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화몽 Jul 27. 2020

은빛 바퀴를 굴리며 달린다.

누구나 방황과 좌절을 겪는다. 그래도 삶이란 바퀴는 관성으로 구른다.

“으~~~~~ 앙!!! 엉엉!!! 엄마!!!!!”

천둥이 내려치는 듯한 소리가 아파트 단지 안을 뒤흔들었다. 순간 눈앞은 깜깜해지고 머릿속은 새하얘졌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가방끈을 부여잡았다.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뛰었다. 귀가 찢어질 듯 하늘을 울리는 비명, 나를 부르는 쭈니였다.


#1 쭈니   자전거

처음이란 단어 안에는 많은 감정이 녹아있다. 설렘과 두려움. 소중함과 낯섦.... 시작점에 서면 모든 것이 조심스러웠다. 첫눈 맞춤, 첫걸음, 첫 말, 첫 이유식도. 그날도 그랬다.

쭈니가 자전거 페달 위에 자그마한 발을 올렸다. 덩굴손이 작은 나뭇가지를 의지해 해를 향해 나아가듯 아이는 자전거의 손잡이를 감아쥐었다. ‘하나, 둘, 하나, 둘. 엄마, 나 좀 봐’라며 출발을 알렸다. 녀석의 푸른빛 자전거는 점점 빠르게 달렸다. 동네 꼬마들도 앞으로 내달리며 누가 더 빠른가 경주라도 하는듯했다. 5살 또래들은 하나둘씩 보조 바퀴를 거부하며 2개의 바퀴로 자전거를 굴리기 시작했다. 그런 과정에 생긴 무릎의 상처는 성장의 훈장이었다. 끼익 하고 멈춘 자전거를 보조 바퀴가 아닌 자신의 다리로 지지하고 서 있음은 하나의 자랑거리였다.
모든 게 처음인 엄마와 아이는 지레 겁이 났다. 그러나 더 늦출 수만은 없었다. 두 발 자전거를 탄다는 일. 생각처럼 자연스럽게 해낼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쭈니가 손잡이를 꼭 쥐면 우리는 ‘출발’을 외치며 같이 달렸다. 내가 손을 놓으면 자전거는 조금 나가다 이내 넘어지고 말았다. 매미 소리가 한참이었던 계절에 시작하여 그 울음이 잦아들 즈음 아이는 성공의 헹가래를 외쳤다. 그렇게 보름 정도 신나게 자전거를 타 댔다. 머리칼은 성취감에 흠뻑 젖었고 티셔츠는 즐거움의 표식으로 흥건해졌다.
우리가 너무 빨리 샴페인을 터뜨린 걸까? ‘조심해. 익숙지 않아 위험해’라는 내 말을 흘려버린 아이가 크게 다쳤다. 넘어지며 자전거 손잡이가 부러져 윗입술과 귀 언저리를 찢고 지나갔다. 울부짖는 아이를 찾았을 때 얼굴은 피범벅이 되었다. 겁에 파랗게 질린 아이는 바닥에 주저앉아 나를 보며 덜덜 떨고 있었다. 나는 들고 있던 점퍼로 아이의 상처를 누르고  건너 정형외과로 뛰었다.

#2 유니   자전거

처음과  번째는 분명 달랐다. 탯줄을 잡고 세상에 나오는 그 순간부터 유니는 알아서 움직였다. 젖도 스스로 찾아 물고 배가 덜 차면 젖병을 잡아 빨았다. 내가 형의 자전거를 밀어줄 때도 제 숟가락으로 이유식을 먹었다. 아무도 모르게 첫걸음을 걸었다. 처음이 주는 설렘과 두려움 대신 익숙함과 미안함으로 쑥쑥 자랐다. 형과 다르게 녀석은 알아서 했다. 잘하든 못하든 형을 졸졸 따르며 커갔다.

