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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몽 Jul 14. 2020

내가 뿌린 꽃씨, 스스로 청년의 꽃대를 피우네.

2019년 여름의 한가운데, 지리산에서 새 꽃망울을 키워내는 아이.


백두산 병사봉에서 지리산 천왕봉으로 끝나는 맥세를 백두대간(白頭大幹)이라고 부른다.
지리산은 백두, 금강, 한라와 함께 한반도의 뼈대이자 백두대간의 큰 줄기이다.


지리산은 백두, 금강, 한라와 함께 한반도의 뼈대이자 백두대간의 큰 줄기이다. 영호남을 잇는 신성함이 깃든 거대한 산줄기. 물리적으로 크고 넓다는 언어적 표현으로는 설명이 턱없이 부족하다. 내가 나고 살아온 땅을 가꿔낸 어머니의 품 같은 곳, 산을 모르던 시절부터 궁금했다. 흰 저고리를 입고 너르게 팔을 벌린 푸근한 품에 안겨본 이들의 산행 담은 수없이 들어왔다. 그 품이 그리워 올랐고, 끝없이 너른 풍경이 주는 온화함과 경이로움에 심취할 수밖에 없었다고. 하지만 그들은 두 다리로 올라서 짐승의 다리로 산을 내려왔다. 우리 어머니들의 인고의 세월이 고되었듯이. 2018년 1월부터 아이와 함께 산을 탔다. 우리 둘은 몸이 가벼웠고, 제법 잘 걸었다. 산행의 모든 찰나를 아꼈으며 온몸을 다해 느꼈다. 산이 흔쾌히 내어준 흙과 바위 능선을 감사한 마음으로 올랐다. 설악산을 가보고 싶다는 아이의 바람으로 시작된 매달의 산행, 도전이라는 단어가 맘속에서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쭈니야, 우리 지리산과 설악산 종주해볼래?"

"종주? 그게 뭐야?"

"산봉우리 한두 개만 오르는 게 아니라 산 전체의 능선을 넘어가는 거야. 어때? 설악의 대청봉은 작년에 가봤으니 지리산부터 도전해볼까?"

”지리산? 아빠가 다녀오다 죽을뻔했다는? 안 어렵겠어?"

"엄마가 계획 잘 짜 볼게. 지금 아니면 너랑 내가 같이 언제 가볼 수 있겠니?"

”응, 그래. 그럼 가보지 뭐."


그렇게 준비를 시작했고, 달이 휘영청 떠 있는 7월의 마지막 날 지리산의 서쪽 끝 화엄사로 향했다.


돋을볕을 따라 가파르게 오르기를 네댓 시간 드디어 노고단 고개 초소에 도착했다. 모 아나운서의 유명 CF로 기억되는 이곳. 그래서인지 남녀노소가 사시사철 찾아 노고단은 극심한 병치레를 했다. 1991년부터 10년간 입산 금지 후 조금씩 살아나 지금의 모습을 되찾은 것이라고. 그 이후 예약을 해야만 노고단 정상을 오를 수 있었다. 우리는 당당히 노고단 정상을 향해 올랐다. '구름 위의 꽃밭'이라고 불린다는 노고단. '와. 세상에...' 정돈된 데크길 좌우로는 무릎 높이의 이름 모를 풀꽃들이 흔들거리며 나를 반겼다.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은 항상 나를 감동시키지만 지리산의 첫 봉오리가 선물하는 운해 위에 펼쳐진 절경이란. 인간의 언어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산그리메에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억 겹의 시간을 견디며 피어오른 산봉우리가 폭신한 구름밭 위로 솟은 꽃이었다.


지리산의 3대봉 중 하나인 이곳은 우리말로는 '할미단'이라 불렸다. 노고 할머니를 기리는 돌탑을 올려다보니 두 손이 저절로 모였다. 하늘과 맞닿은 늙은 어미의 품에서 마음을 모았다. 아이와 나는 조용히 서로를 바라보니 고개를 끄덕였다. 내 바람을 아이도 알까? 그 아이의 마음을 난 알 것 같았다. 산에 오르면 말이 줄어든다. 흐르는 바람이 서로의 마음을 진솔하게 전해주니 말은 거추장스럽기 그지없었다. 움직임만으로도 그 모든 소통이 가능했다.

