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나를 선택하고 내일의 나로 나아가는
하얀 눈이 소복이 쌓여있는 새벽길을 걸어본 이는 한 걸음 한 걸음이 주는 짜릿함을 경험해보았을 것이다. 결코, 빠르게 걷지 않는다. 정면을 직시하며 온 발의 움직임을 정확히 그려가며 신중히 나아간다. 잠시 멈추어 뒤를 돌아보면 분명히 알 수 있다. 어떻게 걸어오며 자국을 남겼는지를 그리고 생각에 잠긴다. 다시 나아갈 때는 어떻게 해야 눈 위에 내가 원하는 데로 자국이 남게 될지 고민할 것이다. 비슷한 방법이나 전혀 새로운 움직임으로 눈 위의 나만의 발자국을 그려갈 것이다. 인간의 뇌라는 미지의 세계를 탐구하는 정재승의 <열두 발자국>은 인류를 이해하기 위한 과학적 접근을 소개한 자신의 강연들을 발자국에 빗대 소개한 책이다.
무게는 약 1.4 kg 정도로 몸무게의 일부이지만 가장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는 기관이며 생명체의 모든 신경을 조절하는 중추 신경계로 현대 과학기술로도 해석이 어려워 대부분이 미지의 공간으로 남아있는 인체 내의 소우주가 바로 뇌이다. 인간은 뇌로 살아간다. 경험을 뇌를 통해 느끼고 인지하고 저장한후 사고하며 행동을 명령한다. 뇌의 지시에 따라 수많은 선택을 하게 되고 이의 연속이 곧 인간의 삶이다. 책의 1부에서는 이러한 선택의 순간 현명한 의사 결정에 대한 로드맵을 제안해준다. 수많은 선택 중에 옥석과 가리고 그에 따른 순서와 가중치를 부여하며 나만의 지도를 그려가는 방법과 행동의 원동력에 대한 고민이 주요한 내용이다. 2부에서는 다가올 미래에 관련된 의미 있는 상상, 특히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인간이 나아가야 할 방향과 기회에 관해 이야기한다. 3차 산업혁명을 통해 수 많은 기계를 사용하며 사는 현 인류에게 인간다움을 지켜내며 인공지능과 현명하게 공존하는 길에 대한 실마리를 던져준다.
여기 매우 흥미로운 실험이 있다. 건축가, 변호사, MBA대학생, 유치원생 등 직군별로 팀을 나눈다. 각 팀마다 파스타면 20가닥, 테이프 1m, 실 1m, 그리고 마시멜로 한 개를 제공한다. 그들에게 주어진 임무는 마시멜로의 무게를 버틸 수 있는 탑을 가장 높이 쌓아 올리는 것이다. 미국의 작가 톰 워젝의 ‘마시멜로 챌린지’라는 실험이다. 대부분 변호사나 건축가처럼 전문성 있는 직업군이 우승하리라 예상할 것이다. 그러나 상식적인 예상을 뒤엎고 유치원생팀이 가장 높이 탑을 쌓는다. 매우 지적인 성인 그룹은 우승을 위해 사고하고 나누며 계획과 수정을 거듭하지만, 아이들은 계획을 세우는 시간에 차라리 움직인다. ‘유치원생의 마음으로 일단 시도해보라’라고 저자는 조언한다. 실패를 두려워하기보다는 이를 직면하고 받아들여 또 다른 선택에 도움이 되는 과정이 좋은 의사 결정을 가져올 확률을 높인다는 것이다. 이 실험에는 우승이라는 목표가 있고, 이를 이루기 위해 각 그룹은 열중한다. 사실 지시와 목표가 없다면 그룹원들은 이 어처구니없는 실험에 참여는 물론 탑을 만들었을 리도 없을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삶 속의 지시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저자는 결핍이 주는 욕망을 주된 원동력으로 본다. 욕망이 노력으로 이어져 결과적 성취감을 얻고 자신을 성숙한 인간으로 만들어 주는 힘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독자들에게 과잉과 과보호 속에 나의 결핍에 대한 고민은커녕 타인의 욕망에 따라 움직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진지하게 고민해 볼 것을 제안하고 있다.