여전히 자전거는 중국의 가장 큰 이동수단이었다. 셀 수 없이 많은 자전거가 온종일 오갔다. 우리가 사는 남경

아파트 단지는 꽤 넓었다. 커다란 호수가 2개, 여기저기 개천을 건너는 무지개들이 놓여 있었다. 버드나무 향을 맡으며 뛰노는 아이들에게 이곳은 천국이었다. 쭈니의 푸른 자전거를 고쳐 보조 바퀴를 다시 달았다. 이미 두 번의 업그레이드를 마친 쭈니의 자전거와 익숙한 유니의 자전거는 세트로 커다란 나무 아래를 지나 지하 아지트 사이를 관통하며 구석구석 탐험을 다녔다. 동네 꼬맹이들의 자전거도 시원한 바람을 타고 속도를 높여갔다.
'엄마 바퀴 떼어주세요.' 어느 날 유니가 두 발 자전거를 타겠노라 선언했다. 나는 덜컥 겁이 났다. 여기서 다치면. 몇 날 몇 밤을 아이를 달래며 미루었다. 형을 쫓아갈 수가 없다며 당장 바퀴를 떼어달라 울먹이는 아이 앞에서 무너졌다. 비상약 통에서 갖가지 종류의 반창고를 한 움큼 가방에 넣고 집을 나섰다.

"조심해야 해. 형이 처음 자전거 바퀴 떼고 엄청나게 크게 다쳤었어. 정말 다행인 게 스치기만 해서 그 정도였지, 눈이나 코를 베었으면... 생각만 해도 무섭다. 조심해. 형을 2주나 따라다녀서 겨우 두발을 탄 건데 그렇게 되었어."

나의 걱정에 잔소리가 끝도 없이 도돌이표처럼 되뇌고 있었다. 아이는 듣는 둥 마는 둥 신났고, 그런 모습에 한숨만 났다. 아파트 가운데 제일 큰 광장으로 갔다. '자, 엄마가 잡아줄게. 걱정하지 말고 천천히 타자. 넘어져도 괜찮아. 엄마가 옆에 있어.' 아이를 안심시키는 것인지, 나 자신을 안심시키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주문 같았다. 그러나 우려는 기우로 끝났다. 유니는 두 바퀴의 자전거를 30여 분 만에 혼자 타기 시작했다. 심지어 그날 형을 따라가며 내게 손을 흔들었다. '엄마 걱정하지 말아요!'라고 외치며.


#3    자전거

5년간의 남경 생활을 정리하고 귀국한 것은 2015년 여름이었다. 상실과 슬픔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우리를 찾아왔다. 한여름 무더위보다 깊숙이 타들어 가는 아픔과 장맛비의 그것보다  음습했던 그해 여름. 새로운 생활에 적응하기도 전에 시아버님이 폐암 말기 선고를 받았다. 허리가 아파 병원을 찾으셨는데 더 손쓸 수가 없다는 의사의 한마디가 전부였다. 그분의 죽음을 준비하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두 달여 만에 우리 곁에서 도망치듯 떠나가셨다.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아버님은 양날의 칼이었다. 아들과 딸, 부인은 그분의 죽음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자신이 꿈과 희망을 품을 때마다 고난과 좌절을 경험케 했던 그분의 죽음에 남편은 더 힘들어했다. 그의 감정은 고스란히 내게 버려지기에 나 또한...
시간이 완벽한 약이 될 수는 없었다. 그래도 상처가 조금씩 흐려가던 이듬해 봄, 나는 자전거를 샀다. 40번째 생일 선물이었다. 결혼 후 나에게 주는 첫 선물. 10대 이후 타보지 않았던 자전거. 바퀴를 구르면 전해오는 묘한 쾌감이 걷기가 주는 것과는 달랐다.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무언가를 찾아가는 것 같았다. 바퀴에는 미노스의 미궁을 빠져나올 명주실이 달려있었다. 자전거 페달을 밟으면 드리웠던 안갯길을 빠져나올 수 있을 것 같은 실오라기를 잡은 느낌이랄까?
삶이라는 길을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아직 낯설고 어리숙하다. 지나온 길 위에는 즐겁고 행복했던 시간과 방황과 좌절이 낳은 고난이 여러 흔적으로 남아있다. 나는 이제 막 번데기를 한쪽 끝을 물어뜯는 애벌레일지 모른다. 곧 젖은 날개를 말리며 하늘로 고개를 향할것이다. 처음 두 발 자전거 바퀴를 굴리던 그때처럼 또다시 넘어지기도 하며 여기저기 상처가 날테지. 팔과 다리가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아 원하던 길에서 벗어날 수도 있다. 그러면 다시 눈물짓고 상처를 보면 한숨만 내쉬겠지? 그럼 또 어떠하리. 아이들이 처음 두 발 자전거를 굴리며 멀어져 가던 모습을 그리며 눈을 감는다. 나에게 '걱정하지 말아요!'  외치며 은빛 바퀴위에  발을 올린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