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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몽 Aug 08. 2020

‘우그우’ 너, 도대체 어느 별에서 왔니?

불안을 잠재워주는 영혼의 단짝, 우리는 죽는 순간까지 어린아이일지 모른다


# 애착 인형
어린아이가 매우 좋아하여 떨어지려 하지 않는 인형. 유아기 분리불안으로 나타나는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항상 들고 다니며 접촉 안락감을 주기 위한 봉제인형. 인형 대신 베개나 이불을 들고 다니기도 한다.  18개월에서 3세 전후에 보이며 서서히 사라진다.


첫째아들 쭈니의 태명은 ‘북득’이다. 북경에서 얻은 아이라는 뜻이다. 쭈니는 내게 결혼과 동시에 축복처럼 찾아왔다. 남편 손만 잡고 북경이란 낯선 곳으로 떠난 내게 기쁨만큼 두려움도 커졌다. 게다가 남편이 갑자기 우한으로 발령나며 걱정은 내 머리를 짓눌렀다. 이런 걱정에 콧방귀 키듯 북득이, 쭈니는 내 뱃속에서 쑥쑥 자랐다. 2005년 3월 초 쌀쌀한 이른 봄, 아이는 우렁찬 울음으로 태어남을 알렸다. '별을 따다 넣었나?'라는 유치 찬란한 말만이 쭈니의 눈빛을 그려냈다. 백일까지 친청에서 지낸 뒤 우한, 우리 집으로 향했다. 역마살, 내게 그것이 있나 보다. 사주쟁이의 말들을 되뇔 만큼 쭈니와 나는 우한을 찍고 북경, 광주로 이사를 다녔다. 그때마다 쭈니의 한 손에는 귀 끝이 해진 동그란 짱구베개가 다른 손에는 너덜너덜해진 잠자리 책이 들려져 있었다. 매일 밤 짱구베개를 손으로 비비며 잠이 드는 아이, 누렇게 색이 바랜 인형은 아이의 불안감을 마법의 묘약처럼 잠재워줬다. 어쩌면 엄마인 나의 불안감이 짱구베개를 아이손에 쓰윽 밀어주었는지도 모른다. 씩씩한 어른인 듯 보였던 나도 사실 새로운 곳이 두려웠는지도.



5년간의 중국 생활을 마치고 한국을 돌아왔다. 그리고 아이가 7살이 되던 해 여름 남경으로 떠났다. 다시 낯선 곳으로.



쭈니는 높은 곳을 참으로 좋아한다. 어쩌면 사랑한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지도 모른다. 놀이터를 가도 어느새 제일 꼭대기를 향했고 동네 산을 올라도 꼭 정상을 밟았다. 또래와 다르게 자라기도 했지만 친구들과 많은 부분이 달랐다. 네 살 베기 아가가 생일선물로 별을 보고 싶다고 했을 정도였으니. 녀석은 하늘에 대한 동경은 어디까지일까? 높은 곳에서 보는 하늘이 너무 좋고 멀리까지 볼 수 있다며 환한 미소를 짓는 쭈니는 위해 우리 가족은 마천루 탐사를 떠났다. '남경은 산이 없는곳, 그렇다면 인간이 만든 건물의 끝으로 올라가자.' 우리 가족은 가까운 상해의 스카이라인을 하나씩 점령해 보기로 했다. 높은 건물들이 포진해 있는 상해의 호텔과 타워들을 알아보고 그 첫 등반지로 '파크 하얏트 상하이'를 선택했다. 역시 첫 타석에 홈런! 푸동이 한눈에 들어오는 멋진 뷰, 특히 진마오따사와 동방명주가 네모난 창문 안에 쏙 안겨오는 야경은 그 자체가 작품이었다. 룸 컨디션, 수영장, 조식을 위한 최상층 식당까지 무엇 하나 실망시키지 않았다. 자동 엄지 척!

