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의 글쓰기'를 통한 나를 돌아봄
3월 28일, 오늘은 매일 글을 쓰기 시작한 지 88번째 날이다. 필연인가? 우연일까? 뫼비우스의 띠가 오뚝이처럼 똑! 바로 선 8이라는 숫자 둘이 쌍아니 셋이나 겹쳐있다. 글을 쓴다는 것이 대한 물음표가 뫼비우스의 띠처럼 머릿속을 끝없이 가득한 요즘, 쓰기에 대한 강력한 의미 부여가 필요한 게 아닐까?
연필 끝에 맺힌 작은 점 하나가 시작이었다 꾸준함의 루틴을 내 몸에 조금이라도 담고 싶다는 소망의 점. 성실함 그것 하나면 만족함을 느끼지 않을까? 내가 감히 전업작가? 언감생심 그저 내 마음을 글이라는 채에 걸려 유연하게 써진다면 그것으로 OK. 홍해처럼 쩍 갈라지긴 어려워도 솔바람 솔솔 오가는 오솔길 정도는 찾을 수 있겠지라는 희망을 품고 시작했다.
그러나 쓰고 싶은 대로 자연스레 쓴다는 것이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날이 갈수록 쉬이 여겼던 나 자신의 가벼움을 탓할 뿐. 나뭇잎들이 상쾌한 바람과 엉키어 불어오는 오솔길은커녕 종이 위는 어려움이 물처럼 쏟고 연필을 어디로 굴려야 할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글쓰기 책들도 뒤적거리고, 유명 작가들의 강좌도 읽어보며 글 쓰는 방법에 대해 스스로 길을 찾아보려고 했다. '독야청청' 홀로 한다는 것이 이리 어려운 일이구나. 글의 여기저기가 가렵고 울긋불긋 해져 누군가의 처방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간절해졌다. 썩은 동아줄이라도 움켜쥐고 싶은 맘이 굴뚝같았다.
'간절하면 이루어진다.' 길을 찾는 내게 한 줄기 빛이 보였다. 얼마 전 내 ‘브런치’로 ‘공심재의 사유하는 글쓰기’라는 수업이 시작된다는 소개 글이 배달되었다. 8명의 인원이 주어진 커리큘럼에 따라 매주 글을 쓰고 서로의 글에 대한 합평이 수업의 줄기이다. 쓰기의 등 긁기가 필요한 내게 딱 안성맞춤! ‘공심재' 운영자의 1:1 코칭이 1+1로 옵션 추가까지 가능했다. 그의 글이 가진 매력을 충분히 알기에 고민 없이 배움의 길로 직진하기로 했다.
첫 소개팅 자리처럼 설레며 그 시간을 기다렸다. 어제저녁 그리스 로마 신화가 던져주는 도전하는 삶의 태도에 대한 주제로 쓴 6개의 글을 합평하였다. 당근과 채찍을 양손에 들고 읽고 느껴지는 바를 메모했다. 3시간 가까이 이야기들이 이어졌다. 충격적인 경험이었다. 그들의 한마디 한마디에 애정과 정성이 가득했다. 내 글을 향한 다양한 시선에서 나오는 조언과 칭찬들에 얼굴이 달아오르고 심장의 콩딱거림은 멈추지 않았다. 쓰고 지우 고를 반복한 문장을 알아봐 줌이 신기했고, 어색한 글을 다정한 숨결로 쓰다듬어주는 이들이 마음 깊숙이 감사한 시간이었다. 그 마음만큼 내 글이 자라날 수 있게 더욱더 열렬히 글을 써야겠다는 마음의 씨앗을 품었다.
꾸미려 하지 말고 솔직 담백한 글이 읽는 이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
내 글에는 다이어트가 필요하다.
