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108

같은 6월, 그러나 극명하게 다른 6월

<코로나 19, 어머님 입원, 아이 입시> 3 苦(고)로 맞는 초여름

by 화몽

#1. 20200601 AM09:53_감정의 온도 0℃


'어라? 핸드폰이 이상하네? 알람이 왜 계속 울리지? 8분이 지나야 다시 울리는데...' 아차, 순간 큰아이의 등교 알람이 추가되었음이 떠오른다. 눈이 번쩍 떠지고 곧장 일어나 피노키오처럼 일상의 흐름을 따라 움직인다. 커피 포트 버튼을 누른다. 화장실을 다녀오며 체중계를 꺼내 올라선다. ‘찰칵’ 공복 몸무게를 찍어 저장 후 아침 준비를 위해 냉장고의 문을 연다. 끓어오른 물에 찬물을 섞어 한 모금씩 씹어 마시며 준비된 야채를 들여다본다. 접시를 꺼내 올려놓고 엄마와 이것저것 다른 식사 거리를 나눈다. '찰칵' 접시 위 준비된 아침을 찍으면 엄마, 아빠 나 이렇게 우리는 얼굴을 맞대고 앉아 아침을 나눈다. 그리고 시간과 마음을 엮고 지난 시간을 풀어낸다.

아빠에게 9시 50분까지 내려가겠다고 했는데... 3분여 흐르고, 지난 주말 새로 산 샌들에 발을 맞춰 빠르게 뛰어 내려간다. 차고 문을 닫고 아빠의 차에 올라타 벨트를 잡아끌기도 전에 '따르릉' 전화벨이 울린다. 언니에게 온 전화로 주말 동안 어머님께 있었던 일들을 주고받으며 내가 오늘 해야 할 일을 머릿속에 적어놓는다. 어김없이 마스크를 쓰고 전철에 오른다. 표정을 알 수 없어 편리하면서 안타깝다. 대부분의 사람을 미남, 미녀로 변신시켜 준다는 마스크의 긍정적 효과를 떠올리며 이 또한 적응해 나가야지 여기는 수밖에. 오늘 최고 기온이 26~27도까지 올라간다더니 전철 안은 에어컨을 틀어 냉랭하고 앉아있는 사람들의 눈빛도 차다. 6월 1일, 아직은 조금 이른데 전철 안 공기가 무거워 밖을 보고 싶다. 책을 펼친다. 그 페이지 넘어가는 소리마저 가랑가랑하다.

" 다음 역은 이 열차의 마지막 역인 구래 역입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십시오."

빠르게 움직이던 손을 멈추고 가방을 정리해 자리에서 일어난다. 오늘도 출근 완료.


마음을 녹이는 짧은 문장
"한 시간 독서로 누그러지지 않은 걱정은 결코 없다."
- 샤를 드 스공다 -


#2. 20200602 AM11:08_감정의 온도 25℃


종착역인 구래 역, 전철 문이 열린다. 근래 극도로 예민한 코끝에 걸려든 이 내음은 비의 그것이다. 아뿔싸. 일기예보에서 비가 내릴 것이라고 하더니, 하필 내가 도착했을 때 떨어지네... 고개를 들어 기다란 에스컬레이터의 끝을 본다. 사람들의 손에 걸려 있는 우산들이 보인다. 젖은 우산 끝에 맺혀있는 물방울들을 본다. 생각보다 비가 많이 내리나 보다. 우산 끝에서 흘러내리는 빗물이 내 옆을 지나는 이의 발자국에 이어져 흐른다. 비는 참 좋다. 그 시원한 소리도 좋고, 시원함이 쏟아지는 유리의 두드림도 좋다. 손끝에 만져지는 청량감도 나쁘지 않다. 하지만 비를 밟는 것은 꺼려진다. 신발을 적신다는 것이 비의 수많은 이점을 싹 지워버린다. 에스컬레이터를 오르고 내려오고를 여러 번 반복한다. 높이 올라 손을 내밀어보고 하늘 멀리 본다. 희뿌연 비구름 끝에 살며시 빛이 열린다. 곧 비가 잦아들 것이다. 기다려 보자. 우산을 사러 뛰어가는 것이 거추장스러운 오늘이다. 시계를 보니 11:08. 서둘러야 함을 알지만 쫓기듯 뛰쳐나가고 싶은 마음은 없다. 내 맘속에 조급함이 가득하기에 몸만은 서두르고 싶지 않다. 여기서 급히 뛴다며 바람에 날리는 빗방울까지 미리 맞아버리는 것 같다. 걱정을 미리 사서 할 필요가 있을까? 모든 일은 때가 있을 텐데. 이런저런 생각에 발끝만 꼼지락거리며 위에서 아래로 아래에서 위로 여러 차례 더 오간다. 발톱에 달린 붉은 페디큐어가 오늘따라 더 붉다. 붉다. 미리 해버린 생각들처럼 검붉게 타오른다. 구름 뒤로 열린 빛이 비를 거둬들이면 곧 가야지. 그래 걱정을 미리 하는 게 아니야. 그리워 그리면 닮아갈 테니.


