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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몽 May 16. 2020

너의 눈동자 속에 담긴 별을 찾아...

영화 <인터스텔라>를 보고

칠흑빛 깨위에 별빛 닮은 깨를 송송 뿌려 키로 흔들흔들 까부린다. 새벽이슬에 젖어있던 너른 앞뜰에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면 키를 크게 털어 촤르륵 흩뿌린다. 이내 따가운 갈햇살이 마당 어귀와 섞여가고, 꼬신 내음이 시골집 앞마당에 가득하다. 싸르를 싸르륵 흑과 백이 뒤엉키며 햇살에 영롱이 반짝인다. 해가 자홍빛 하늘을 머리에 이고 산등선이 너머로 넘어가면 뜨건 낮 마당 가득했던 흑백의 영롱함이 하늘로 번지며 가득 채운다. 시골집 처마 밑에 아이와 나란히 기대어 앉아 거뭇한 하늘을 바라보노라면 노래 봉오리가 스르르 터져 나온다.


'저 별은 나의 별, 저 별은 너의 별. 별빛이 물든 밤 같이 까만 눈동자'


고사리 손과 내 손을 포개어 짙은 밤 속으로 뻗어본다. 손 끝을 아무리 비벼보아도 닿기 어려운 곳에 들이 반짝인다. ‘아아하함~!’ 아이는 소매로 밀려오는 졸음을 닦아내고 이내 영롱함이 만천한 하늘을 바라본다. 내 눈 역시 그런 아이와 하늘을 오간다. 발밑 너른 흙의 한알 같은 나. 그리고 아이. 지금이 이 시간을 둘러싸고 있는 산, 들, 강, 바다. 지구와 또 다른 행성. 우리의 태양. 그 너머 스스로를 짓이겨 뜨거움과 차가움을 아우르며 존재, 아톰의 조각을 스스로 태워가며 빛을 발현하는 들이 있다. 이 모두를 아우르는 우주의 경이로움을 우리의 글과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별과 별 사이라는 뜻의 ‘인터스텔라(Interstellar)’.  2014년 개봉한 영화 ‘인터스텔라’는 웜홀을 통한 시간여행이 가능하다는 킵 손의 과학적 이론이 바탕으로 완성되었다.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만의 천재성으로 인류종말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을 그려냈다. 우주로 가는 이들의 가족애, 인류애, 그리고 학문과 자연, 우주와 그 너머를 향한 애증이 영화 속에 놀랍게 어우러져 녹아있다. 다채로운 토성의 띠는 보는 이로 하여금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그 옆에 어우러져 있는 블랙홀의 치명적 아름다움은 또 어떠한가? 우주가 연주하는 영상미의 아름다운 앙상블에 정신이 아련해진다. 빛마저도 빨려 들어가 다시 나오지 못한다는 거뭇함. 그 치명적인 칠흑 속으로 나도 빨려 들어가 버렸다. 그렇다. '인터스텔라' 이 영화는 블랙홀이다.



내게 ‘인터스텔라’는 조각보 같은 영화이다. 별과 우주를 좋아하는 쭈니. 큰아이에게 이 영화는 인생영화다. 덕분에 스치듯 여러 번 보았으나 정주행으로 엔딩을 본 적이 없었다. 그래도 엄마라 영화평과 기사를 좀 찾아 수박 겉만 햝짝거리듯 대화를 나눈 게 전부였다. 그러니 영화는 내 머릿속에서 뒤엉킨 퍼즐 조각처럼 남아있을 뿐이었다.




얼마 전 ‘인터스텔라’ 영화평을 써야 할 일이 있어 한밤중에 이어폰을 낀 채 화면에 푹 빠져있었다. 학원에서 막 돌아온 큰 아이가 살며시 다가와 묻는다.


“엄마 웬일이야? 이 영화를 지금 왜 봐?”


먼저 물어보는 일이 통 없는 아이인데, 물음표 가득한 얼굴로 조용히 옆에 앉았다. 나와 화면을 번갈아 보더니 펼쳐지는 장면에 눈을 고정시켰다. 나는 슬며시 아이의 귀에 이어폰 하나를 넘겨주었다.