< 지리산에서 만난 아름다운 풀꽃들 >


'구름 위의 꽃밭'이 뿜는 향에 푹 빠져 시간을 잊었나 보다. 산을 타는 사람은 화대 종주를 한 사람과 안 한 사람으로 나뉜다 했다. 이에 겁 없이 도전했을 때, 시간과 체력이 두 가지를 철저히 계획하라 했는데, 삼각김밥을 뜯어먹으며 식사 시간도 아끼며 걸었다. 햇살이 곧 정수리 위에 오를듯했다. 계획대로라면 오전 중에 노고단을 지났어야 했다. 봉마다 시간을 쪼개고 걷는 것은 노동일 뿐이라는 생각에 산과 눈 맞춤을 너무 많은 시간을 보냈다.  2시간 가까이 지체되었다. 세석대피소의 입실 시간은 6시였다. 앞으로 펼쳐질 산길에 대한 기대 반 두려움 반에 은근히 긴장감이 더해졌다.


주봉들과 종주길들에 대해 공부를 하고 왔지만 낯선 첩첩산중. 걸음에 걸음을 더하기만도 힘겨웠다. 이 봉이 뉘 봉이냐? 저 봉은 또 무슨 봉이냐? 등산 어플과 지도를 펼쳐 보고 또 봐도 내 눈엔 다 아름다운 봉오리 들일뿐. 지나는 길에 있는 이정표를 확인을 해봐도 지리산 주 능선일 뿐. 가도 가도 끝이 없다는 말이 이 길에서 나온 말이 아닐까?


"엄마, 얼마나 왔어? 우리가 몇 개의 봉오리를 넘었지?"

"쭈니야. 너도 잘 알겠지만, 엄마가 지도 잘 못 봐. 네가 한번 보겠니?"

"음. 세석대피소까지 가야 하는 거야?"

"응..."

"여기, 음 조금 전에 반야봉을 지났으니 곧 삼도봉이네."


삼도봉은 또 무엇이란 말인가? 전라남도로 올라와 전라북도와 경상남도가 서로 끌어안고 있는 곳. 지리산 어미의 저고리 그 옷고름이 묶여있는 봉오리였다. 온 길을 돌아보며 감탄하니 좌우의 어깨를 이루고 있는 봉오리들이 우리를 응원해주듯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어머니의 젖줄 위에 잠시 앉아 땀을 식히며 바람이 연주하는 피리 소리에 흥을 일으키며 앞으로 나갔다. 산길에서 사람을 만나면 너무나 반갑다. 고단한 길에서 만나면 더욱더 그렇다. 그들이 건네는 짧은 인사는 산길 옆에 피어오르는 들꽃 같다. 순박한 웃음이 만개한 꽃이다. 은은한 향을 느끼며 연천하로 향하는 나무 계단을 탄다. 미끄러지듯 내려 타는 계단이 단단하게 굳어오는 종아리를 풀어주었다. 그러나 내려간 만큼 다시 오를 생각에 아찔해졌다. 빽빽한 숲 속에 숨겨진 토끼봉을 향해 또 올랐다. 산길 군데군데 지리산의 안주인인 곰을 조심하라는 플랫 카드가 걸려있다. 우리가 그들의 터전에 맘대로 들어온 것인데 미안해야 함이 옳지 않은가? 자연의 감사함을 모른 채 산을 범하는 이들의 생각에 얼굴이 구겨지고 말았다.


"엄마, 이거 봐!"


아이가 스틱 끝으로 길옆에 있는 무언가를 가리킨다. 산짐승의 배설물이다. 아이는 지리산 반달곰의 것이 아닐까 하며 좌우를 살핀다. 오는 길에도 여러 번 보았다고 이제야 말했다. 홀로 지리산을 탈 때는 가방에 방울을 단다는 말을 들었다. 산짐승에게 사람의 존재를 알리는 소리라 들었다. 노래라도 불러볼까 했지만, 이 또한 지리산에 끼치는 민폐란 생각이 스쳤다.


우려보다 아기자기하고 지루한만하면 탁 트인 산경이 설악 같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 즈음 벽소령 대피소에 당도했다. 오늘의 잠자리 세석대피소까지는 6.5Km. 다리만 주무르며 빵 덩어리를 하나 입에 물었다. 화대 종주에 대해 찾아보며 어디서 읽은 글 한 줄이 갑자기 떠올랐다. 세석대피소에 가는  마지막  시간이 염라대왕 만나러 가는 길이라고. 이미 온종일 몇 개의 봉우리를 올랐다 내리기를 반복해서인지 온몸은 너덜너덜 만신창이가 되었다. 세상에 계단 손잡이를 잡고 오르고 또 오르더니 다시 내려가란다. 하늘은 오렌지빛으로 멀리부터 물들어졌다. 아뿔싸! 입실 시간!


