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이백이십
일요일 아침이고 집으로 돌아왔다. 일요일은 돌아오기 좋은 날. 일요일은 일주일마다 돌아오지.
(중략)
창밖을 보는 나는 헐렁하게 웃고. 일요일의 안쪽은 헐렁하니까. 하얀 빈칸이 가득한 새 원고지를 받은 아침처럼. 창밖이 눈부셔서 눈을 감고. 휘파람새가 내 귀가 열리기를 기다리다가 휘파람을 불고.
일요일 아침의 창문 中, 이성미
일요일마다 돌아오는 일요일은, 느슨하고 헐렁합니다.
출근할 때는 조금 타이트하게 입어도, 일요일은 고무줄 바지에 편한 면티를 입고 있습니다.
입고 있는 옷이, 옷 안의 사람의 자세를 바꾸지요.
그래서 일요일은 어딘가 편하게 늘어져있습니다.
헐렁한 일요일 안쪽에서 어딘가 헐렁하게 그림을 봅니다.
‘일요일의 화가’가 있습니다.
바로 평일에는 세관원으로 일하고 일요일에만 그림을 그리던 프랑스 화가 앙리 루소입니다.
루소의 그림은 몽황적이면서도 느긋하고, 화려합니다.
그 화려함이 사람을 질리게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취하게 합니다.
아무래도 일요일에 그려서라고 저는 혼자 주억거립니다.
헐렁한 일요일 안쪽에서 어딘가 헐렁한 글을 씁니다.
이렇게 쓴 글들은 내일이면 다 고쳐버릴 것 같으니, 다시 일요일에 읽어야겠습니다.
헐렁한 글은 헐렁하게 읽어야 하니까요.
그리고 내일이 와도,
누군가에게는 조금 헐렁한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설애가 당신의 행복을 바라며 시 한 잔 나눕니다.
* 사진: 경향신문 제공, <잠든 집시 여인>, 앙리 루소
* 연결: 어느 여름의 일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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