다 풀이 뭉치면 힘이 강하다고 합니다. 작고 길고 연약한 싹을, 같이 크면 좋을 텐데 홀로 크는 싹을 봅니다. 이 싹은 제게 온 가을 편지 같아 애틋합니다. 매일 먹는 쌀이나 보리가 자라면 이런 싹이 틀 수 있다니요. 햇살, 흙내음, 땀과 인내가 담긴 한 알의 곡식은 많은 서사를 담고 있습니다. 그 서사를 담을 싹이 집에서 자라고 있습니다.
한 알의 곡식이 싹을 틔우는 동안, 가을이 왔습니다. 그 싹이 쑥쑥 자라는 동안 저는 밥을 꼭꼭 씹어먹어야겠습니다. 제게 온 가을 편지를 읽으면서요. 소중한 한 알, 한 알에 담긴 서사를 되씹으면서요. 그 서사에 다시금 감사하면서요.
이 글을 쓰고, 발행을 기다리던 도중 이 싹은 나무젓가락보다 길게 자랐습니다. 하지만 홀로 서지 못 하고 쓰러지고야 말았습니다. 이 가녀린 식물은 같이 커야하나 봅니다. 사람도 이 식물처럼 홀로 있으면 꺾이고 쓰러지지요. 그러니 같이 잘 살았으면, 하고 생각해봅니다.
이 가을 매거진, [가을에는 트렌치코트를 입어야만 해]의 마지막 글입니다. 저는 참여한 작가님들 사이에서 제 글을 무럭무럭 키워보았습니다. 그래서 여린 제 글들이 쓰러지지 않고 자랄 수 있었습니다.
사진을 자세히 보세요, 반전이 있습니다!
꺾인 풀 위로, 다시 싹이 자랍니다. 저 싹의 이름은 역시 '희망'입니다.
저는 가을에게서
한 식물의 서사와
희망이 쓰인
편지를 받았습니다.
희망이 또 자라고 있습니다.
저도 작가님들과 함께 자라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