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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몽 Jun 19. 2021

'간단'한 단식 & 운동 일기 RESET.

<신글 4th_Day4>  나에게 딱 맞는 집


요즘은 많이 줄었지만 한때는 티브이만 켜면 나오던 광고의 일 순위가 바로 아파트 광고였다. 그만큼 집이 가지고 있는 의미가 수직 상승하였다. 생존을 위해 꼭 필요한 것이 의식주라는데 옷과 먹을 것 다음인 것만 보아도 일단 조금 천천히 생각해도 되는 것이 집이었을지 모른다. 국민학교(내가 학교를 다니던 시절에는 이렇게 불렀다.)를 2학년 때 아파트들이 우후죽순 들어서던 강남의 끝자락으로 이사를 갔다. 아빠의 직군에서 공동아파트를 분양받으셨는데 그곳에서 자라며 적응이 안 되는 질문이 있었다. '너 어느 아파트에 사니?' 좀 더 자라며 알았지만 이 질문은 여러 의미를 지닌 질문이다. 우리 집에 찾아와 나와 놀기 위해 묻는다기 보단 나를 위아래로 스캔하기에 가장 간단한 방법임을 알게 되었다. 그렇듯 아파트 광고들은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의 가치를 대변해준다는 약간 빈정 상하는 뉘앙스의 문구들이 대부분이었다. 아파트에 안 살면 어때? 친구 집의 담을 타 넘으며 '**야 놀자'를 외치던 그때가 행복했는데 말이다. 왜! 자신 있게 말 못 해? 유명 브랜드의 아파트에 살지 않아도 내 집에 비취던 따스한 햇살에 방긋 웃곤 했는데. 그때의 집들이 가진 의미가 그리워지는 순간이다. 내가 집에 살고 있는 것인지 집 덕에 내가 살고 있는 것인지 애매해진다. 집의 정의처럼 두 다리 가지런히 피고 누울 수 있다면 그만 아닌가.


집이란 누구에게나 쉼의 순간을 준다. 세상 화려하고 좋은 호텔 여행지를 다녀본다 한들 내 집 만한 곳이 있으랴. 결혼을 하고 14번이나 이사를 다녔지만 여전히 지금 이 글을 쓰는 책상이 놓여있는 공간이 좋다. 내 몸 한편을 조용히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곳이 최고다. 나를 온전히 뉘 울 수 있는 곳이 집이라는 건물이라면 내 삶을 안고 보호해주며 쉬게 해 줄 수 있는 곳은? 내 몸이다. 나는 내 몸을 내 정신과 마음, 생명을 담고 있는 가장 중요한 집이라고 생각한다. 글의 주제에서 한창 벗어나고 있지만 생각이 가는 대로 손이 따르며 쓰는 글이니까.


지난 주말 나는 대청소를 했다. 바로 나 자신이 살고 있는 가장 중요한 일인용 집을 싹 비워냈다. 좋다. 아니다. 의견들은 분분하지만 나의 생활에는 '간헐적 단식'이 안성맞춤이다. 건강한 삶에 대한 나의 의지는 꽤 강한 편이다. 전문적 지식들은 비교해가며 내가 지킬 수 있는 것들은 꼭 챙기고 있다. 그중 첫 번째가 바로 '간헐적 단식'이다. 감정이 이성을 지배하는 편이라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 그래서 선택했고 나는 5년째 이러한 식습관을 유지하고 있다. 물론 처음부터 칼같이 지켜낸 것은 아니다. 습관으로 만들어 가는 시간들까지 포함하면 그렇다. 꽤 긴 시간 동안 여러 고비들이 있었지만 올봄을 지내며 나의 간단한 생활에 빨간불이 들어왔다. 감정의 너울이 나를 삼켜버린 것이다. 내 생명을 지켜내고 있던 집이 엉망이 되어버렸다. 태풍의 비바람에 의식주가 통째로 흔들거리다 못해 집의 기둥이 흔들거리고 있었다. 건강을 잃어간다면 수십억짜리 집에서 온갖 좋은 음식을 먹으며 아름다운 옷들을 입고 산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지금 사용 중인 노트북도 사용한 지 오래되었다. 이런저런 응용프로그램들을 동시에 사용하고 있다 보면 과부하가 온다. 프로그램들이 말을 듣지 않을 때 나는 간단하게 이러한 문제점들을 바로 잡는다. 재부팅을 하면 된다. 그러나 심각한 문제가 생긴다면? 재부팅을 해도 말을 듣지 않는다면 고민할 필요도 없다. 리셋, 즉 싹 비우고 다시 시작하면 된다. 간헐적 단식으로 매일 재부팅을 해도 영 시원찮아 간단히 시 드라이브만 리셋을 했다. 48시간 단식으로 몸안의 구석구석 대청소를 감행했다. 24시간 정도야 그다지 어렵지 않았지만 40시간을 넘어가기 시작하니 여기저기서 아우성이다.


'워~워~워. 기다려. 아직 아니야. 조금만 더 비워내자고.'


따뜻한 물로 에너지를 달라 외치는 몸을 달래 보았다. 현대인이 하루 이틀 굶는다고 큰일 나지는 않는다. 물론 건강한 사람이라는 가정하에 말이다. 배고픔보다는 먹고 싶다는 생각에 자꾸 애꿎은 시계만 요리조리 째려보았다. 다른 곳에 신경을 써야겠다며 책 한 권을 펼쳤지만 글자가 눈에 잘 안 들어온다. 나라는 존재를 보듬어 주는 166cm의 집이 흔들거린다. 먹을걸 내놓으라고. 조금만 더 견디어 보자. 마지막 고비를 조금 넘기니 배고프다는 기분 자체는 오히려 상쾌한 기분이 들게 했다. 공복이 주는 가벼움이 즐거움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슬슬 첫 식사를 준비해야 할 시간이 다가왔다. 잘 버틴 내게 좋은 음식을 줄 시간이다. 그리고 다시 시작할 때이다. 나를 지켜줄 건강한 내 몸. 숨을 담아낼 그 집의 대청소를 마치고 창문과 대문을 활짝 열어 좋은 친구들을 초대할 순간이다.


브런치에 정리를 해오던 '간단'한 단식 & 운동 일기의 13주까지 기록을 남기고 이어가지 못했다. 인스타에 매일 기록을 남기기는 했지만 심신이 너무 시달리고 있던 터라. 48시간 단식을 하면 몸속의 세포는 전혀 다르게 재생을 시작한다. 체지방을 소비하는 키톤 상태가 되며 비워낸 몸은 새로운 에너지를 스스로 만들어간다. 리셋(Reset)하게 되는 것이다. 몸과 마음, 그간의 기록을 정리하며 파워 버튼을 꾹 눌렀다 다시 켜본다. 빨간불이 파란 불빛을 내기 시작하며 모든 것을 원점으로 돌린다. 어제까지는 잊고 새로 시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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