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비어 내기'의 열풍은 무섭울만큼 뜨겁다. 생각, 마음, 물건, 관계 등에서 내게 불필요한 것들을 끊어내거나 버리고 멀리한다는 것이다. 다이어트, 미니멀리즘도 일종의 비어 내기인 셈이다. 나 또한 이 기류에 발을 담가보려 하지만 쉽지 않다. 이런 것들이 내게 그득 차있음은 우리 집 냉장고만 열어봐도 알 수 있다. 다음 달 초에 이삿날이 잡혀있다. 그래서 나는 의식적으로 냉장고를 털고 있다. 그러면 뭐하리? 오전 내내 정리하고 비워낸 자리는 오후 클릭 한 번으로 반나절만에 원상 복귀하고 만다. 결혼 전에 입던 백화점표 옷, 수년 동안 상자도 열어보지 않는 아이들 장난감, 블루투스 시대에 영 쓸모없는 각종 캐이블 등등... 소매 걷고 정리를 해도 나오는 건 2리터짜리 비닐봉지 하나를 못 채운다. 이마저도 현관문 열고 나다가 다시 꺼내놓기를 무한반복 중이다. 두 눈 딱 감고 버려야 하는데 말이다.
'비워내자. 내려놓자. 욕심과 욕망은 조절하고 절제하며 오늘 여기에 집중하자.'
스스로 궁둥이 팡팡하며 내게서 털어낼 것들을 찾아본다. 헐렁해진 마음의 냄새를 맡고 온갖 잡념들이 내게 달려든다. 헛된 생각들이 빈 공간에 자리잡기 전에 나를 잘 다독여야만 한다. 나는 감각 지향적 인간이다. 즉 오감을 충분히 충족치 못하면 어딘가 간질간질해 참을 수가 없다. 그렇다고 자극에 촉수를 세운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자극은 일종의 통증이라 불편감마저 들게 한다. 이렇듯 여러 감정이 뒤엉킬 때 안성맞춤인 것이 소리다. 지금 여기 집중하지 않으면 일순 놓쳐버리기 딱 좋은 것 중 하나가 바로 소리. 소리 없는 세상을 상상할 수 있나? 요즘 온갖 고민과 걱정에 사로잡혀 있는 내가 가장 많이 듣고 있는 소리는 다름 아닌 목탁이나 싱잉 볼이 어우러진 자연의 소리다. 나를 긁어내지 않고 자연스럽게 흘러들어오는 한 꼭지를 찾아 내게 밀어 넣는다. 이마저 컴퓨터나 핸드폰을 사용해야 한다는 것에 맘 한편이 불편하지만... 완벽함은 내 친구가 아니니까. 일단은 클릭.
오늘은 좀 특별하게 소리와 함께 하는 시간을 내게 주었다. 100번의 호읍에 집중하는 시간. 자연의 소리와 이 순간을 함께했다. 가부자를 틀고 두 손의 엄지와 검지를 가볍게 붙이고 무릎 위에 올렸다. 눈을 감고 들숨과 날숨의 합을 100회에 맞췄다. 최대한 숨에만 집중하면서 떠오르는 잡념들은 그대로 그곳에 두었다. 생각보다 숨에만 집중하는 내 모습에 조금 놀랍기도 했다. 시작 전에 켜놓은 스톱워치를 보니 12분이 조금 넘게 걸렸다. 한 번의 숨이라도 깊게 가져가 보려고 노력했다. 기억하는 것에 취약한 나는 혹 숫자를 까먹게 될까 불안한 마음이 초반에 스멀스멀 기어올라왔다. 하지만 숫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나의 호흡 자체에 집중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에 그냥 쭉 이어갔다. 잊히면 그대로 흘려보내는 것이 지금을 소중히 생각하는 것인지 모른다.
'하나, 둘, 셋.... 마흔아홉, 쉰, 쉰 하나...'
50번 정도 호흡을 이어갈 때 첫 고비가 찾아왔다. 어쩌면 내 몸이 내게 보내는 메시지 일지도 모른다. 느껴지는 가벼운 통증을 따라가 본다. 몸을 더 곧게 피고 코끝과 명치 배와 가슴속을 스치고 지나가는 공기와 함께한다. 100회를 마치고 두 손을 가볍게 비벼 모아진 기운으로 얼굴을 쓰다듬었다. 칭찬으로 내게 인사를 건넨다. 평소 매일 하는 일중 하나인데 오늘 두 손에 모아진 온기가 제법 뜨겁다. 나를 잘 살펴본 결과가 아닐까? 눈을 뜨고 귀를 열고 크게 숨을 마시고 내쉰다. 시작 전에 켜놓은 스톱워치를 보니 12분이 조금 넘게 걸렸다. 어느 순간 저만치 멀어졌던 풍경의 소리가 다시 들려온다. 나를 찾는 소리를 다시 담아낼 순간이다. 귀를 쫑긋 세우고 내 것이 이곳에 감사해야지. 눈으로 담고 손끝으로 나누고 호흡과 함께 느끼고 내 자리에서 잘 살아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