띠리링. 룸을 열고 들어가자 웰컴 메시지와 작은 선물이 있었다. 두 아이를 위한 작은 곰인형 2마리와 초콜릿 쿠키가 놓여있었다. 이번 탐험의 전리품을 들고 아이들은 창틀로 번쩍 뛰어올랐고 남편과 나는 소소한 서비스에 즐거웠다. 작은 갈색 리본으로 멋을 낸 곰인형이 쭈니의 운명의 짝이 될지는 꿈에도 몰랐다. 쭈니는 뭔가를 안고 자던 버릇이 있었다. 8살 쭈니는 여행에서 돌아온 날부터 곰인형에게 옆자리를 내주었다. 새로운 곳 처음 가는 학교 낯선 친구들 사이의 낯섦에 작은 곰인형은 아이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그 인형의 이름은 '우그우'이다. 오늘 밤도 쭈니를 토닥거리며 꿈나라로 안내해줄 둘도 없는 평생지기이다.


쭈니는 올해 중 3, 그러니까 15살이 되었다. 북한군도 벌벌 떤다는 대한민국 남중생이다. 얼굴의 절반이 울긋불긋 여드름 꽃대궐, 사춘기의 한가운데에 서있다. 숫기는 여전히 없다. 새 학년이 되어도 한 번의 방학을 거쳐야 친구가 생긴다. 나와의 대화도 ‘네, 아니.’라는 흑백의 답이 대화의 대부분이다. 이런 쭈니에게 우그우는 십 년 가까이 마음을 나눈 친구이다.  귀찮아 세수도 안 하는 쭈니가 우그우를 조물딱 거리면 빨곤 한다. 플라스틱 눈에 흠집이 잔뜩 났다며 잘 보이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풍성했던 털들이 빠져 피부가 드러나 안타까워한다. 가까운 곳으로 여행을 떠나도 제일 먼저 우그우를 가방에 넣는다. 게임을 할 때면 모니터 옆에 앉히고, 책도 함께 읽는다.

속을 쉽게 드러내지 못하는 아이에게 우구우는 대변인이 되기를 자처한다. 지금도 아이는 우구우를 통해 마음을 전한다. ‘사랑해. 고마워. 부탁해. 걱정이야. 힘들어.’등의 마음을 수줍게 전한다. 쭈니의 내면 아이의 언어를 우구우가 전한다. 매번 같은 음절의 반복이지만 수백수만 가지의 뜻을 지닌다.  나는 이 우그우의 언어로 아이의 눈을 읽는다. 반대로 내가 아이에게 다가갈 때도 우그우를 통한다. 내손으로 우구우를 감싸 안고. ‘속상해, 기운 내, 파이팅, 힘내라, 열심히 하자, 사랑해.’ 사람이 약속한 언어로 전할 수 마음속 찐 메시지를 내비친다.


“우그으 우그으으우그으우우우”

2020년 우리 가족은 또 북경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바라만 보던 하늘을 넘어 우주로 날아가겠다는 꿈을 위해 쭈니는 서울에 남겠다고 선언했다. 나는 덜컥 겁이 났다. 걱정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이런저런 걱정 어린 잔소리를 끝없이 하는 내 옷깃을 우구우가 잡아당겼다. ‘걱정하지 말라고 내가 쭈니와 함께 있다고, 쭈니를 믿어달라고.’

누구나 걱정을 하며 산다. 불안함을 감추기도 어렵다. 그래서 마음 한편에 알사탕을 양볼 가득 물고 있는 유년시절의 아이를 품고 있다. 꺼내놓기 어려웠던 감정의 찌꺼기들을 사탕처럼 먹고 자란 아이. 십 년 전, 이십여 년 길게는 수십 년 전의 또 다른 나. 그때 과연 알사탕처럼 달콤하기만 했을까? 기억이 너른 바다로 흘러들고 희석되어 온갖 감정이 흐릿해진 것뿐일지도. 멍하니 목적지 없는 시선을 던질 때, 이 아이는 내 마음속 어딘가를 콩콩 두드리곤 한다. 웃고 울며 때론 불을 뿜으며 웅크리고 있던 몸을 쭉 피며 일어난다. 당신의 아이는 지금 어떤 표정으로 가슴속에 있는지  바라봄이 어떨까? 아이가 울음을 터뜨리기 전에 먼저 따뜻하게 말을 건네며 다독여봐야지. 내 안의 아이가 쓰는 언어로 사랑을 속삭여 본다. 쭈니에게는 우구우가 있으니, 나도 내대신 걱정을 해주는 대변인을 찾아 나서야겠다. 인형을 안고 다니기에 이미 너무 나이가 들었으니 은 어떨까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Would you like to read a book with me?”
“要不要跟我看书?”
< 우구우와 함께하는 우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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