"숙제야. 웃기지? ㅎㅎㅎ 그런데 너랑 같이 영화 보는 게 이 얼마만이니? 중학생 되고 같이 극장에 간 적이 없으니까. 음... 정말 오랜만이다. 기분 묘하게 좋은데, 처음부터 다시 볼까? 어때?"

"아니 괜찮아. 몇 번을 다시 봐서."

"그래그래, 쭈니가 하고 싶은데로 하자."

우린 이내 손바닥만 한 우주 속으로 빠져들었다. 문득 나는 궁금해졌다.

"근데 너는 어느 장면이 제일 기억에 남아?"

"음... 인듀어런스호가 토성 가까이 갔을 때. 블랙홀을 지나 움직일 때..."

"응응? 왜? 내용이 있는 부분도 아니고. 뭐가 그리 재미있었어?"

“왜? 아름답잖아. 정말로... 엄마는 안 그랬어? 우주의 모습이 너무 아름다웠어. 가보고 싶어. 정말로 직접 보고 싶어..."


쭈니의 우주선과 인공위성 스케치

벽에 기대어 내게 조용히 속삭이는 아이의 표정을 본 순간. 볼이 발그레해져 웃고 있다. 그 아이, 사춘기 소년인 녀석이 첫사랑 친구 이야기를 내게 고백하듯 수줍게 종알거린다. 그저 아름다워. 그곳에 가고 싶어. 밤하늘을 올려다보던 아이가 그 별과 너머를 동경하다니. 녀석의 별을 향한 마음이 이리 클것이라 꿈에도 생각 못했다. 산에 올라 보고 바다의 수평선 너머를 쳐다보며 마천루 옥탑에서 넋을 잃고 하늘을 바라보던 아이의 눈빛 속에 항상 별이 담겨있었음을.


“난 정말로 우주에 가고 싶어. 갈 수 있는 우주선, 그곳에서 살 수 있는 큐퍼 스테이션 같은 우주정거장을 만드는 게 내 꿈이야.”

“야 영화처럼 우주로 가면 엄마랑 다시 못 볼지도 모르는데. 어유 야... 엄마 그런 거 정말 싫어, 직접 만나지도 못하고, 메시지나 전하고...”

“엄마가 동면하고 기다려. 그럼, 내가 갈 테니까. 지금 기술이면 정말 그런 날이 곧 올지도 몰라.”


순간 녀석이 나보다 덩치가 열 배는 커다란 어른처럼 보였다.
아름답다니... 순수한 동경. 그러하기에 손이 닿고 싶은 열정.
난 너무 오랫동안 까맣게 잊고 있었다.




십여 년간 문화적 경험과는 담쌓고 지냈다. 원래 열어보지도 않았던 책, 그나마 영화, 음악이나 종종 접했다. 아이들 키우고 살림하느라 그랬다... 는 것은 솔직히 핑계이다. 보고 듣고 느끼는 것에 큰 노력과 시간이 필요치 않음을 알았지만. 쉽고 말초적인 것들로 온몸의 촉수가 향했다. '난 원래 그래. 복잡한 건 딱 질색이야. 아줌마는 원래 그래.'라고 나를 정의 내리며.


틀 속에 빗장을 걸어 잠근 것은 남편도 아이도 세상도 아닌 바로 나였다. 딱딱한 번데기를 찢고 나오기가 두려웠나 보다. 견딜 수 있다고 믿었고, 변태를 거친 내가 나비로 화하리라는 보장도 없었기에. 나뭇잎 그늘에 붙어 말라비틀어진 번데기로 굳어져 갔다. 밤하늘의 별이 주는 빛, 따뜻한 하늘이 불어내는 바람은 애써 외면한 채. 그 자연이 전하는 운율에 귀를 닫은 채. 동그랗게 몸을 말아 번데기 속에 숨어 있었다.


나의 한 조각인 아이야. 너는 너의 별을 보았구나.
나보다 먼저. 내 가슴의 두근거림이 들리니?
별을 바라보는 너. 그런 네게서.
내 마음이 별의 뜨거움이.
별을 찾아가는 네가 있어서.
너의 눈 속에 그 별빛이 담겨 있구나
넌 너의 빛을 따르렴.
난 나의 빛을 쫓을게
밝음으로

화花몽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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