@ 글쓰기 씨앗에 단물을 준 글 친구들에게 진심 감사하며
지난 시간 큰 선물을 받아서인지 기대감이 뭉게구름처럼 부풀어 올라 하늘 위로 두둥실. 운동을 마치고 노트북 앞에 재빨리 앉았다. ZOOM 주소가 쳇창에 뜨고 늦지 않게 접속하려 빠르게 클릭했다. '안녕하세요, 일주일 동안 어떻게 지내셨나요? 서로 인사를 나누고 한 주간 근황 토크 시간을 가졌다. 두 편의 글을 읽고 나니 모랄까 글의 주인과 조금 가까워진 느낌이라 헤드셋 너머로 나누는 이야기들이 친근하기만 했다.
차분히 서로의 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역시... 각자의 느낀 바를 전하는 과정이 더욱 따뜻하게 느껴졌다. 그러면서도 따뜻한 온도의 조언들이 어찌나 날카로운지 이들이 비전문가라니 믿기 어려웠다. 배려와 애정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과정이라 감사한 마음이 절로 생겼다.
오늘 내가 느낀 가장 큰 부분은 나를 비롯해 모든 사람들은 아는 만큼만 보고 경험한 만큼 느끼며 애정 하는 만큼 이해한다는 점이다. 하나 더, 쓰는 이의 진솔함 딱 그만큼만 읽는 이의 마음속에 담길 수 있다는 것이다. 아픔도 내가 아픈 만큼 기쁨도 내가 기쁜 만큼 진심을 담아 그려내야 한다. 아무리 현란한 표현으로 감정과 감성을 증폭시켜도 객관적 시각을 지닌 타인은 무섭게 알아챈다. 독자가 된 나도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느꼈다. 나는 꽤 넓은 시각으로 세상을 본다고 착각하고 있었나 보다. 나 역시 욕심, 편견, 고집, 차별, 거짓, 위선, 오해를 일삼는 보통의 사람임을 잊고 있었다.
여전히 화려하고 커다란 포장박스에 레이스가 주렁주렁 달린 형형색색의 리본을 옹 묶고 있었다. '마음을 비우고 있는 중'이라 말하나... 실은 주워 담느라 정신없는 내가 보였다. 융이 말하는 개인화의 길, 진정한 나를 찾아 끌어안을 수 있는 그 길의 맥을 잡을 수 있을까? 발 밑의 그림자를 돌아봐야 밝음이 더 빛날 텐데. 내 영혼의 발걸음은 어디로 가야 하는지?
글을 쓰는 것은 쓰기 그 자체로 마침표를 찍는 일이 아님을 깊게 새긴 시간이었다. 나를 돌아보는 시간, 나를 사유하는 시간 그리하여 나를 깨워내는 시간이다.
@ 소중한 시간 진솔한 생각을 나누어준 합평 멤버들에게 무한 감사하며
다른 이의 합평을 듣는 순간 나에게 건넨 혼잣말이었다. 사각의 틀에서 나와 걷자는 내용의 글을 썼지만 나는 아직도 단단한 틀 안에 있는 내 모습을 들킨 순간이었다. 나는 어떠한 입장에서 글을 읽은 것일까? 글쓴이의 의도나 생각을 따라가며 읽었는가? 내가 가진 생각의 각에 맞춰서 읽고 내 마음에 들게 손보려는 것은 아니었나? 시간이 끝나고 다른 분들의 글을 보고 정리해봤던 메모들이 천천히 다시 보았다.
나에게 은근한 고집이 있다. 새로움을 입으려면 억지를 내려놓아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참 어렵다. 글쓰기도 그러하지 않을까? 나의 문제점에 접어놓은 채 합평 친구들의 글을 논할 순 없다. 먼저 내 글을 타인의 눈, 독자가 되어 먼저 읽어보니, 나는 합평 친구들의 글을 누구의 모습으로 읽었을까 하는 물음표가 떠올랐다.
나를 훌륭하게 표현한 글 중요하다. 문맥의 흐름이 좋아 줄줄 읽히는 글을 좋은 글이라 한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중요한 쓰기의 중요함. ‘왜 읽지?’ 읽히기 전의 과정도 글쓰기의 일부임을 간과하고 있었다.
