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네 엄마들이 우려내는 그 맛, 마음과 정성이 담긴 한 그릇.
'드드득~드르르륵~드드뜨르륵~'
가방 속에서 지퍼가 터질 듯 진동이 울린다. 진도 5.8의 지진이라도 났나? 수업 시간인데. 대체 누가 삐삐를 이렇게 치는지. 잡동사니 밀림 숲을 헤매 겨우겨우 삐삐를 찾아 꺼내 든다.
'990*828282' '990*828282' '990*828282'
집이네, '828282'는 또 뭐람. 엄마가 낮에 뭔 일 이래... 덜컥 걱정이 앞서려다, 오늘은 왜인지 짐작이 간다. 혹시 늦을까 걱정하시는 거지. 오늘은 증조할아버지 제삿날. 며칠 전부터, 엄마는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당부를 하셨다. 일찍 와서 제사일 좀 도와달라고. 걱정을 대문 손잡이에 질끈 묶어놓으시라 손가락 걸고 손바닥 비벼가며 도장까지 꾹 찍었다.
기억 서랍을 열어보면 우리 집엔 거의 매달 조상님이 찾아오신다. 할아버지, 두 분의 할머니, 증조할아버지, 증조할머니, 설과 추석에 올리는 차례 그리고 멀리 밀양에서 지내는 묘사까지 하나 둘 셋... 부랴부랴 신발을 벗어던지고 가방을 방안에 꽂아 던졌다. 헐레벌떡 달려왔더니 얼굴이 발그레해졌다. 우당탕거리는 소리 덕분이었을까? 엄마가 싱긋 웃는 표정으로 부엌문을 열고 나온다.
엄마는 갖은 재료들을 기름에 퐁당 튀기고 부친다. 나는 채반 옆에 쪼그리고 앉아 둥지 속 아기 새가 된다. ‘제사상 오르기 전 음식을 먹는 건 안 돼.’ 그러나 바닥이 떨어진 음식은 예외다. 고구마를 튀기다 혹시나? 오징어나 새우를? 아니면 닭다리. 알사탕처럼 데굴데굴 눈동자를 굴리다 떨어진 걸 날름 집어먹던 어린 시절. 누구나 한 번쯤 있었을 법한 그때. 피식 웃음이 나는 그런 추억. 고소한 기름 맛에 입천장이 홀라당 까져도 그 맛이 진리다. 달궈진 프라이팬에 기름이 한두 방울 떨어지면 나는 파블로프의 개가 된다.
참말로 맛있지만 이런 무조건적 반응 범위를 벗어나는 음식. 눈 앞에 놓이면 쓰윽 밀어내는 한 그릇 양식이 있다. 낯익은 내음, 익숙한 손길이 담겨있는 탕국이다. 엄마는 음식 하는 손이 컸다. 제사 음식 중 좋아하는 튀김과 각종 전은 하루 이틀이면 사라지고 나물과 탕국은 길게는 일주일 상위에 오르락내리락한다. 일 년 중 1/5은 탕국이 밥상 위에 떡하니 올라와 안주인 노릇을 하며 으쓱거린다.
하늘 가득한 구름처럼 하얀 무를 쑹덩쑹덩 썬다. 이만기 팔뚝보다 굵은 무를 큼지막하게 깍둑깍둑 썰어 한 조각을 씹는다. 아삭 거리는 시원함이 목젖을 타고 넘는다. 고운 면 보자기로 핏물을 빼낸 선홍빛의 양지도 편으로 칼질한다. 당근과 버섯도 물에 깨끗이 씻어 한편에 정육각형 모양으로 준비한다. 끙~영차! 한 아름 안길 크기의 솥뚜껑을 열고 무들이 자박자박 잠길 만큼 물을 붓는다. 고기, 당근, 버섯을 함께 넣고 불을 키워 보글보글 끓어오르면 달큼한 무의 향과 양지에서 우러나와 질펀한 특유의 냄새가 집안을 가득 채운다. 물컹해진 무가 내어놓는 단맛은 자연이 주는 사탕이다. 불을 한숨 죽이고 재료들이 뱉어놓은 거품을 수시로 거둬낸다. 국물에 재료들의 맛이 흘러나와 섞이면 두부와 홍합살을 넣어 다시 한번 센 불로 끓여낸다. 국자에 국간장을 따라 붓고 휘휘 저어 간을 맞추면 20년 가까이 맛봐온 엄마표 탕국이 상에 오른다. 투박하게 덜컹덜컹 썰어 무심한 듯 끓여내지만, 야채, 고기, 홍합살에 두부까지 가득 담긴 탕국은 오래 끓여내 불 맛과 정성을 담는다.
엄마의 탕국, 그 맛은 두말할 필요가 없는 보증수표다. 그런데 정말 진력나게 먹었다. 농담으로 이걸 그만 먹으려면 빨리 시집을 가야겠노라 수없이 말했다.
나는 헤아릴 수 없는 탕국 그릇 수와 함께 나이를 먹어갔다. 자연스레 누군가를 만나 믿음과 애정으로 내일을 약속하고 결혼을 했다. 혼인 서약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바다를 건너 중국, 북경에서 낯선 생활을 시작했다. 아는 사람이라고는 남편뿐이던 곳에서의 생활. 결혼 전 부엌 문턱은 가끔 엄마를 도울 때나 넘어가 봤다. 음식이라고는 라면 끓이는 정도가 전부인 내게 하루하루가 배움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북득이’는 그 해 내 뱃속으로 고이 찾아왔다. 북경에서 얻어 태명이 ‘북득이’ 였던 아이는 그만의 궁궐 속에서 하루가 다르게 자랐다. 남산처럼 불러오는 배에 일어나면 발가락이 가려져 보이지 않았다. 지인들은 산해진미가 가득하다는 북경, 맛있는 음식을 사 먹으면 된다며 사치스러운 투정이라 나무랐다. 그러나 바다 건너에 있는 이들과 그곳을 향한 외사랑에 그리움은 곱빼기로 더해갔다. 그런 하루아침 눈뜨면 생각나는 음식은 정녕 꿈에도 생각지도 못했던 음식이었다. 입덧에 몸과 마음이 지치고 힘들 때 지긋지긋했던 뜨끈한 국물, 시집이나 가야 그만 먹겠다며 투덜거리던 엄마가 끓여주던 바로 그 탕국. 그 질펀한 맛이 그립고 그리웠다. 엄마의 손끝. 엄마의 품이 간절해졌다.
탕국은 단순한 국물이 아니었다. 오랜 시간 엄마와 함께한 따뜻한 마음이 우러나 삶의 무게와 사랑의 결이 녹아든 국물이었다. 나를 키워낸 국물이며, 나를 나로 살게한 맛이다. 수없이 비워낸 국그릇, 늘 곁에 있었기에 몰랐다. 결혼후 엄마를 떠나보니 지긋지긋했던 탕국은 나의 뿌리임을 알았다. 세대를 이어가는 한그릇. 나를 나로 살게한 뜨거움, 엄마의 삶을 호로록 마시며 오늘을 지내고 그 힘으로 내일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