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화몽 Sep 01. 2020

유니, 서울에서 북경의 멘토를 만나다.

북경 국제학교 새 학년, 새 학기를 준비하며.

몇일전부터 받은 편지함이 매우 묵직해졌다.

받은 편지함에는 미개봉 편지가 수천 통이다. 옆에서 힐끗 핸드폰 화면을 들여다본 아이가 3***이라는 빨간 숫자에 깜놀한다. 대부분 광고성 메일이다. 나의 의지와 크게 상관없이 전달되는 소식들인 셈이다. ‘스팸메일’이라 불리는 0, 1의 조합들은 자동으로 분류되는 스팸메일함 잘도 피해 내 이메일 함을 가득 채운다. 오히려 중요한 이메일이 스팸 메일함으로 들어가 쉽게 지나치곤 한다. 그래서 지난주내내 정신을 바짝 차리고 메일함을 수시로 확인했다. 작은아이의 개학이 코앞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개학이 다가오니 학교 맘들의 위챗 방도 뜨끈뜨끈하다. 지난 봄학기까지 함께했던 5학년 챗방에서 나와 새 학년 새판으로 갈아탔다. 한국 맘들의 단톡 방도 시끌시끌, 6학년 2반 맘들도 그들대로 바쁘게 손가락을 움직인다.  9월 1일 아침 아파트 정문을 건너 스쿨버스를 기다린다. 학교를 향한 먼 길을 떠날 아이를 배웅해야 한다. 이것이 2020년 1월 이전의 일상이다. 그러나 원통하게도 코로나 19가 우리의 생활을 통째로 뒤흔들었고 아이와 나는 지금 스쿨버스를 타기 위해 신호등을 건널 수 없는게 현실.


나는 위챗 방을 통해 여러 앱들을 다운로드했다. 이번 주 목요일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차근차근 준비 중이다. 월요일 코로나 검사를 받았고 반년 이상 지내며 눈더미처럼 불어난 짐을 정리하고 있다. 이미 중국에 건너가 자가격리 중이라며 실시간으로 그 고단함을 전하는 J의 엄마. 초청장이 이제야 나와 비자를 신청할 수 있다며 9월 말에는 다 만나자며 미소 짓는 이모티콘을 띄우는 M의 엄마. 같은 비행기로 떠나네 되니 인사를 전한다는 A의 엄마... 이전의 생활을 찾아감에 조심히 기쁜 마음을 나누고 있다. 학교 선생님들 대부분이 아직 북경에 입국 전이다. 아이는 거리 지키기와 헬스키트를 항상 사용하며 학교생활을 해야 한다. 불편함이 크겠지만 작은 행보라도 이전으로 다가갈 수 있음에 감사한 마음이다.


이 와중에도 한국 맘들의 가장 큰 고민은 한 반에 몇 명의 모국 학생이 있는가이다. 혼자여도 눈물 나고 너무 많아도 섭섭하다. 내 생각에도 적정인원을 3~4명이지만 묘하게도 분반은 부적절하다. 국제학교라는 환경이 아이들에게 언어 이상의 것들을 선사한다.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수업을 하므로 아이들은 스스로 배워나간다. 교사의 역할은 영양소를 따져 담은 음식을 숟가락에 떠 입안에 넣어주는 것이 아니다. 아이들의 성장에 양분이 되어줄 다양한 흙과 거름 적당한 기후와 도구들을 흩뿌려 놓는다. 아이들이 이를 잘 보고 선택할 수 있도록 도움만 준다. 양손과 두발로 흙길을 걸으며 몸으로 배운다. 오감을 통해 자라나는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국제학교의 교육의 가장 큰 장점은 이것이다. 공교육에서는 배우기가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에 이번 경험이 매우 소중하고 감사하다. 안타깝게도 종종 이런 교육과정보다 언어 자체에 큰 비중을 두는 엄마들이 있기도 하다. 그래서 한 반에 자국의 아이들이 많아지면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다. 피부색이 전혀 다른 아이들이 가득하기를 바란다. 학교에서 배우는 언어가 중요치 않다는 것은 아니다. 영어로 수업하기 때문에 당장 이가 막중하다. 하지만 오감으로 배우는 수업에서 더 귀중한 것은 다양한 경험이다. 또한 아이의 만족감과 즐거움이 배움의 결과와 직결된다고 믿는다. 아이들끼리 모국어로 좀 떠들면 어떠한가? 그들끼리 융합되고 어울리며 새로운 에너지를 만들어낸다. 학교가 즐거워야 타국의 아이들과도 섞일 수 있다. 팔이 안으로 굽어 다독여야 밖으로 벌려 끌어안을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하지 않을까?


코로나로 변화된 환경 중 가장 큰 것이 바로 타인과 대면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이다. 지난주 유니의 멘토이자 담임과 ZOOM을 통해 처음 만났다. 그녀가 ZOOM으로 만날 시간을 잡자는 이메일을 확인하고 솔직히 실망했다. 제일 먼저 내 눈이 간 것이 바로 그녀의 이름이다. 중국 병음. 그녀는 중국계 외국인일 것이 분명했다. 나 역시 속물임이 여실히 드러남에 순간 얼굴이 뜨거워졌다. 아쉽지만 그녀가 제안한 여러 시간 중 하나를 골라 답 메일을 보냈다.


다음날 그 시간 그녀와의 대화가 시작되었다. 대화를 나누며 내 안에서 스멀스멀 올라오던 걱정들은 조금씩 사그라들었다. 오히려 나 자신을 반성하였다. 문화와 학문, 사회를 배워가는 곳에서 선생님의 국적에 마음이 상하다니. 모국어가 영어인 게 무엇이 중요하단 말인가? 멘토이자 담임인 그녀는 유니에게 중학생이 되면서 느껴지는 두려움과 걱정거리를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이런 감정들이 지극히 당연하다며 직시하고 자신과 나누자는 선생님의 모습에 그녀가 외모에 실망했던 나 자신이 부끄러워 쥐구멍을 찾고 싶었다. 내가 목요일에 돌아갈 예정이라고 하자 그때까지 가족들과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정을 나누고 오라 했다. 더불어 뉴질랜드인인 자신의 남편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한국의 프라이드치킨이라며 농담을 건네기도 했다. 한류와 음식등 한국문화에 대한 관심을 드러내며 나와 아이에게 다가오려 노력하는 모습이 모니터 건너로 넘어와 느낄 수 있었다. 게다가 수학 선생님이 아닌가! 앗, 다시 속물로 잠시 변신하는 나.


유니는 13살이 되었다. 사춘기 언저리에 다가가면 타국의 아이들과 친구가 되기 어려워진다. 이미 사회문화적으로 달라져 있기 때문이다. 유니가 행복하다면 같은 반에 한국 아이들이 많아도 좋다. 상처를 조금 덜 받고  이를 이겨내고 같이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게 학교라는 사회 아닌가. 영어는 파파고가 있다. 내가 파파고와 절친이 되었듯. 소통과 문화 이로서 자신의 꿈을 찾아 나가는 곳, 그곳이 학교가 되기를 바란다. 행복해지자. 유니야.


내일이 아! 기다리고, 고! 고대하던 개학이다. 홈런볼 유니가 중학생이 된 것을 축하하며 성장의 한 걸음을 내디디고 미래를 향해 힘껏 배트를 휘둘려 보기를. 한국에 우그우와 남는 쭈니도 대기권을 넘어 우주로 향해 날아갈 그 날을 위해 GOGOGO!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