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음의 증거, 아물다.

시 이백오십육

by 설애
(중략)

며칠 뒤,
고양이 콧등은 말끔히 나았다
내 구두코는 전혀 낫지 않았다

아무리 두꺼워도
죽은 가죽은 아물지 않는다
얇아도 산 가죽은 아문다

구두와 고양이 中, 반칠환


오른손등에 긁힌 상처가 생겨서 조금 따가웠습니다. 어디서 긁혔는지도 모르고 지내다 보니 또 오른손 엄지 손가락 위에 또 상처가 생겼습니다. 꼼꼼히 손톱을 만져보니, 왼손 검지 손톱이 날카로웠습니다. 손톱줄로 손톱을 잘 다듬어 놓고 나니, 다시 상처가 생기지는 않았습니다. 지금은 아무는 중이라 상처 자국만 남기고 따갑지는 않습니다. 고양이 콧등의 상처처럼 아무는 중입니다. 고양이 콧등의 상처는 아물지만, 구두코에 난 상처는 아물지 않습니다. 반칠환 시인은 그 차이를 살아있기 때문에 아무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살아있지 않은 것은 아물지도 않지만 아프지도 않습니다. 아픔이나 고통은 살아있기 때문에 느끼는 것입니다. 사람이 그러하듯, 사람이 모여있는 어떤 단체, 학교나 회사, 그리고 나라도 살아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상처를 느낄 줄 알아야 하고, 그래서 치료하고, 결국엔 아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살아있는 조직이나 모임은 다수의 의견으로 소수에게 상처 주지 말아야 하고, 한 사람의 불편에 귀 기울일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상처가 생기더라도 아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상처가 잘 아물었으면 좋겠습니다. 살아가며 누군가에게 준 상처, 내가 받은 상처가 잘 아물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상처를 내지 않는 방법을 잘 찾아가며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왼손이 오른손에게 상처를 주었듯, 모르는 사이에 주는 상처가 없는지 말도, 행동도 잘 다듬으며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설애가 당신의 행복을 바라며 시 한 잔 나눕니다.
월, 수,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