급변하는 세계 속에서 인간다움을 지켜내는 첫 번째 단추로 창의성을 꼽는다. 지능이 높고 지식이 많으면 창의성도 높아질까? 창의성과 지능은 연관성이 높을지는 모르나 이 둘은 완전히 다른 능력이다. 지능은 기존 지식과 절차를 빠르게 습득하는 능력이고, 창의성은 지식과 절차를 모를 때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다. “예술이 가진 창조성이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에 “그것은 은유(Metaphor)다”라고 아리스토텔레스가 답했다. 연관성이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는 A와 B 사이의 연결하는 능력을 창의성이고 보는 것이다. 지식은 뇌 속에 가까이 그룹핑되어 저장되고 창의성은 전혀 다른 부분의 뇌를 연결하는 과정이라고 보면 된다. 여기서 화두는 인공지능이 언제쯤 얼마나 인간의 뇌에 근접해지냐이다. 많은 이들이 인공지능의 놀라운 발전속도를 강조하며 인류가 초긴장 상태가 되어야 한다며 으름장을 놓는다. 저자는 어느 정도는 뜻을 같이하나 매우 희망적 메시지를 꺼내놓는다. 인공지능과 뇌의 작동원리가 전혀 다르기에 인공지능이 창의성을 탑재하고 한두 번의 경험만으로 인간의 뇌가 하는 활동을 해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인간의 지식량을 뛰어넘을 수 있을지는 모르나 계산으로 사고하는 인공지능이 전혀 무관한 둘 또는 그 이상을 연결해내는 능력을 갖출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는 것이다. 인공지능을 두려워할 대상으로 볼 것이 아니다. 공생을 준비해야 한다. 미래는 온다. 나와 인공지능과 다름이 무엇인지 고민해 본다면 우리가 준비할 것에 대한 답변은 이미 나와 있다. 중요한 건은 다가올 놀라운 변화, 혁명의 시간에 나라는 주체성을 지켜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인간다움의 첫걸음이며 여기에 창의성, 감정과 공감을 통한 상호작용이 덧붙여진다면 다가올 내일이 어둡지만은 않다.
얼마나 열린 사고를 하고 있는지 스스로 점수를 매긴다면 10점 만점에 몇 점 정도 줄 수 있는가? 나는 꽤 후한 점수를 주는 편이었으나 책을 읽으며 잘못된 점수임을 깨달았다. 변화하는 세상과 과학, 정치, 경제 등은 나와의 교집합이 매우 작은 부분으로 생각해왔다. 어쩌면 관심이 적은 분야에 대한 무지한 모습에 대한 합리화였는지도 모른다. 나도 모르게 단단해지고 있는 생각의 틀을 깨기 위한 망치질이 필요한 순간이다. ‘나는 어떠한 삶을 살기를 원하는가?’에 대한 진솔한 고민 아래 주변의 영향력에 순응한 채 사라져가는 나의 지도를 그려 나가야 할 때이다. 지식을 늘리고 꼭 전문가가 되라는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을 ‘삶에 대한 태도’이다. 혁명의 깃발을 준비할 것 할 것인가 아니면 조용히 뒤따르는 삶을 살 것인가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무턱대고 불 속으로 달려드는 불나방 신세가 되지 않으려면 인지적 유연성을 지닌 인간다운 인간이 되어야 한다. 저자가 나를 대신해 삶을 살아주지 않는다. <열두 발자국>이 나의 지도에 모든 발자국을 대신 찍어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도 선택과 결정, 미래에 대한 불안한 마음을 지울 수 없다면, 적어도 나만의 지도를 그려보려는 내게 내일을 마주보기를 할 용기를 줄 것이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읽을 가치가 있는 책이 아닐까? 저자는 독자들이 자신이 소개한 열두 발자국을 넘어 자신만의 발자국을 이어가기를 적극적으로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