설명문, 소설, 에세이, 주장의 글, 글의 색을 정확히 모르겠다고 말한다. 그냥 내 이야기를 진솔하게 쓰려는데 형식이 뭐이가 중요해?
‘어떤 목적을 가진 글이냐에 따라 작가가 200% 이상 드러나야 하기도 하고, 작가고 완전히 지워져야 하기도 하다.’라는 진행자의 이야기를 듣는 순간, ‘와 이분 또 내 뼈를 때리시네’ 헤드셋 밑까지 얼굴이 달아올랐다. 대체 너 왜 글을 쓰니? 사유하는 글쓰기? 힐링하는 글쓰기? 일기를 쓰니? 그렇담 굳이 합평하고 매일 쓰고 더 나아지려는 이유가 뭐야?
글쓰기의 목적이라니, 이건 또 뭐지?
‘너는 왜 쓰니? 누가 읽기를 바라니? 해시태그를 넣는 순간 네가 원하는 독자가 있잖아? 네 글의 방향키를 설정해야지!’ 나는 지금 온라인에 글을 쓴다. 내 글을 클릭해본 사람은 과연 글을 끝까지 읽어주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해 글을 쓰는 건 아니라지만, 어떤 물길을 따라 들어왔을지 모를 사이버 독자가 바로 떠나지 않을 그런 글을 쓰고 싶다. 무작정 써 내려가기보다 심호흡 한번 하고 내 길의 목적지를 슬슬 떠올릴 때다.
벌써 3주 동안 주어진 주제로 글을 쓰고 나눔의 시간을 가졌다. 누군가의 말대로 첫날의 열정이 조금은 사그라들었을지도 모른다. 나의 열정과 초심은 어떠한가? 변화나 나아져 가는 부분이 있을까? 사유와 고민도 자라고 있는가?
‘나라면’이라는 생각을 내려놓으면 '나와 다른 우리'가 보일지도 모른다. 스스로에 관한 질문들이 우수수 떨어진 합평 시간이었다. 이렇게 서로 질문하고 답하며 잘못된 방향으로 갔다면 돌아오면 된다. 그러나 너무 멀리 돌아가지 않도록 나침반을 준비해보자.
@ 나는 아직도 모른다. 내 글쓰기가 마침표로 끝날지, 물음표, 느낌표를 던질지. 말줄임표가 마지막일지...
'뜨거운 불길'이라고 쓰지 마시고 '오월 작약 불길'이라고 써 보세요. 시는 생각으로 쓰는 게 아니라 상상으로 씁니다. 생각으로 쓰는 언어가 머리를 통해서 오는 언어라면 상상으로 쓰는 언어는 피부로 바로 닿는 언어입니다.
By 박진성
생살의 언어. 시는 삶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나 보다. 머리가 아니고 피부로 사랑하는 가장 원초적인 감각, 촉감. 피부로 사랑하는 것이 시라고 하는 시인의 말. 내가 쓰고 싶어 하는, 아니 옮기려고 하는 것에 무엇인가에 대해 다시 한번 곱씹어 본다.
씀을 행할 때마다 고민한다. 글의 방향이 오롯이 밖으로 향해 있다면 머리로 써 내려가야 하는 게 옳다. 그렇다면 나는? 밖을 향할지 안으로 향할지... 나침반을 들고 방향을 찾으려 해도 여전히 바늘은 빙글빙글 돈다. 도움이 필요할 때다.
4번째 합평 시간이 가졌다. 여전히 뭉클함이 한가득이다. 2시간이 훌쩍 넘는 시간 동안 서로를 읽어내고 이해하는 시간. 횟수가 거듭날수록 글들은 한 여름 소낙비 내린 뒤 나무처럼 쑥쑥 푸르름을 흩날리며 자람이 느껴졌다.
