찍찍 바이 바이~ 음메 이리 오너라~!

2020년을 보내며 한 해를 정리해 보아요. 나만의 10대 뉴스.

by 화몽

2020년이 하루 남았습니다. 제가 지내고 있는 이곳의 시각으로는 2시간 정도 남아있네요. 조용히 마음을 다잡고 폭신한 쿠션에 등을 맡겨봅니다. 44년의 시간 중 가장 숨 가쁘게 훅하고 지나간 올 한 해를 가슴속에서 꺼내보려 해요. 다사다난한 개인사에 코로나까지 더해 눈물 콧물 팡팡 쏟은 한해였어요. 그런데 참 신기한 일이죠. 겨울을 지내면 언 땅을 뚫고 새싹이 얼굴을 내밀듯 제게 감사한 일들도 찾아왔어요. 이 겨울을 지나면 진정 씨앗들이 움트고 따사로운 햇살이 제 두 볼을 다홍빛으로 물들여 주리라 믿어볼래요.


화몽의 2020년 10대 뉴스, 저도 한번 써봅니다. 그래도 될까요?


1. 앞으로 제 취미는 글쓰기라고 말하고 싶어요.

취미가 뭐예요?라고 누군가 제게 물어요. 그런데 바로 떠오르는 것이 없어요. 누군가의 아내로 아이들의 엄마로 살며 무색 무향무취의 사람이 되어버렸어요. 고마운 사람의 추천으로 미술치료를 공부하고 있었지만 취미와는 또 달랐죠. 큰아이 학교 사서 선생님께서 우연히 추천해주신 서평 쓰기 수업에서 칭찬을 받았던 기억을 떠올리며 결심했어요. '글을 써보자. 다른 내가 되어보자. 선생님이 내게 계속 글을 쓰라고 하셨어.' 일단 질러보고 생각하기로. 인터넷을 여기저기 뒤져보니 모 학당의 365일 글쓰기 수업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래 한 줄이라도 괜찮고 좋은 글귀를 옮겨 써도 된다니 못 먹어도 고. 그렇게 2020년 1월 1일 글쓰기를 시작했습니다.

2. 북경으로 이사, 3번째 중국 생활의 시작.

2019년 봄, 남편은 북경의 사무실로 일터를 옮겼습니다. 큰아이의 꿈을 응원하며 저와 아이 둘은 서울에 남기로 했죠. 그런데 현실은 생각과 많이 다르더군요. 결국 작은아이와 저는 북경에 들어가기로 했어요. 그리고 1월 초 OZ***을 타고 새로운 둥지로 날아갑니다. 3번째 작별인사를 나누는 서쪽 해안선은 눈부시게 아름답더군요. 나의 나라, 나의 가족, 소중한 이들이여 당분간 안녕. 곧 만나길 기원합니다.

3. 우한에서 코로나 19 발생

생각보다 이삿짐이 빨리 왔어요. 정리가 끝나니 큰아이 쭈니가 북경에 오기로 한날이 일주일 정도 남았네요. 그런데 이상한 뉴스가 여기저기서 들려와요. 우한에 있는 남편의 지인이 분위기가 이상하다며 위챗을 보내왔데요. 그때만 해도 홀로 비행기를 타고 올 아이 걱정이 컸지요. 코로나라는 핵폭탄이 앞으로 우리에게 줄 어려움은 감히 상상도 못 했어요. 우리의 2020년을 한입에 잡아 삼키는 거대한 파도가 될 줄 진정 몰랐어요.

4. 코로나를 피해 한국행

'회사에서 바로 비행 편을 알아보라는데...'

남편의 한마디에 남아있을 그를 위해 냉동실을 각종 국과 찌개, 밥으로 채웠습니다. 여행가방에 당장 필요한 몇 가지를 던져 넣고 초스피드로 티켓팅을 했어요. 다음날 오전 아이와 전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어요. 혹시 모를 일에 대비해 우리는 바로 집으로 가지 않고 조심스럽게 자진 시설 격리를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2주간 최대한 외출을 자제하고 방에 콕 박혀 지냈습니다. 테이블 위에 읽을 책들과 각종 먹거리들을 쌓아 올리고 시간을 보냈어요. 확진자가 늘어간다는 뉴스에 중국에서 들어온 저희들은 어느새 바이러스가 되어있더군요. 마음이 조금 아팠네요.

5. 브런치 작가가 되었어요.

자진 시설 격리를 하며 우연히 브런치를 알게 되었어요. 검색엔진을 돌려보니 이곳에 글을 쓰려면 테스트를 통과해야 한다네요. 쉽지는 않겠지만 왠지 멋져 보여요. 기대를 접으니 용기가 납니다. 글쓰기를 시작한 초짜이니 한번 보내보자는 맘으로 과제를 썼던 글 하나를 바로 전송합니다. 어라. 그런데 바로 답이 왔어요. 축하한다며 제가 브런치에 글을 써도 된다네요. 어머나! 좋아라!

6. 대학원에 진학했어요.

