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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몽 Apr 05. 2020

카톡~카톡~ 세젤멋&세젤귀님의 댓글이 있습니다.

아이들과 나누는 좋은생각


‘카톡 카톡’ 요란스럽게 울려대는 소리에 졸린 눈을 비비며 일어나는 아침이 이제 흔한 일상이 된듯하다. 언제쯤인지 정확하지 않지만 각종 SNS들은 우리 생활의 한 조각이 되어버렸다. SNS를 통한 소통에 거부감이 있던 나도 시대의 흐름을 계속 거스를 수만은 없었다. 대학 동창, 동네 친구, 아이들 학교 친구, 각종 온라인 모임 등으로 내게도 꽤 많은 수의 카톡 대화방이 존재한다. 비슷한 결의 소소한 대화로 유쾌한 시간을 나누기도 하고,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로 열띤 토론의 장을 열기도 한다. 애정의 무게가 깊은 곳들이라 귀하게 여기지만 나의 일상을 배려코자 대부분 무음 처리되어 있다. 그러나 하나의 단톡방이 열외로 특별대우를 받는다.

이 각별한 대화방은 2020년 1월 1일에 내 핸드폰 안에 둥지를 틀었다. 세상에서 제일 멋진 큰아이와 세상에서 제일 귀여운 둘째 아이 그리고 내가 함께 하는 곳이다. 아이들의 대화명이 오글거림의 극치이지만 그들이 자라나 내 품을 완전히 벗어나기 전까지는 이런 달콤함에 퐁당 빠져 벗어나고 싶지 않은 게 솔직한 나의 마음이다. 사실 2020년 1월 4일 나와 둘째는 남편이 근무 중인 북경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자신의 꿈을 위해 한국에 홀로 남기로 결심한 큰아이, 중학교 3학년에 올라가는 아이를 덩그러니 놓아두고 오려니 그 애틋함은 끝이 없었다.

큰아이와 꽤 오래 떨어져 지내야 하기에 이런저런 안부 섞인 일상 대화도 나누고, 좋은 글이나 정보들을 나누려 카톡에 대화방을 만든 것이다. 실은 두 아이 모두 핸드폰이 없었기에 우리의 이 카톡방은 더욱 남달랐다. 지난해 연말 이사준비로 눈코 뜰새 없이 바빴지만 셋의 대화방을 알콩달콩 채우고픈 엄마의 욕심은 굴뚝 연기처럼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내가 올린 좋은 글을 다같이 필사해볼까?', '아이들에게 좋은 글을 찾아서 올려보라고 숙제를 내줄까?' 이런저런 고민들을 해보았다. 그러나 큰 아이의 살인적인 학원 시간표를 보니 나마저 아이를 지치게 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서로 그리움과 애정 믿음을 나눠야겠다’며 스스로 마음을 고쳐먹었다.

나와 둘째는 북경 집에서 지내고 큰아이는 서울 외할머니 댁에 머물며  카톡 방에서 이런저런 가벼운 인사로 며칠을 떨어져 보냈다. 그 와중 그래도 이곳에 의미 부여를 하고픈 엄마의 꾹 눌러놓은 욕심이 몽글몽글 부풀어 올랐다.


마침 손에 들려있던 <에이트>의 내용 중에 나누고픈 질문 하나를 카톡 방에 시험 삼아 툭 던져봤다. ‘2020년 1월 16일 오늘의 생각하기~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행동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질풍노도의 길을 질주 중인 사춘기 중3생과 노는 게 제일 좋은 초등 6학년 남아 둘에게 큰 기대를 건다면 그것이 잘못이라 생각하며 질문한 것 자체를 까맣게 잊고 있었다.


다음날 아이들과 평소처럼 인사를 나누다 공지글을 무심결에 열어보았다. 그런데 이게 웬일! 생각지도 않았던 두 아이의 간결한 생각이 달려있었다. ‘효율적인 의사소통’, ‘자연을 생각하는 것’. 비슷하며 너무나 다른 형제, 두 아이의 타고남이 그대로 묻어나는 댓글에 나는 한참을 큰소리로 웃었다. 대화 속에 묻히지 않게 공지로 올리길 잘했다며 나에게 무한 칭찬을 해주었다. 아이들에게 부담스럽지 않은 정도로 이런저런 질문을 올려보리라 다짐하며 다가올 구정 연휴에 북경에 오게 될 큰아이를 생각하며 한없이 즐거워졌다.