"저 예약자인데요, 입실 시간에 못 맞출 것 같아요. 어쩌지요?"

"지금 어디 신가요?"

"칠선봉이 금방 이네요. 거리는 얼마 안 남은 것 같은데요."

"아이고, 입실 시간에는 어림도 없고 9시다 되어야 오실 수 있겠네요. 예약하신 것을 보니 아이도 있는데 빨리 오세요. 해가 지면 산 위험합니다."

"네..."

지칠 대로 지친 표정으로 날 보는 아이를 보니 사실대로 말할 수가 없었다. 그냥 가자. 말을 건네고는 뛰었다는 표현이 알맞을 속도로 걷었다. 너무 힘들면 힘든 것을 못 느낀다고 하였나? 극기에 도전한다는 청소년 시절 극기훈련이 떠올랐다. 왜 난 이 고생을 사서 하지? 제정신이 아니었나 보다. 힘들어 숨도 안 쉬어진다. 영혼이 가출한다는 표현이 이럴 때 딱 맞았다. 칠 선 봉을 지나니 세상에 내리막길이다. 내려가기가 무섭다. 마지막 봉오리가 남아있는데 그것도 지리산 삼주봉들만큼 높은 영신봉 마의 계단. 다시 올라 넘어야 한다니 줄이라도 던져 타고 가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아이가 눈물도 없이 울기 시작했다. 힘들어 눈물도 안 난다 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이제는 기어간다. 주황을 넘어 붉게 타들어 가는 하늘을 향해 기어올랐다. 악 물은 이에 입술이 찢어질 듯할 때야 오늘 마지막 봉우리에 올랐다.


깊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땅만 보던 고개를 들어 올린 순간 세상에 이런 색의 움직임은 처음 봤다. 지구 저 안에서 꿈틀대야 할 불들이 하늘 위에 올라와 있었다. 불타오른다. 활활 하늘이 뜨겁다 못해 폭발이라도 할 듯 이글거리며 시야의 모든 곳을 물들이고 있었다. 이곳에 내가 서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산그리메에 걸쳐있는 운해를 모조리 태워버리며 하루가 끝을 내고 있었다.


“엄마, 가자. 이상한 소리가 나. 빨리 가자. 무서워...”

“응?”

“안 들려? 곰 우는 소리가 들리잖아. 어미 곰이 새끼 곰을 찾는 걸지 몰라. 무서워. 해도 졌는데. 산은 금방 어두워진데. 한 시간이 넘게 사람도 못 만났는데... 무서... 워...”

“미안. 잠시만 보고 얼른 가자. 아니다. 빨리 가자. 미안해.”


떨리는 손으로 나를 잡은 아이, 천상의 풍경에 시간이 8시가 다 되었음도 잊었다. 넋을 놓아 피었던 허리가 발을 떼니 다시 억 소리 났다. 마음은 두발인데 현실은 세 발, 네발로 기듯이 뛰어갔다. 눈앞에 세석대피소가 보였고, 관리자와 통화 후 겨우 북적거리는 대피소 안에 자리를 잡았다. 전화기가 없는 아이라 안된다는 것을 겨우 부탁해 내 옆에 자리를 잡았다. 씻으니 저녁이고 뭐고 눈이 스르르 감겼다. 주먹밥을 대충 비벼서 억지로 몇 개를 입에 넣고 모포를 탈탈 털어 아이와 얼굴을 마주하고 누웠다.


‘헉!’


부스스 눈을 뜨니 창밖은 이미 빛이 한가득하였다. 계획된 시간보다 무려 4시간이 지났다. 천왕봉 일출은 고사하고, 오늘 평지를 밟고 서울로 향하려면. 두 눈에 불을 켜고 부랴부랴 움직였다. 그 수를 헤아릴 수 없는 계단들과 암릉지대를 통과하여 바다 위 1,915Km 위에 우뚝 솟아있는 천왕봉에 올랐다. 오르는 길에는 만나기 힘들었던 것이 사람이었는데, 천왕봉에는 지리산을 둘러싸고 있는 구름만큼 사람들이 많았다. 눈으로 사방을 찍어 마음속에 담고 서둘러 하산길을 떠났다. 하산이라고 하기엔 아직 여러 봉우리를 다시 올라야 하는 웃픈 현실은 어찌할까? 자 12km. 갈 수 있다. 내 다리는 땅속에 묻혀가는데 어젯밤 죽겠다던 아이는 훨훨 날았다. 불공평한 세상이여! 중봉과 써리봉을 지나 치밭목 대피소에서 점심 겸 저녁을 먹었다. 무섭게 지루한 길을 데구루루 구르듯 움직였다.


