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드름 머리, 왜 그랬지?
겨울의 추억이라...
추억은 지나간 일을 돌이켜 생각하는 것으로, 과거의 특별하고, 인상 깊은 경험을 추억한다고 하는데, 반드시 꼭 좋은 것만 추억하는 것은 아니다. 영화 <살인의 추억>처럼 악몽 같은 순간도 추억할 수도 있다. 추억이라는 말을 들고, 무엇을 쓸까 생각했다. 어린 시절 가오리 연을 만들어 날렸던 일, 사과 박스를 뜯어 썰매를 만들어 탔던 일, 장갑을 선물 받았던 일 등에 이르러, 뜨거운 물이 나오지 않았던 고등학교 시절에 멈추었다.
고등학교 때 나는 기숙사에 살았다. 기숙사에서 언니, 동생들과 지내면서 좋은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어서, 빠르게 퇴소를 결정하고 친척집에서 학교를 다니는 친구도 있었다. 친구들과 야식까지 네 끼를 같이 먹어가며 하루 종일 붙어있었던 그 시기는,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했던 나에게는 좀 힘들기도 했다. 그래도 기숙사 계단에 앉아 서로의 고민을 나누던 것은 소중한 시간으로 남아있다. 시험이 끝나면 침대에 읽을 책을 잔뜩 쌓아 놓고 봉지 과자에서 과자를 꺼내 먹듯 책을 먹었던 시간도 귀한 시간이었다. 그 많은 기억들 속에서도 이상하게도 얼음에 손이 붙어버린 듯 기억에 들러붙은 이야기는 보일러가 고장난 날의 기억이다.
가끔 보일러가 얼어 고장이 나는 일이 있다. 포항은 겨울에도 기온이 높은 편이어서 눈이 잘 내리지도 않는다. 그러니 보일러도 잘 얼지 않는다.
기숙사 보일러가 얼었던 그날은, 드물게도 영하의 기온이었다. 씻으러 들어갔던 아이들이 나오지 않았고, 비명이 터져 나왔다. 보통의 아침과 다른 갑작스러운 소란의 원인은 따뜻한 물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공동욕실을 사용하고 있었기에, 순서를 기다리던 아이들 사이에서 씻어야 하는지, 그냥 가야 하는지 갑작스러운 토론이 벌어졌다. 소란은 커지고 있었다. 등교 시간은 점점 다가오고, 씻는 줄은 점점 줄어, 씻지 않고 혹은 고양이 세수만 하고 학교를 가기로 한 아이들이 늘어났다.
무슨 생각이었는지, 나는 씻기로 했다. 찬물에 머리까지 감고 학교를 갔다.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기억은 나지 않는데 찬물이 머리에 도착했을 때 기억은 선명하다. 그 아찔함. 아마 나는 감기에 걸려서 며칠쯤 쉬고 싶었는지도 모르고, 씻는 아이들 쪽에 들어가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아니, 혹시 잠이 떨 깼거나, 겨울의 물의 온도가 얼마나 차가운지 상상조차 못 했던 것은 아닐까. 이유가 어찌 되었든 나는 찬물로 샤워를 하고, 머리도 제대로 말리지 않은 채 등교를 했다. 기숙사에서 교실로 가는 길은 걸어서 약 2분 정도 걸릴까. 그 짧은 등교 시간 동안 내 머리는 고드름처럼 얼기 시작했다. 그 사각거리는 머리카락을 만지니 웃음이 났다. 같이 등교하던 친구가, “야, 니 머리 부러지는 거 아니야?”했을 때, 우리는 얼고 있는 머리를 구부려가면서 깔깔 웃었다. 아, 내가 다닌 고등학교는 그 시절 드물게 두발이 자유여서 나는 그때 허리까지 오는 긴 생머리였다. 긴 머리가 끝에서부터 얼어가고 친구와 그 머리가 부러지지 않는지 구부려가며 등교했다.
고등학교 기숙사 살인 미수의 추억
정신이 번쩍 드는 찬물 세례는, 아직도 소름 돋게 몸이 기억하고 있고, 등굣길의 고드름처럼 딱딱해지던 내 머리, 친구의 목소리도 머릿속에서 잘 재생된다. 비일상적인 그날의 일이 어제 일처럼 떠오른다.
이제는 그 일을 교훈 삼아, 겨울에는 찬물에 손도 대지 않는다. 하지만 겪어봐야 아는 바보 같은 나는, 그때도 지금도 여전하다.
참, 일관되게 곰처럼 미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