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묘비명: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

전태일, 이소선

by 설애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


노동자의 죽음

전태일(1948-1970)은 봉제 노동자였으며, 근로기준법 준수를 외친 노동운동가였다. 청계천에서 일하며 야학에 다니며 공부하다 근로기준법을 알게 되었다. 근로기준법이 지켜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바보회]라는 조직을 만들었으며, 마침내 근로기준법 준수와 노동자는 기계가 아니라 사람이라고 외치며 평화시장에서 분신 자살하였다. 그의 나이 22세였다.

어린 여공들이 환기가 되지 않는 환경에서 일하며 흔하게 폐렴에 걸리고, 돈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현실 앞에서 싸우며, 제 한 몸을 불살랐다. 그는 "어머니, 내가 못다 이룬 일을 어머니가 대신 이뤄 주세요"라는 유언을 남겼다.

그의 전기나, 그가 썼던 글을 보면 그가 급진적인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동생 같은 여공들을 아끼고, 조금이라도 더 배우고자 노력하는 성실하고 다정한 사람이었다. 그저 근로기준법에 맞는 대우를 해달라고 요청했던 것뿐이다. 그래서 그의 울부짖음은 더 애절하고, 간절하다.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


그의 묘비명은 조영래 변호사가 썼다.


세월이 흐를수록
더욱 생생하게 되살아나는 죽음이 있어
여기 한덩이 돌을 일으켜 세우나니...
불길 속에 휩싸이며 그가 남긴 마지막 한 마디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 하던 그 피맺힌 울부짖음을.


노무라 사진첩 <유신의 추억> 중 평화시장



아들의 죽음 뒤에서

아들의 유언을 들은 어머니 이소선(1929-2011)의 마음은, 감히 헤아릴 수가 없다. 아들을 잃은 어머니는 전태일의 동지들과 함께 전태일의 유언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며 살아간다. 그래서 그는 '노동자의 어머니'라는 칭호를 얻는다. 죽은 후에는 아들의 묘 뒤에 묻혔다.


이소선의 묘비명은 신영복 교수가 썼다.


옷도 세상도 건물도 자동차도 이 세상 모든 것을 노동자가 만들었습니다.
노동자가 세상의 주인 아닙니까
그런데 우리는 하나가 안 되어서 천대받고 멸시받고 항상 뺏기고 살잖아요
이제부터는 하나가 되어 싸우세요
하나가 되세요
하나가 되면 못할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태일이 엄마의 간절한 부탁입니다.
여러분이 꼭 이루어주세요.

어머니의 말씀 중에서




노동운동의 역사를 바꾼 죽음

그의 유언, 그가 만든 흐름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던 어머니


그 모자 앞에서 숙연해진다.


그리고 질문해 본다.

그의 죽음은 헛되지 않았는가.







* 사진 참고

노무라 목사는 1968년 한국을 처음 방문하여 한국의 참상을 목격하고 한국 빈민운동을 하였다. 한국을 1985년까지 50회 방문했다. 그가 찍은 사진은 수백장이며, 일부는 한국 정부의 감시를 받으며 택시로 이동하며 찍기도 했다. 일본의 국가적 범죄에 대해 사과가 필요하다고 하는 일본인이다.

그도 평화시장을 보며 분노했다.

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