생각하기조차 귀찮을 법한 질문에 진지하고 진솔하게 답해준 두 아이에게 감사하며 이사 후 피곤한 몸을 추스르고 있을 때 우한에서 발생한 ‘코로나바이러스’ 가 붉어지기 시작했다.  걱정했던 큰아이는 구정 연휴에 무사히 북경을 다녀갔다. 그러나 마른 나무에 불이 옮겨타듯 무섭게 번져가는 코로나를 피해 북경에 있던 둘째와 남편, 그리고 나 셋은 며칠 뒤 서울행을 택했다. 준비할 시간도 없이 당장 필요한 것들만 던져 넣은 여행 캐리어를 질질 끌고 도착한 서울 임시 숙소에서 14일간 자가격리 생활을 하였다. 중국에서 들어온 한국인들에 대한 불편함을 대놓고 표현하는 언론과 주변의 시선, 혹시나 하는 두려움에 몸과 말, 행동을 조심히 하는 동안 대화방의 질문 공지는 개점 폐업상태가 되어 버렸다.

급히 챙긴 여행 가방 속에 몇 권의 책이 있어 스스로 자유를 반납한 14일 동안 그나마 속을 덜 끓이며 보낼 수 있었다. 자가 격리 일주일 정도 지나고 마침 <열두 발자국>을 읽고 있던 내게 지난번 질문과 비슷한 듯 다른 맥락을 궁금한 것이 하나 떠올랐다. 창의성과 지식의 차이에 대한 의견이었다. 미래에 이 둘의 가진 의미가 어떻게 적용될지 아이들이 생각해봤으면 하는 마음으로 물음표를 다시 찍어보았다.


‘2020년 2월 5일 오늘의 생각하기~ 내가 생각하는 창의성이란? 지식과 어떻게 다른가?’ 쪼르륵 올라오는 댓글에 샘솟는 기쁨이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글로 표현하기 힘겨운 자가 격리 기간의 온갖 짜증을 한 방에 날려주는 대답들이었다. 아이들의 답을 읽으니 나도 모르게 무릎이 탁 내리쳐졌다. 그래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읽거나 인상 깊은 기사 등을 접할 때면 카톡 방에 질문 공지를 올렸다. 바른 마음과 물음을 멈추지 않는 어른들로 자라나기를 바라며 '2020년 2월 11일 오늘의 생각하기~ 내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삶이란?'라는 질문을 던졌다.
​코로나로 자신의 이익보다는 불특정 다수를 위해 순수한 마음으로 의료 봉사를 떠나는 의료진을 보며 '2020년 2월 27일 오늘의 생각하기~ 내가 생각하는 이타심이란?'을 물어보기도 했다.

브레네 브라우의 취약성 강연을 보며 인상 깊었던 내용을  '2020년 3월 24일 오늘의 생각하기~ '용기'있는 행동과 '용감'한 행동의 차이는 무엇일까?'라고 질문을 해보았다. 무작정 기다려도 보고, 조르기도 했다. 아이들이 답을 다는 데 며칠이 걸리기도 했지만 감사하게도 짧지만 자신들의 생각을 올려주었다.



아이들과 나 , 주변 지인들과 우리나라 국경을 넘어 전 세계가 코로나로 인해 삶의 맥이 끊어지고 심지어 생존조차 위협을 받고 있다. 어떤 이는 코로나가 인간에게 주는 자연의 재앙이라고도 말한다. 세상이 온통 진흙탕 속에 빠진 채 급류를 타고 변해가는 듯하다.


5차 산업혁명이 예상보다 더 빨리 시작될지도 모른다며 미처 준비하지 못한 미래를 두려움 가득한 블루의 색으로 보는 시선이 많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잘못됨을 아는 이들이 분명히 있고, 인간 됨을 잃지 않으려는 노력들이 꾸준히 일어나고 있다. 나 하나가 변하면 모두 변한다 믿는다. 완벽해지는 것이 아니라 온전해지려고 작은 노력을 해나간다면 내일의 날씨에 먹구름만 가득하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작은 소망의 씨앗을 아이들과의 카톡 대화방에서 키워 내보려 한다. 우리 아이들은 배틀그라운드로 치킨 파티를 즐기고, 친구들과 먹는 햄버거가 최애 음식인 보통 아이들이다. 나 역시 지극히 평범한 주부이다. 크고 원대한 목표와 대단한 사명감이 세상을 따뜻하게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작은 모래알이 모여 너른 바닷가가 되고, 작은 돌멩이가 모여 높은 산을 이룬다. 지금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나눈 따듯함 가득한 대화들이 내일의 날씨를 맑게 해주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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