솔직 담백한 열정과 애정이 헤드셋의 줄을 타고 넘어와 마음을 울린다. 그들이 쓴 글도 서로를 읽어내는 시간까지 일분일초, 모든 것이 감동 그 자체였다. 더불어 내 글 씀과 자신에 대한 생각도 한 뼘쯤 자라난 기분이다. 합평 속에서 나침반의 흔들림이 줄어들고 있음을 느꼈다.
머릿속 이성을 덜어내자. 오감을 열어 감성이 느껴질 글을 그려보자.
글도 그렇다. 딱 그렇게 사람답게 나 답게 써나가는 게 어떨까? 포장은 이제 그만. 그냥 집에 돌아오는 길 눈 앞에 그렇게 어둑해지던 하늘처럼 자연스럽게 쓰자. 나는 머리보다 감정이 먼저 손을 내민다. 이해를 하기보다는 보이는 그대로를 머릿속에 그려 나 다운 글이 내 글이 아닐까?
그렇게 쓰고 싶다. 오월 작약 불꽃처럼 손끝의 감각으로 터질 듯 붉음을 펜 끝에 적혀 글을 그려내고 싶다.
@ 스프링처럼 흔들리는 나침반 바늘에 끌림의 자석을 던져준 합평 친구들에게 역시 감사함을 전하며
집으로 가는 전철이 오늘따라 더욱 덜컹거린다. 폭풍우 속 쪽배의 닻을 겨우 부여잡고 있는 내 마음 때문에 더욱 요동친다. 폴더 속에 고이고이 넣어온 프린터해온 문우들의 글을 꺼냈다. 글을 펼치니 폭풍우가 잦아들고 주변이 고요해진다.
‘오늘 대체 무엇했길래... 이제 시간이... 내 시간이.. 이제야 나네, 서둘러 읽어보자...’
펜을 들고 그들의 글을 읽으며 피식 웃는 내 모습이 즐거웠다. 합평 친구들은 이런 내 모습을 상상도 못 하겠지? 글을 읽으며 글을 쓰는 합평 친구들의 모습을 그려보는 게 정녕 재미있다. 조금 미안하지만 홀로 별의별 상상의 나래를 활짝! 무언가 쫓기듯 컵라면을 후루륵 마시며 거리며 키보드를 우당탕탕 두드리고 있을 화면과 씨름을 하고, 오후 4시 길어진 해의 자락 끝에서 커피 향 속에서 도톰한 오렌지빛 쿠션에 몸을 비비며 손깍지를 괴었다 풀었다, 과장 봉지를 우두득 입으로 뜯으며 이리저리 집어 먹으며 여기저기 그 가루를 묻히고 신나게 글을 쓰고 있는 모습, 한 줄 한 줄 소리 내어 읽으며 흘러내리는 안경을 잡아채 머리 위에 올리고 퇴고에 집중하고 있을 목소리까지... 지금이 감사하고 행복하다. 행복 그거 뭐 별건가? 초콜릿 두어 개 코끝으로 킁킁거리며 동그랗게 말아 올린 혀끝으로 사르르 녹여먹으면 그게 바로 행복이지. 이렇듯 내 글과 감정을 나눌 수 있는 시간이 있음이 즐거움이지.
전철을 갈아타며 잠시 플랫폼 벤치에 앉았다. 몇 량의 지하철을 그냥 보내며 합평 친구들의 글을 읽으며 메모를 남긴다. 부치지 못할 편지를 쓴다. 미소가 입 끝에 걸린 채 그들의 글을 마주하고 대화를 나눈다.
잠시 후에 만날 소중한 이들을 떠올리며 서둘러 집을 향해 발길을 옮긴다.
종이가 아닌 그들의 목소리와 대화하고 심장의 열기를 나누기 위해.
@ 나의 불꽃을 알아보는 이가 있음에 감사하며.
합평이라는 불망이 꺼져가는 불씨 위 재만 밤바람에 숨을 쉴 때쯤 나에 대한 사유도 늦어진 밤만큼 깊어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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