마음을 녹이는 짧은 문장
"오랫동안 꿈을 그리는 사람은 마침내 그 꿈을 닮아간다."
- 앙드레 말로 -


#3. 20200603 PM01:45_감정의 온도 50℃


9번의 일을 다 읽었다. 통감자를 물 없이 10개쯤 내리먹은 듯한 답답함과 무게감이 목 안을 가득 채웠다. 감자는 곧 소설 속의 일과 비슷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오늘의 내게 부족한 것이 무엇일까 잠시 생각을 해보니 없다. 지금 내게 나에 대한 생각보다 타인에 대한 고민이 더 많기 때문이다. 잠시 나를 미뤄놓았다. 이번 주까지는 아마 그래야 나 또한 편할 것 같다.

신도시의 스카이라인은 언제 보아도 자연스러움에서 한참 빗겨나간다. 드넓은 평야로 곡식의 창고였을 이곳, 김포의 너른 평야가 몇 년을 주기로 지평선의 고저가 변한다. 크고 작은 성냥갑 같은 아파트촌은 누가 들어와 메꿀까? 신도시의 상가 거리를 어미를 쫓는 새끼 새의 걸음처럼 걸어 입원실로 올라간다.

세 달여 나의 점심이 되어주는 커피번과 라떼, 어머님과 소소한 대화를 나누며 시원하게 뚫려 있는 창밖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2시가 15분 남았다. 예약된 도수 치료실에 어머님을 모셔드리고 제법 익숙해진 그 자리에 돌아와 앉는다.

실뜨기하듯 사람의 손으로 새로 그려진 하늘과 닿아있는 선들이 오늘 따다 더욱더 선명하다. 시원한 6월 바람에 구름도 날아가 버려 하늘의 푸름이 더 해진 오늘. 8층의 탁 트인 병원의 창밖은 언젠가 발을 담갔던 제주도 앞바다의 그 푸름만 같다. 조용한 바닷가의 상쾌함은 그대로인데 봉인된 내일이 나를 기다리고 있음에 꼴깍 마른침을 삼킨다.


마음을 녹이는 짧은 문장
....
거짓말처럼 봄이 갔어
산다는 건 다 거짓말이야
거기
누군가 있어 중얼거리지만
아니다
삶이란 별나게도 참다운 데가 있어
거짓말처럼 떠나간 봄이
어느 날
고스란히 돌아오리라.
<거짓말처럼 봄이> 중. 심호택


#4. 20200604 PM04:52_감정의 온도 75℃


아이의 메시지가 울린다. ‘엄마, 언제 와?’ ‘어제랑 비슷한 시간에 갈게. 할머니 식사만 챙기고 바로, 빨리 갈게. 조금만 기다려.’... ‘응’ 항상 그렇듯 짧은 답으로 아이는 대화를 마친다. 10글자를 넘기지 않는 아이의 메시지에는 10줄 이상의 감정이 담겨있음을 너무나 잘 안다. 표현이 너무나 서툴러 한마디를 뱉어내면 내 마음은 응당 찢어지듯 아프다. 웃음도 드문 아이. 그러나 생각은 나의 마음 씀에 비교할 수 없이 깊은 아이다. 그러나 하루 건너 힘들다는 단어를 눈과 몸으로 말하는 녀석에게 차마 꺼내지 못한 채 입안으로 혀를 말아 넣으며 묻고 또 물었다. ‘그만할래?’ ‘다음에 할까?’ 지난밤 강하지만 그 끝에 떨림이 담긴 목소리로 상처 받은 마음 한 조각을 꺼내 놓은 아이의 말이 귓가를 떠나지 않는다. ‘사람들은 한계에 부딪히고, 자신보다 뛰어난 사람을 만나면 잘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까? 반대로 그만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까? 어떤 사람들이 더 많아?’ 가볍게 답해줄 수가 없었다. ‘너보다 뛰어난 사람은 많아. 그러나 반대로 너 또한 어떤 부분은 그들보다 뛰어난 사람이야...’ 다시금 뒤엉킨 머릿속을 이고 걸음을 재촉한다.

어머님 저녁 식사를 챙기고 병실을 정리하고 시계를 보니 벌써 5시에서 8분이 모자란 시각. 바삐 움직여 전철역에 다다르고 교통카드를 서둘러 찍고 전철을 기다린다. 노란 안전선 밖에 서 있으니 내 가슴이 요동치게 한 것의 정체가 투명한 안전문 저편에서 다가온다. 너구나... 두려움. 단호하게 뱉어냈지만 실은 두려웠던 것이다. 버팀목이 되어주어야 할 내가 겁먹고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니, 미안함이 올라온다. 서둘러 가자. 용기 내어 너에게 어서 가자. 나에게도 너에게도 전철역 속에 있는 수많은 계단처럼 오르락내리락하는 시간이 있을 테니 용기를 내자. 높이 있는 계단을 같이 오르자. 아이야.


