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던 여학생들은 어디로 갔을까

시 이백삼십삼

by 설애
그 많던 여학생들은 어디로 갔을까
저 높은 빌딩의 숲, 국회의원도 장관도 의사도
교수도 사업가도 회사원도 되지 못하고
개밥의 도토리처럼 이리저리 밀쳐져서
아직도 생것으로 굴러다닐까
크고 넓은 세상에 끼지 못하고
부엌과 안방에 갇혀 있을까
그 많던 여학생들은 어디로 갔는가

그 많던 여학생들은 어디로 갔을까 中, 문정희

졸업 시즌입니다. 이 시가 떠오르고, 국민학교 때 읽었던 눈이 큰 캔디 같은 여자가 머릿수건을 두르고 부엌에서 일하는 삽화가 떠오릅니다. 이 삽화가 있었던 책을 오래오래 기억하고 있습니다. 여자들도 일하고, 능력을 발휘해야 한다는 내용으로 기억에 남는 문장은 이것입니다.


여성들의 능력이 하수구로 흘러 들어간다.


만화 같은 삽화에 이런 날카로운 문장이라니요.


그 책을 읽었던 그 시절에는 내 능력이 하수구로 들어가지 않도록 정신 차려야겠다고 다짐했던 기억과, 주변의 여성들, 엄마, 선생님, 옆집 아주머니 등을 떠올리면서 그들의 삶을 비교해보기도 했습니다.


엄마는 공부에 미련이 많았습니다. 공부도 잘 못하는 외삼촌만 챙기며, 여자가 배워서 뭐 하냐는 외할머니께 자라며, 대학교는 못 갔지만 공부를 잘했다고 합니다. 아빠를 만나 일찍 결혼하지 않았더라면 방송대라도 갔을 겁니다. 그게 두고두고 미련이 남았는지 저에게 일찍 글씨를 가르치고, 책을 많이 사주고, 시험을 같이 준비해 주었습니다. 중학교 때도 풀리지 않는 수학문제를 물어보면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게 대단한 일인지 모르고 당연히 모르는 것은 엄마에게 묻는 줄 알았습니다. 그렇게 엄마는 저의 기본기를 잡아주고, 책을 읽는 재미를 느끼게 하고, 여자라고 공부 안 하면 안 된다고 다그치곤 했습니다. 아마 그런 흐름에서 이런 책도 사주셨던 거겠죠.


중학교 때부터 가정사가 복잡하여 엄마와 헤어져, 아빠와 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대학 시절 다시 만난 엄마는 제가 대학교도 못 갈까 봐 걱정했다고 했습니다.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인해서 말이죠. 길거리에서 짧은 미니스커트를 입고 매장 홍보를 하는 여자들을 볼 때 제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다행히 저는 대학을 갔습니다.


그 많은 여학생은 어디로 갔을까, 문정희 시인의 시를 읽으며 하수구를 떠올렸고, 엄마를 떠올렸습니다. 엄마가 어린 시절 저를 잘 키워주셔서 제가 부엌과 안방에 갇히지 않고 이렇게 일을 하며 살아갑니다.


엄마, 고마워요.


설애가 당신의 행복을 바라며 시 한 잔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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