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의 나에게

불확실함을 견뎌낸 20대의 나를 만나러 도서관에 가다

by 눈별숲

새로운 사람과 친해질 때는 그 사람이 궁금하고 마음이 설레기도 한다. 그 마음의 길을 따라가다 보니 모든 것이 불확실했던 시절의 나를 다시 만나게 되어 포근히 안아주었다.




새 합창단에 같이 들어가게 된 K선생님은 항상 밝은 미소로 사람들에게 배려도 잘하고 악보도 잘 챙겨서 사람들이 모두 그녀를 좋아한다. 친절하고 꼼꼼한 모습에서 젊었을 때의 내 모습이 떠오른다.


그런 예쁜 그녀와 가까워지고 싶어 신입단원끼리 같이 연습하고 저녁을 먹자고 제안했다. 그랬더니 늘 나에게 고마웠다며 밥을 자기가 사겠다고 했다. 요즘 휴직 중이라는데 식사 한 번 사는 것도 부담이 될 것 같아 걱정하다가 내가 왜 이렇게 밥 한 번에 지나치게 걱정하나 의아한 마음이 들었다. 내가 20대 시절에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대학원 시험 준비를 할 때와 지금의 K선생님의 상황이 비슷하다고 생각했나 보다. 그때 나의 막막하고 불안했던 마음이 떠올랐다.




나는 고등학교 때 심리학을 공부하고 싶다고 막연하게 생각했었다. 부모님이 주장이 강하신 분들이라 내 진로를 내 뜻대로 정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 없었다. 그래서 공부를 열심히 하지도 않았고 아버지의 뜻에 따라 원치 않는 대학교의 학과에 들어가서 억지로 학교를 마쳤다. 그리고 원치 않는 직장에 들어가 재미없고 힘든 일을 하면서 만 삼 년간 고통의 날들을 보냈다.


오랜 고민 끝에 직장을 그만두고 대학원에 가서 심리학을 공부하기로 결심했다. 그때는 심리학이 그리 인기 있던 학문이 아니었다. 심리학을 공부하고 나서 어떤 일을 할 수 있을지 나도 정확하게 알지 못했고, 주변 사람들도 잘 몰랐다. 안정적인 직장을 그만두고 심리학을 공부한다고 하면 주변의 모든 사람이 반대할 것이 뻔했다.


아버지께 말씀드리는 것이 제일 어려웠다. 큰 용기가 필요했었고 그 순간이 아직도 선명하게 떠오른다. 아버지는 불같이 화를 내면서 큰 소리로 "나는 지금부터 너에게 돈을 한 푼도 보태줄 수 없으니, 앞으로 알아서 살아라!" 하셨다. 그때 나는 아버지에 대한 마음이 얼음처럼 싸늘하게 굳어버렸고, 한동안 아버지와 말을 하지 않고 지냈다.


직장에는 후임교육 등의 문제가 있을 것 같아서 5개월 전에 퇴사의사를 밝혔다. 곧 부장님에게 불려 갔다. 그는 나를 그만두지 못하게 하려고 나의 용기를 꺾는 말들을 퍼부었다. '대학원에서 관련 없는 비전공자를 뽑아줄 것 같니?', '너의 실력으로는 어림도 없으니 괜한 헛짓하지 말아라', '너희 부모님은 돈이 많으신가 보지?' 하는 막말을 하며 비아냥거렸다. 유사전공의 야간대학원에 다닐 수 있도록 일하는 부서를 편한 곳으로 옮겨주겠다고 회유하기도 했다. 어리고 착했던 나는 두 시간 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눈물만 뚝뚝 흘렸었고, 이후 5개월을 더 일하고 퇴사했다. 그때를 생각하면 내가 왜 그리 바보같이 가만히 있었나 싶기도 하다. 나한테가 아니라, 나를 그렇게 무례하게 대했던 그 사람한테 몹시 화가 났다.


만약에 지금의 나라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이렇게 말하고 싶다.

"부장님! 지금 나에게 너무 무례하게 대하고 계셔서 저는 너무 화가 납니다. 저는 직장과 동료들을 위해 5개월 전인 지금 퇴사의사를 밝히는 것이 잘못된 행동이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나를 이렇게 존중하지 않는 곳에서 3년 가까이 열심히 일했던 것이 후회가 됩니다. 저는 지금 한 시간도 더 일할 수 없습니다! 당장 그만두겠습니다!" 하며 문을 벌컥 열고 그 방을 나올 것이다. 당시에는 그렇게 하지 못했으나, 상상만으로도 통쾌하다.


이러한 주변의 반대는 나의 결심을 더욱 강하게 했다.

"그래, 좋다. 어디 한 번 해보자. 내 삶은 내가 결정한다! 되든 안되든 열심히 해보자!"


그때는 인터넷을 하기가 그리 쉽지 않았던 시절이었고, 어느 대학교에 심리학과가 있는지 알지 못할 정도로 정보가 별로 없었다. 가까운 대학원의 교학과에 무작정 찾아갔다. 배포용 기출문제가 있는지, 어떤 책을 공부해야 하는지 물어보고 추천해 주는 심리학개론 원서를 구내서점에서 사 왔다.