지쳐 쓰러지기 전 무재치기 폭포의 이정표가 보였다. 계획은 없었지만, 폭포를 좋아하는 아이와 이 지루함을 벗어나기 위해 들려가기로 했다. 거대한 지리산을 받들고 있는 암반 위를 튀기듯 흐르는 물의 모습을 보니 ‘물방울이 튀어 무지개를 친다.'는 이름이 무색지 않았다. 역시 산길은 물리적 거리로 계산하면 안 되었다. 왕복 200여 미터라 다녀왔는데 시간을 너무 허비하였다. 하산하는 숲길 정말 나무 사이를 가고 또 갔다. 지루하여 더욱더 힘들다는 끝이 없는 험한 숲길. 스틱에 몸을 의지해 대원사 탐방로 출구에 도착했다. 아이의 눈빛이 제발 그만 걷자고 울고 있었다. 아이에게는 다음 기회가 있을지 모르나 내게는 없다고 생각했다. 완주라는 두 글자에 욕심을 냈다. 여름 해로 달궈진 꺼먼 아스팔트를 더 걸어 삼장분소에 도착했다. 막차 시간이 10여 분 남긴 터라 젖 먹던 힘까지 짜내어 매표소를 향해 뛰었다.


" 아주머니, 원지 터미널행 버스표 두 장 주세요."

" 이런 얼마 전부터 막차 시간이 바뀌었어요. 30분 전에 떠났습니다. 이제 버스 없어요."

"...... 네?....."

후들거리던 다리를 지탱해주던 땅마저 흔들리기 시작했다. 360도 회전하는 놀이기구를 처음 탔던 그 날의 어지러움이 나를 덮쳤다.

"어디로 가요?"

"네... 서울요"

"그럼 택시 불러줄게요. 진주 터미널에서 타고 올라가요. 이것도 있으려나 모르겠네. 기다려봐요. 몇 군데 연락해볼 테니."

"... 네, 감사해요. 시원한 음료수 있나요?."

"저쪽 슈퍼 건물 앞에서 고르세요."


눈물을 꾹 참고 이를 악물며 나를 따라주었던 아이에게 미안해 고개를 들 수 없었다. 택시 탈 것을... 아이에게 시원한 사이다 한 캔을 건넸다. '딸깍' 캔 뚜껑 열리는 소리의 율동감이 이리 경괘했던가?  평상에 앉아 천 원짜리 사이다 한 캔에 방긋 웃는 아이. 내가 뿌린 씨앗이지만 이 얼마나 감사하게 자라주었는지. 사람이 꽃이며 그보다 아름답다는 노래가 순간 떠올랐다. 어제와 오늘이 주마등같이 스쳐 갔다. 자연이 내게 준 생명의 아름다움이 지금 내 눈앞에 있지 않은가? 그 생기와 밝음에 내 입가에도 조용히 웃음꽃이 피었다. 피식하며 새어 나오는 웃음에 아이가 ‘엄마, 왜 그래’라는 눈빛을 던졌다. 손을 뻗어 땀과 흙먼지로 범벅이 된 아이의 머리를 손으로 빗겨주었다. '고마워. 사랑해.' 굳이 말하지 않아도 내 맘이 전해졌음을 알았다. 쭈니가 캔을 내밀었다. "엄마도 목마르잖아."


쭈니가 캔을 내밀었다. "엄마도 목마르잖아.”


아름답기로 치면 꽃보다 더한 것이 세상에 무엇일까? 하지만 꽃은 지면 그만, 향은 바람이 전하는 곳이 끝이다. 내게 사람은 꽃이다. 마음으로 피우는 꽃은 마음속에 단단히 뿌리를 내린다. 그리하여 수시로 소환되어 코끝에 잔향을 흩뿌린다. 택시를 기다리며 눈앞에서 아이란 꽃을 떨구고 청년의 꽃대를 올리려는 모습을 보았다. 모양과 향으로 뽐내기에 정신없는 장미 같은 꽃이 아닌 산중에 피어있던 소박하고 단단한 들꽃으로 피어날. 더는 쭈니가 아닌 유준이라는 자신만의 꽃망울을 활짝 펼칠 그 날을 지리산의 흙처럼 조용히 기다려주리라.

< 지리산, 서쪽끝에서 동쪽끝까지 완주한 너와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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