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빠구 여자여자의 노빠꾸 상여자 읽기

노빠꾸 상여자의 벨기에 생존기, 송영인

by 설애

하얀색 셔츠에 짙은 청색 정장을 입고, 한 손에 하얀 꽃다발을 들고 한 손은 주머니에 꽂고 당당하게 정면을 바라보는 눈에는 빨간색 테두리의 안경을 쓴, 검은 긴 머리, 유색 인종의 여자가 책에서 걸어 나올 듯하다. 그녀의 발걸음마다 '당, 당'하는 발소리가 울릴 것 같다.

책 표지는, 책을 대표하는 상징이다.

이 책 표지는 빨갛고, 하얗고 그리고 당돌하다.


노빠꾸, 상여자, 벨기에, 생존기는 어떻게 연결되는가.


낯선 나라 벨기에에 가게 된 이야기, 적응하는 이야기, 부모가 된 이야기. 한 사람으로 살아나가고자 노력하는 이야기. 이 낯선 단어들은 결국 한 사람의 생존기로 모인다.


이 책은 1부와 2부로 이루어져 있다.

1부는 벨기에 드러머를 만나 결혼하여 벨기에로 가서 적응하는 이야기이고, 2부는 벨기에에서 두 아들을 낳아 키우는 이야기이다.


나는 노빠꾸이지만, 상여자는 아니다. 그런 관점에서 노빠꾸 상여자의 벨기에 적응기는 유쾌하고, 때로 암울했으나 결국 자리 잡아가는 모습에 안도했다. 제목에 '상여자'라고 되어있지만, 여자이기보다, 한국인이기보다 한 사람으로 인정받고자 하여 노력하는 모습이 인상적인 책이다.


벨기에는 네덜란드어와 프랑스어를 같이 쓰는 국가라고 한다. 그래서 네덜란드어 수업을 듣는데, 비는 계속 주륵주륵 온다. 1년에 200일 비가 오는 나라라고 한다. 그래서 어느 날 결국, 비와 같이 눈물이 흐르기 시작한다.


아무도 없는 집에서, 6월이지만 마치 한국의 10월 같은 썰렁한 공기를 느끼며 주저앉아 꺼이꺼이 울었다. 빌어먹을 날씨! 빌어먹을 벨기에!
한바탕 울고 나니 마음이 가벼워졌다. 사실 울어서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 그날 이후로 다시는 내 처지 때문에 울지 않았다. 내가 선택한 길이었다.
p 45~46


그 눈물의 저변에는 모국이 아닌 나라에서 오는, 내 학벌을 인정받지 못하는 서러움이 있다.


해외에서의 삶이란 그런 것이다. 내가 어떤 배경을 가졌든 무슨 공부를 했든, 지금의 나는 그저 벙어리 귀머거리 외국인 노동자에 불과했다. p52


언어를 이해하지 못하고, 유창하게 말하지 못한다면 더더욱 사무직 근처에는 못 가고 내가 배운 것이 모두 허사가 된다는 뜻이다. 그래서 먼저 악착같이 언어를 배우고, 하나씩 얻어내는 과정의 서사는, 나와 같은 한국인 여자라서가 아니라 기다가 서는 아이를 보는 것처럼 기특하고, 잘했다고 저절로 박수가 나오는 일이었다. 노빠구 상여자인 작가는 노력했고, 시도했고, 한 번에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결국 성공했다.


넘어지는 것은 걸었기 때문이고, 실패도 무언가를 시도했기 때문에 얻은 결과다. 당장 주어지는 열매뿐만이 아니라 천천히 맺는 열매도 충분히 가치가 있다. 계획한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는다고 해서 내 노력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나는 충분히 노력했다. p89


그렇게 나는 책을 펼치고 단숨에 1부를 읽었다. 그리고 며칠 뒤 다시 2부를 읽었다.


책을 되도록 나누어 읽는 건 습관이다. 한 번에 한 권의 책을 다 읽으면 잠깐 떨어져 생각해 볼 시간이 줄어들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멈추고 다시 읽는다. 내게 밀려오는 사유를 받아들이고 또 새로운 마음으로 읽는다.


다시 만난 2부는 벨기에에서 '엄마'로 살아남는 과정을 담았다. 출산과 육아를 공유한 '엄마'로, 그리고 '아들'을 키우고 있는 엄마로 많은 부분에서 공감했고, 웃었다. 특히 아이가 학교에서 '칭챙총(중국인의 발음이 외국인에게 들리는 총체적 어감으로, 중국인을 비하하는 놀림)'이라고 놀림받을 때, 정공법으로 학교 행사에 참여해서 한국을 설명하고, 한국 음식을 대접하는 적극적인 방식들은 '상여자'의 생존법이었다.

나는 '상여자'는 아니고 '여자여자'인데, 어느 날 초등학교 2학년인 첫째 딸이 친구에게 빰을 맞고 돌아왔다. 그것을 본 어느 분께서 알려주셔서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일주일을 잠을 설쳤다. 어떻게 할까. 나는 좀 돌아가는 방법을 택했다. 딸을 앞에 앉혀놓고 이렇게 이야기했다. "모든 아이들과 친하게 지낼 필요 없어, 너를 나쁘게 대하는 아이들과는 놀지 마. 그리고 무슨 일이 있으면 엄마한테 얘기해, 엄마가 혼을 내주든 싸우든 할게. 너한테는 엄마, 아빠가 있어" 그리고 때린 아이의 엄마나 선생님께 연락하지 않았다. 좀 시간이 지나 초등학교 6학년 때 학부모 모임에 참석했다. 나는 "우리 딸아이가 할 말을 잘 못해서 걱정스러워요."라고 말을 했는데, 분위기가 싸했다. 그리고 이런 답을 들었다. "어머, 이 엄마가 자기 딸을 몰라도 너무 모르네." 나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네?" 한 두 명이 아니라, 그 자리에 모인 엄마들의 증언에 따르면 우리 딸은 6학년 여학생을 대표해 남학생과 싸우고, 태도나 말이 적절하지 않을 경우, 잔소리를 늘어놓으며, 할 말을 다하는 학교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내성적이고 소극적인 아이라고 생각했는데, 어느새인가 자기만의 색을 가진 아이로 훌쩍 자란 것을 다른 엄마들은 다 아는데 나만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돌아와 딸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새 많이 자라 있는 딸을 인정했다. 육아는 무엇이 맞고 틀렸는지 알 수 없다. 다만, 아이를 생각하는 마음으로, 부모가 뒤에 있음을 느낄 때 당당하게 자라는 것이라고 이 책을 읽으며 한 번 되새기고 떠올렸다.

응원하지 않을 수 없고,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시공간을 뛰어넘는 용감한 사람의 홀로서기를 잘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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