비전공자가 기본지식 없이 심리학 공부를 하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어려웠다. 원서뿐만 아니라 한글 책도 이해하기 어려워서 처음에는 한 페이지를 넘어가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개론책은 한 줄 한 줄 번역해 가며 읽어나갔고, 심리치료 이론 책은 노트에 거의 통째로 필사하면서 미련하게 공부를 해나갔다.


차근차근 공부를 하면서 속도가 붙고 재미도 있었지만 한번 불합격하고 나서는 시간이 갈수록 부담감이 마음을 짓눌렀다. 포기하고 싶을 때도 많았지만, 이제 와서 돌아갈 수도 없었다. 확신이 필요해서 눈물로 기도를 하며 하루하루 마음을 다잡았다.


경제적인 부담감도 상당했다. 직장을 다니며 들었던 적금은 대학원 학비로 묶어놨고, 나머지 모아놓았던 적은 돈으로 생활을 해야 했다. 내가 합격을 할지 못할지도 불투명한 상태이고 수험기간이 길어질 수도 있으므로 돈을 아껴 써야 했다. 심리학 교과서들은 근처 대학교 도서관에서 빌려서 보았고, 학생식당에서 천 원짜리 식판 밥을 사 먹었다. 차비를 아끼느라 무거운 책가방을 메고 꽤 먼 길을 걸어가던 그 낯선 동네의 길이 아직도 생생히 기억난다. 그날따라 평소에 좋아하지도 않던 콜라가 마시고 싶었는데, 가로수에서 은행잎들이 빙글빙글 떨어지고 있었다.


한 번은 누군가가 학회에 한번 가보라고 알려줘서 한국상담심리학회 학술대회에 찾아갔다.

그런 세상도 있었다. 서강대의 반원형 대형 강의실에서 강의와 토론을 들었다. 혼자서 책으로만 공부하던 나에게 정말 흥미로운 내용이었다. 한편으로는 나만 이방인인 것을 다른 사람들이 알아차릴 것 같아서 내내 눈치가 보이고 불편하기도 했다. 그 날은 마침 자격증 수여식이 있었다. 내 또래의 여성들이 상담심리사 자격을 받는 것을 보고 박수를 치며 눈물 나게 부러웠다. 나는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나는 언제 저 자리에 설 수 있을까. 자신이 없어지고 막막하기도 했다. 정말 간절했다.


그렇게 일 년 반을 공부하고 나서 드디어 대학원 입학시험에 합격했고, 졸업을 했고, 상담심리사 2급, 상담심리사 1급을 받아 어엿한 전문가가 되었고, 슈퍼바이저가 되었다. 여느 직업이 그렇듯 늘 좋기만 한 것은 아니지만, 지금 나는 나의 일을 사랑한다.


알지도 못하고 보이지도 않는 길을 가겠다고 했던 나는 어떻게 그런 용기를 냈을까?

무엇보다 그 불확실한 시간을 잘 견뎌냈다는 것이 정말 멋있다.




사실 나는 K선생님이 아니라 그 시절의 나에게 밥을 사주고 싶었던 것이다. 꿈을 이루기 위해 성실하게 하루하루 노력했던 20대의 나를 도와주고 격려해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눈을 감고 마음속으로 그때 그 도서관에 찾아간다. 여섯 명씩 앉는 도서관 책상 끝자리에 앉아서 두꺼운 책과 사전을 여러 권 쌓아놓고 필기를 하고 있는 어린 나를 멀리서 가만히 바라본다. 굽은 등이 지쳐 보였지만 눈빛은 또렷하다. 책장을 샤라락 넘기는 소리가 경쾌하게 들린다.


곧 어린 내가 하품을 하더니 눈을 감고 책상에 엎드린다.

가까이 다가가서 나무의자를 잡아당겨 옆에 앉는다. 의자가 차갑고 딱딱하다.

나는 등을 쓸어 주며 이렇게 말한다.

"힘들지...?"

어린 나는 고개를 들지 못하고 끄덕인다.


"너의 간절한 꿈은 분명히 이루어질 거야. 확실해. 내가 알고 있거든!

나중에는 이 순간이 정말 자랑스럽고 소중한 기억이 될 거야.

그러니까 너를 믿고 지금 이 순간을 즐기면서 재미있게 공부해!"


어린 나는 눈물을 닦고 한숨을 길게 푹 내쉰다.

나는 나를 꼭 안고 등을 토닥토닥 두드려주면서 말한다.


"배고프지? 밥 먹으러 가자!"


식당 문을 여니 따뜻한 공기와 맛있는 냄새가 우리를 반긴다.

주문한 정식세트가 푸짐하게 나온다.

함께 웃으며 밥을 먹기 시작한다.

콜라 한 병도 주문한다.


가만히 눈을 떴다.

나는 어느새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K선생님에게 카톡을 보냈다.

"선생님, 다음 주 연습 전에 같이 저녁 먹어요~ 밥은 제가 꼭 사고 싶어요~(하트)"


눈별숲 그림, 그 시절의 나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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