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 오마카새, 황정은
또 가족이다.
황정은 작가의 단편 추리 소설을 모아 놓은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도 가족을 기반으로 했다. 가족은 가장 가깝고 안전한 존재여야 하지만, 헤어지기 어렵다는 점에서는 가장 무서운 존재이기도 하다. <살인 오마카세>는 표면적으로는 건물주와 세입자의 관계를 배경으로 하지만, 집요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또 가족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시대의 가족의 형태와 종류는 다양하다. 국제 결혼도 많고, 동성 결혼은 사회적 논의가 진행 중이며, 마음으로 낳기도 한다. 변화하는 가족이라는 개념 속에서 반복되는 살인의 변주를 본다.
작가의 다른 책을 읽은 이력이 없었다면, 하늘 같은 건물주가 ‘연달아’ 살해당하는 것이 주요 흐름이다. 원래 건물주는 세입자에게 무리하게 월세를 올리지 않으며, 가족처럼 세입자를 대하는 ‘착한’ 사람이다. 그래서 세입자는 존경의 마음을 담아 혼자 사는 건물주에게 음식을 대접하기도 한다. 그 건물주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인해 건물주의 아들이 새로운 건물주가 된다. 그 새로운 건물주는 ‘못 된’ 사람이다. 미국으로 유학가서 아버지와 오래 떨어져 살면서, 돈을 벌 수 있는 능력이 없는 ‘덜 된’ 사람이기도 하다. 존경의 마음으로 대접하던 저녁이 상납이 되고, 그리고 식당, 미용실, 염색방, 카페 등을 돌며 상납을 받는다. 심지어 병원도, 약국도. 그리고 세입자인 여자들에게, 세입자에게 고용된 여직원들에게 성희롱도 한다. 그 수모의 수위가, 꽤 높아서 읽는 사람마저 살의를 일으키도록 만든다. 진짜 ‘죽이고 싶은’ 느낌을 공감하면서도, ‘죽음이라는 방식’이 정당한지에 대한 고민을 계속 하게 만든다.
작년 연말 쉬면서 <살인자의 리포트>, <살인자 O난감>, <모범 택시 3>, <오징어 게임 2, 3> 등을 보았다. 참, 잔인한 것들만 골라서 본 듯하다. 그래서 다 보고 나서 내가 왜 이런 것들을 보고 있나 되짚어 보았다. 그리고 ‘살인’이라는 것이 ‘정의’를 실현할 수 있는 수단인지에 고민했다. 그래서 <살인 오마카세>를 유사한 시기에 읽으며, 내가 살고 있는 세상에서 ‘살의’를 느끼지 않으며 살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것인지 또 고민했다.
죽이고 싶은 새로운 건물주의 만행, 그리고 세입자와 건물주의 관계, 세입자 간의 관계, 이 책은 내 어둡고 깊은 고민과는 별개로 재미있게 이야기가 진행된다. 추리 소설의 중심이 되어야 할 ‘살인의 방식’과 ‘해결하는 과정’이 흥미롭고, 내가 관심있게 보는 ‘관계’의 관점에서도 이 소설은 흠잡을 곳이 없다. 그런 완벽함은 너무 달아서 머리가 쨍해지는 기분이 이어지고, 가족이라는 공동체 안에서 쌉싸름한 커피를 마신 것처럼 결국 해소된다. 이 황정은 작가가 원하는 것이 가족이라는 결론이었을까.
내가 사는 곳이 영화나 소설 같지 않기를 바란다. 그래서 내가 사는 곳이 평화롭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 잔인한 것들은 본다는 말이 맞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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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지 사진: 알라딘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