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윤 작가님과 글쓰기 수업, 필사하기
1회 차
문장을 꼼꼼하게 노트에 적어 넘기며 모르는 단어(단애, 위관, 백의종군)를 찾아 뜻을 풀이하며 적었습니다. 다만 문장을 외우기가 어려워 많은 부분을 띄엄띄엄 적을 수 있었습니다.
2회 차
한 문장이나, 긴 문장은 2~3번 끊어서 외우며 적었습니다. 틀린 부분은 고쳐가며 적었습니다. 그럼에도 모르는 단어(물비늘, 물마루)를 찾아 뜻을 적었습니다. 반복되는 단어(섬, 노을, 파도, 바다 등)를 수식하는 형용사나 서술하는 동사가 어떻게 바뀌는지 유심히 보았습니다.
3회 차
뜻을 모르는 것이 없어 대략의 내용이 이해되었으나, 문장을 허투루 적은 곳은 빨간색으로 고쳐가며 다시 한번 확인했습니다.
4회 차, 필사 내용을 읽고 싶으신 독자 분들을 위해 다시 옮겨 적습니다.
<칼의 노래> 김훈 지음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 꽃피는 숲에 저녁노을이 비치어, 구름처럼 부풀어 오른 섬들은 바다에 결박된 사슬을 풀고 어두워지는 수평선 너머로 흘러가는 듯 싶었다. 뭍으로 건너온 새들이 저무는 섬으로 돌아갈 때, 물 위에 깔린 노을은 수평선으로 물러가서 소멸했다. 저녁이면 먼 섬들이 박모 속으로 불려가고 아침에 떠오르는 해가 먼 섬부터 다시 세상으로 돌려보내는 것이어서, 바다에서는 늘 먼 섬이 먼저 소멸하고 먼 섬이 먼저 떠올랐다.
저무는 해가 마지막 노을에 반짝이던 물비늘을 걷어가면 바다는 캄캄하게 어두워갔고, 밀물로 달려들어 해안의 단애에 부딪히는 파도소리가 어둠 속에 뒤채였다. 시선은 어둠의 절벽 앞에서 꺾여지고, 목측으로 가늠할 수 없는 수평선 너머 캄캄한 물마루 쪽 바다로부터 산더미 같은 총포와 창검으로 무장한 적의 함대는 또다시 날개를 펼치고 몰려온다. 나는 적의 적의의 근거를 알 수 없었고 적 또한 내 적의의 떨림과 깊이를 알 수 없었을 것이다. 서로 알지 못하는 적의가 바다 가득히 팽팽했으나 나에게는 적의만이 있고 함대는 없다.
나는 정유년 4월 초하룻날 의금부에서 풀려났다. 내가 받은 문초의 내용은 무의미했다. 위관들의 심문은 결국 아무것도 묻고 있지 않았다. 그들은 헛것을 쫓고 있었다. 나는 그들의 언어가 가엾었다. 그들은 헛것을 정밀하게 짜맞추어 충과 의의 구조물을 만들고 있었다. 그들은 바다의 사실에 입각해있지 않았다. 형틀에 묶여서 나는 허깨비를 마주 대하고 있었다. 내 몸을 으깨는 헛것들의 매는 뼈가 깨어지듯이 아프고 깊었다. 나는 헛것의 무내용함과 눈앞에 절벽을 몰아 새우는 매의 고통 사이에서 여러 번 실신했다.
나는 출옥 직후 남대문 밖 여염에 머물렀다. 영의정 대사헌 판부사들이 나를 위문하는 종을 보내왔다. 내가 중죄인이었으므로 그들은 직접 나타나지 않았다. 종들은 다만 얼굴을 보이고 돌아갔다. 이 세상에서 위로란 본래 없다는 것을 나는 알았다. 나는 장독으로 쑤시는 허리를 시골 아전들의 행랑 구들에서 지져가며 남쪽으로 내려와 한 달 만에서 순천 권률 도원수부에 당도했다. 내 백의종군의 시작이었다.
한산, 거제, 고성 쪽에서 불어오는 동풍에는 꽃핀 숲의 향기 속에 인육의 고린내가 스며있었다. 축축한 꽃의 향기를 실은 해풍의 끝자락에서 송장 썩는 고린내가 피어올랐고, 고린내가 밀려가는 바람의 꼬리에 포개져서 섬의 꽃향기가 실려왔다. 경상 해안은 목이 잘리거나 코가 잘린 시체로 뒤덮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