2년 동안 사이버대학교에서 심리치료, 그중 미술 치료에 대해 공부를 했었어요. 열심히 해서 장학금도 받았고 전체 차석으로 졸업도 했죠. 40이 되어하는 공부 그 맛이 꿀맛였답니다. 아이들에게 너희의 꿈을 찾아보라고만 했던 제게도 하고 싶은 일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북경에 가서도 공부를 이어갈 수 있는 온라인 대학원에 지원을 했어요. 그리고 저의 공부는 즐겁게 진행 중.

7. 어머님이 허리 시술을 하셨습니다.

워낙 허리 협착이 심하신 어머님과 같이 운동을 해왔어요. 북경으로 가게 되면서 가장 큰 걱정의 한 조각이었는데. 3월의 어느 날 걸을 걸이가 어려우시다며 전화가 왔어요. 같이 병원을 찾았어요. 의사는 지금까지 걸으실 수 있던 것도 대단하시다며 바로 시술을 하셔야 한다고. 그러면 나을실거라고... 곧 걸으실 수 있다고. 그렇게 어머님음 150여 일을 병원에서 지내셨어요. 병상에 혼자 계실 수 없어서 거의 매일을 왕복 4시간 가까이 걸려 오고 갔어요. 첩첩산중에서 호랑이를 만난 격, 고비의 너울을 몇 번 넘어 8월이 되어서야 퇴원을 하셨죠. 다행히 제가 알고 있던 온화한 어머님으로 돌아와 주셨어요. 감사합니다!

8. 쭈니의 입시와 결과

어릴 때부터 밤하늘의 별을 홀로 바라보던 아이 쭈니. 그 아이의 꿈은 화성에 가는 거래요. 그래서 혼자 한국에 남았어요. 고등학교 입시를 준비했어요. 와~! 코로나 덕인진 아닌지. 그 어려운 시간을 아이 혼자 겪게 할 뻔했네요. 옆에서 지켜보기가 힘들었는데 아이는 견디어 봅니다. 봄에 한번 가을에 또다시 시험을 봤어요. 제가 두 번째 시험은 같이 해 주지 못했답니다. 결과는 불합격. 그러나 과정이다. 쭈니야 너의 꿈으로 향하는 길. 꿈을 가슴에 계속 품으렴. 엄마랑 손잡고 다시 가자. 너는 놀라운 아이니 하늘의 별을 잡아보자.

9. 4번의 코로나 검사 2주의 지정시설 격리, 드디어 북경 집으로 돌아왔어요.

코로나로 한국에 갈 때도 그러했어요. 삼일 내에 들어가세요. 그런데 이번에도 그러하네요. 다음 주에 비행기 뜹니다. 이번주내로 코로나 검사 결과를 받아오세요. 7달을 공중에 떠서 지냈는데 드디어 하늘로 올라갑니다. 떠나지도 않았는데 벌써 그리워지는 이들이 있습니다. 마스크 꼭꼭 쓰고 북경으로 향해요. 지정된 격리 시설에서 2주를 잘 견디었어요. 사람이 되기 위해 마늘만 먹던 곰의 마음을 알아갑니다. 그리고 드디어 집이다!!! HOME SWEET HOME!!!

10. '공심재'라는 유쾌한 늪에 발을 들였습니다.

2020년 12월 30일 공심재 온라인 송년회가 열렸습니다. 저를 포함한 5분이 '세바시' 시간을 가졌답니다. 2020년은 공심재가 나를 바뀌어준 시간이었습니다. 다가올 2021년은 공심재로 나를 바꾸는 시간으로 만들고 싶어요. 올해 공심재에서 캘리그래피 모임인 '마음을 새기는 시간'과 건강한 다이어트 모임인 '간헐적 단식으로 건강하게 살 빼자' 모임을 꾸려가고 있어요. 2021년 1월 4일에는 그리기 모임 '오손도손 또바기 드로잉'을 함께 하려 해요. 그리고 그림과 예술, 아름다움을 보고 느끼는 '예술탐구 시간'도 가져보려 합니다. 그림을 그리며 나를 직면해 보고 힐링과 치유를 경험하는 '함께하는 미술치료'도 계획 중이에요. 공심재는 온라인으로 소통하면서도 이렇게 따뜻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해 준 곳입니다. 힘겨웠던 2020년 저에게 손수건과 핫팩이 되어준 공심재. 찐! 감사합니다.


'위기가 기회다.' 이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눈물도 말라가는 판에 이를 성장의 발판이라 여기란 말이야? 바깥바람이 무더워지기 시작하던 초여름 전철역 의자에 앉아 오가는 이들을 한참 바라봤어요. 모두들 앞만 보고 발걸음을 재촉하는 모습에 빈틈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제 주변의 시계만 더디게 갈 뿐 그들의 초침은 몇 배로 빠르게 돌아가더군요. 지금 순간을 누구에게나 지나가는 비바람이라 생각하기로 했어요. 감사하게도 세차게 몰아치던 빗방울이 조금씩 잣 아들 어요. 저 멀리의 구름 사이를 비집고 햇살이 번져오네요. 작은 케이크에 초를 올려요. 아이와 조용히 눈을 감아요. 마음으로 바람을 그려보네요. 그리고 서로의 눈에 비친 나를 보며 우리는 행복을 빌어요.

'그래, 지금이 기회야! 우리는 함께하니까. 내일, 새로운 날을 기대해도 좋을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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