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둘 수 없는, 너에게로 돌아가는 길.

< 푸른 밤 > _ 나희덕

by 화몽
푸른 밤 _ 나희덕

너에게로 가지 않으려고 미친 듯 걸었던
그 무수한 길도
실은 네게로 향한 것이었다.

까마득한 밤길을 혼자 걸어갈 때에도
내 응시에 날아간 별은
네 머리 위에서 반짝였을 것이고
내 한숨과 입김에 꽃들은
네게로 몸을 기울여 흔들렸을 것이다

사랑에서 치욕으로,
다시 치욕에서 사랑으로,
하루에도 몇 번씩 네게로 드리웠던 두레박

그러나 매양 퍼올린 것은
수만 갈래의 길이었을 따름이다
은하수의 한 별이 또 하나의 별을 찾아가는
그 수만의 길을 나는 걷고 있는 것이다.

나의 생애는
모든 지름길을 돌아서
네게로 난 단 하나의 에움길이었다.


거두고 또 거둬들이려 해도 이미 내어지고 있는 마음.

세상에 감출 수 없는 두 가지가 기침과 사랑이라고 했던가? 머리로 부정하고 지워내려 해도 마음과 몸은 이미 습관처럼 움직여지고 있는 것. 불특정 일인이 사무치게 보고프고 뼈 시리게 그리운 마음이 너에게만 향하는 단 하나의 길이다. 1월 유리창에 그려진 성에 자국처럼 시리게 아픈 냉가슴 앓이에 눈물이 어린다. 셀 수 없는 그 많은 이 하나를 향해 있다니, 어쩌면 이런 사랑을 만난 이는 정녕 행복한 사람일지도 모른다. 돌고 돌아도 이 굳건한 사랑만 바라보게 되는 사람. 변함없는 마음, 애절한 구애도 너뿐이라 아우성치며 홀로 생떼 부르는 것도 아니다. 어리숙하나 유치하지 아니한 그 마음의 깊이를 감히 가늠해 본다. 소유도 외침도 아닌... 돌고 도는 길.
오늘의 은 우리에게 어떤 일까? 세상 시끄러운 이야기에 잠시 눈과 귀를 닫고 시를 읽노라니 내 속내가 그 에움길 저편에서 눈시울을 붉히며 걸어오는 듯하다. 아픔이 가득한 겨울 끝에 비의 잔향이 감아 돈다. 지난 계절은 맘속의 응어리로 우심실의 한구석에 엉켜있지만, 푸르른 밤 너머로 붉은 여명이 밝아 올라 희망의 빛이 눅진 흙길 위에 뿌려질 것이다. 은하수의 별처럼 수많은 길을 걷고 또 걸게 될 힘겨운 발등 위로 사랑의 날갯짓이 날아들 계절이 오게 되리라. 치욕마저 이겨낸 그를 향해 마음이 일편단심으로 향하니 사랑이 이뤄지리라. 에게도, 에게도 푸른 밤의 끝자락에는 새벽의 빛이 닿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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