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심재 신글 DAY02_글을 써서 최종적으로 내가 가고 싶은 곳>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보세요.
당신을 가장 잘 아는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당신.
당신 자신입니다.
당신의 숨소리를 들어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숨을 쉰다는 것은 살아있음의 증명입니다. 바로 지금 당신의 손끝을 코 아래로 가져가 보세요. 하나, 둘, 셋.... 조용히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어봅니다. 이번에는 조금 큰소리를 만들어 보며 온몸을 부풀린 비둘기의 모습을 닮아보아요. 숨의 길이와 크기를 미세하게 조절해볼까요. 이런 움직임의 의미를 생각지는 마세요. 그냥 들숨과 날숨 자체에 모든 것을 집중해봐요.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설거지를 해야 하는데. 아이들은 숙제를 마쳤나? 내일 날씨는 오늘처럼 좋겠지. 등등의 생각들이 나의 호흡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어요. 점점 가까이 오네요. 일분, 한 시간, 내일 또는 어제 지난주의 사소하거나 당장 벌떡 일어나 다른 일을 하게 할 만큼 중요한 일들이 솜사탕처럼 커져갑니다.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고 나의 생명을 증명할 숨쉬기를 향한 몰입을 방해합니다. 그렇다면 이제 두 눈울 감고 두 손을 무릎 위에 올려보아요. 이도 불편하다면 어깨를 바닥에 대고 누워 손바닥을 원하는 곳에 두고 하늘로 향하게 둡니다. 다시 하나, 둘, 셋... 이렇게 또는 저렇게 들어마시고 내어놓아요. 단 한 번의 숨이라도 내 것이라 여기고 받아들인다면 전혀 다른 무언가가 될지도 모릅니다. 자연으로 돌려줄지언정 잠시라도 함께 공유하고 나눔에 감사한다면 이 한 번의 호흡은 그 무엇보다도 값지고 맛난 것으로 변신할지 모릅니다.
내 곁에 존재하는 것 중 당연한 것이기에 가벼이 여기고 있는 것들이 생각해보면 참 많아요. 공기와 이를 취하고 보내는 호흡도 그러하고, 지금 제가 쓰고 있는 문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한글은 참 쉽고 과학적인 문자입니다. 세종대왕이 창제할 실 때 말씀하셨듯이 널리 백성을 이롭게 하기 위해 만드셨으니. 타국에서 오래 살다 보니 글을 쓸 수 있는 문자가 있고 이를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의 감사함을 느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랍니다. 내 생각을 말로 전하면 숨처럼 공기 중에서 부서져버리고 말아요. 이를 남기고 전할 수 있다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가졌는지 생각해보셨나요? 반대로 다른 이의 머리와 마음속을 열어보지 않아도 그의 글을 읽어본다면 어느 정도 짐작해볼 수 있죠. 우리가 흔적을 남기고 이를 누군가와 나눌 수 있다는 문자와 그것으로 쓰여진 글이 가진 감사함이죠. 이러한 것들이 글이 되고 제가 지금도 쓰고 남기는 의미의 시발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글쓰기 모임을 찾은 이유라고나 할까요? 저의 출발점은 그랬습니다. 제 마음과 생각을 문자로 정리해보고 싶었습니다. 나라는 사람이 궁금했어요. 40여 년을 넘게 살았지만 내가 누군지 어떤 생각을 하며 무엇을 좋아하고 멀리하고 싶은 것들을 도통 알 수가 없었거든요. 음성으로 전해지는 나는 물거품처럼 사라져 버리기 때문에 글로 남기고 싶기도했어요. 이웃나라 왕자에게 내 마음도 전하지 못하는 인어공주가 되어버리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거... 생각보다 실행으로 옮기기가 진정 어려웠습니다.
글쓰기 경험이 전무한 제가 선택한 당근과 채찍은 글쓰기 모임에 참여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저를 문우라는 낯선 대명사로 불러주었어요. 곧 '화몽'이라는 또 다른 이름이 생겼습니다. 물론 이전부터 쓰고 있던 별칭이었지만 지금처럼 많은 이들이 부르는 호칭은 아니었지요. 목적지는커녕 이정표조차 찾아보기 어려운 글쓰기의 긴 여정에 문우들은 앞서니 뒤서니 하며 힘이 되어주시네요. 그들이 없었다면 지난 어느 날에 이 길은 내 길이 아닌가 보다 하며 다른 길을 찾아 떠나지 않았을까요?
아! 목적지요. 오늘 글감이 내 글의 종착지를 그려보는 거였네요. 그 목적지를 생각해보려 하는데 왜 숨쉬기부터 시작을 했냐고요? 네. 그래야 제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으니까요. 글을 쓰는 이유가 나를 바로 알고 느끼며 본래의 모습을 찾아가고 싶었기 때문이었어요. 그래서 글쓰기 속에 숨어있는 나만의 숨소리를 읽고 끌어내는 게 지금 제가 그려보고 있는 최종 종착지입니다. 저는 글린이에요. 봄이 찾아오려는 흙속에서 꼼지락거리며 머리를 하늘로 들이밀고 있죠. 여기저기 고칠 곳 투성이에 앞뒤가 안 맞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의 글이지만 이 시간만은 온전히 나를 들여다볼 수 있어요. 이렇게 조금씩 써 나가다 보면 언젠가는 가까이 다가설 수 있겠죠? 글린이의 여정중 여러 샛길들이 생기고 종착지가 바뀔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그 끝에는 나, 화몽이 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