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만나는 순간, 오후 4시 5분.

'공심재, 신나는 글쓰기'_08. 독서 일기를 써봐요.

by 화몽
오빠 안에는 두 사람이 있었어요. 길 떠나길 원하는 여행자와 향수병을 앓는 사람.
< 리스본행 야간열차 >


'사람은 영원한 이방인일 수밖에 없다.'는 프라두의 생각처럼 그를 포함한 우리는 내면에서 바라보는 나와 밖에서 들여다보는 자신의 모습 상반된 두 가지 아니 그 이상의 다면체로 살아가고 있는지 모르겠다. 컴퍼스에 달려있는 연필처럼 지구의 축을 따라 째깍거리며 돌다 보면 나의 키는 엄지손톱만큼 작아져 버릴지도 모른다. 닳고 닳아 남은 숨의 횟수를 뺀만큼 종이 위에 원으로 의미를 남겨놓겠지. 하나의 원만을 고집하며 아래로 아래로 지면 저 끝으로 달아나버리는 사유의 결을 따라가기를 바라는가? 옅은 선에 의지해 지그재그로 채워진 넓은 원을 원하는가? 내가 원하는 동그라미는 어떤 모습일지. 창에 드리운 오후의 해만큼 그림자는 길어져간다. 내 안에는 몇 명의 내가 다투며 살아가고 있는지. 분주히 움직이며 시간의 잔해들을 빨아들이는 저 동그란 기계만큼 의미 있는 기록의 낱장들을 주어가는지 의심해본다. 나를 팽팽히 잡아당겨 긴장감의 실 위에 올려놓는 그것의 정체는 무엇일까? 밀크 초콜릿 한 조각이 손바닥 위에서 녹아버리려 한다. 삼킬까? 아니면 바닥으로 내던져낼까? 이도 저도 아니라며 나를 더럽혀가는 달큼함을 무기력하게 바라만 보고 있어야는지. 초콜릿이 내게 끈적하게 스며드는 순간이 내가 아직 살아있다는 증거라며 쓴웃음을 띄우는 모습 또한 나일 테지.


나 역시 나를 떨쳐내려 한다. 내게서 떠나보려고. 그 여정의 끝에 무엇이 있을지 모르지만 행동하지 않으면 지금을 그리워할 미래의 나도 없을 테니까. 향수병에 내 목이 타오르는 갈증을 느낄 때 돌아올 수 있는 그곳. 딱 그정도로 떠나는 오후의 열차에 몸을 던진다. 이것 또한 내 안에서 출발하였으니 다시 돌아올 수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으며. 길어지는 햇살이 내 귀를 간지럽히는 순간마저 유난히 반짝이는 2021년 2월 4일 오후 4시 5분. 제 자리로 돌아가 '충전 중'이라며 내게 메시지를 던지는 기계마저 눈을 감고 쉼을 청하는 지금은 나를 만나야 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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