마음을 녹이는 짧은 문장
"I learned that courage was not the absence of fear, but the triumph over it. The brave man is not he who does not feel afraid, but he who conquers that fear."
"용기란 두려움이 없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을 극복하는 것이라는 것을 배웠다. 따라서 용기 있는 사람이란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그 두려움을 극복하는 사람을 말한다."
- Nelson Mandela -


#5. 20200605 PM08:25_감정의 온도 100℃


코로나로 일정이 한 달도 넘게 계속 밀리면서 모두 힘겹다. 마음과 머릿속이 습자지처럼 비친 날, 가리고 숨기기 어려워 50% 정도 방전 상태로 있다. 무얼 더 한다는데 큰 의미를 둘 수 없는 그런 날이다.


급하다 급하다 내 마음이 장마 끝 북한산 계곡 급류처럼 조급하다.


마음의 조급함이 쏟긴 물에 쪼글쪼글 그대로 말라붙은 노트 끝자락만 같다. 한 장 한 장 달라붙어 적혀있는 글씨들을 도대체가 읽어낼 수가 없는 그렇게 너덜너덜해진 마음에 손이 바들바들 떨린다. '휴~휴~후유~' 길게 날숨을 뱉어 철둑길 기차 엔진의 피스톨 같은 내 심장을 가라앉혀 본다. 이게 무어라고 대체 무어라고 이렇게 나대는지. 오늘따라 더 작아 보이는 핸드폰 화면에 손가락이 길을 잃고 쭉 미끄러져만 간다. 4시 33분이다. 5시 정각에 발표를 보려면 서둘러야 한다. 막상 뚜껑을 열자니 두려움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진다. 길어진 해는 아직 내 뒤통수를 때리며 빨리 가라 발길을 재촉한다. 금요일 퇴근길 전철 안은 시골 오일장처럼 시끌벅적하다.


여러 번 갈아타다 보면 전화기의 와이파이 신호가 오락가락 정신을 놓는다. 딱 시간을 맞춰야 하는데 자라목을 꺼내 자리를 찾아본다. 요 몇 달 주된 점심을 제공하는 꼬신 내 가득한 작은 빵집 앞 의자에 앉아 사이트를 연다. 드디어 5시다. 기진맥진 진땀만 주르륵 흐른다. 밀물에 젖어오는 모래사장처럼 손바닥에 습해진다. 5시 1분. 2분... 6분... 겨우 5분인데 5일이 지나는 듯 떠지지 않는 눈꺼풀을 힘겹게 끄집어 올린다. 쥐었다 폈다를 반복해 더 축축한 손으로 핸드폰 화면을 누른다. 아. 아! 올라왔다. 왈칵 올라오는 숨을 죽이며 다음 화면으로 밀어 넘긴다. 있다. 이름이 있다. 카톡이 온다.

'엄마, 어떻게 되었어?'

'축하해, S고 1차 합격, 그동안 많이 힘들었지?'

'응, 다른 곳은?'

'한 곳만 되었네. 괜찮아. 네 길 가는 과정인데, 이것도 충분히 훌륭해.2,3차 시험은 편하게 준비하자.’

'응' '뭐 먹고 싶어? 엄마가 맛있는 거 해줄게.'

'스테이크나 돈가스 해줘.'

오늘 집으로 올라가는 내 손에는 커다란 검은색 비닐봉지들이 가득 달렸다. 아들에게 엄마가 해줄 수 있는 최선의 응원은 맛있는 식사라고 누군가 우스갯소리를 했다. 아들과의 대화 온도는 고기에서 고기다. 지난 십여 일 요동을 치며 심장질환을 걱정시키던 내 가슴은 조금은 잠잠해졌다. 이제 작은 언덕 하나를 넘었을 뿐인데 에베레스트라도 접수한 듯 벅찬 감정이 밀려와 노곤해진다. 오늘이라는 날도 벌써 8시 25분. 저녁 식사 자리를 치우고 창밖을 우연히 바라보니 오늘의 달이 참 밝다. 6월의 해는 그 키가 부쩍 자라서 이제야 달빛이 나를 감싼다. 휘영청 밝은 동그란 달, 옥토끼야 토끼야. 쿵떡 쿵쿵 떡 고운 빛을 찢어내어 우리 아이 가는 길에 영롱한 반짝임으로 한가득 뿌려다오. 내딛는 걸음마다 환히 빛날 수 있게...


마음을 녹이는 짧은 문장
삶이 가장 축소된 순간에도 우리는 혼자가 아니며 혼자여서는 안 된다는 것 말이다. 혼자는 삶의 단위가 아니다. 삶의 최소 단위는 함께이며, 작은 함께가 모여 큰 함께를 이루는 것이다.
- 고병권의 칼럼, 묵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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