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의 살을 끌어안으며. 지금, 여기, 우리.

6월의 어느 토요일 연남동 나들이.

by 화몽
“아리야 오늘 서울 날씨는?”
“오늘 서울 하늘은 하루 종일 흐리겠습니다. 최고 기온은 32도 최저기온은 20도로 어제보다 더워요. 자외선 지수는 높음으로 일교차가 큰 날이니 감기 조심하세요.”


세상은 요지경이라 했던가. 신통방통한 신문물들이 생활을 보다 수월하게 해 준다. 편하지만 이렇게 쉬이 사용하는 게 바른 걸까? 사용의 당위성을 따져보려 나의 머리 시스템을 ‘윙’ 돌아가기도 전. 간단한 정보를 알려주는 인터넷 티브이 속 비서, ‘아리’가 아리따운 목소리로 친절하게 답해준다.

태양이 정수리 위에서 을 내리려면 아직 2시간여 남아있다. 하지만 그 뜨거움이 ‘아리’의 예보대로 장난이 아니다. 걷기 시작한 지 채 5분이 지났을까? 티셔츠 위로 축축하게 땀이 배어 나온다. 햇볕이 눈이 찌푸려지고 반팔 이래로 내밀어진 팔뚝은 뜨겁게 익어 간다. 이게 6월 중순의 날씨라니. 헉. 달궈지기 시작한 아스팔트 길 위로 강아지 한 마리가 종종 뛰어간다. 핑크색 가방을 멘 아주머니가 요 녀석을 놓칠세라 목줄을 꼭 쥐고 총총걸음으로 따라간다. 도토리 음식 전문 식당 앞, 주인아주머니가 부지런히 비질을 한다. 이제 막 가게문을 여셨는지 식당 안 형광등이 여기저기 꺼져있다. 비질 따라 날리는 먼지처럼 나도 가는 길을 서두른다.

전철을 기다리는 이들의 표정 안에 담겨있는 생각들이 궁금해진다. 부채를 흔드는 손과 미니 선풍기를 꺼내 든 이들이 많아졌다. 그들의 집에도 ‘아리’가 출근한듯하다. 갓 초등생이 되었을법한 두어 명의 꼬마들이 노란색 안전선 위에서 숫자놀이를 한다. ‘위이잉~~ 끽 안전문이 열립니다. 승객이 다 내린 뒤에 조심히 탑승하십시오 ‘ 기다렸다는 듯 신남의 함성을 내지르며 폴짝 전철 안으로 뛰어들어가고 뒤 따르는 엄마는 역시나, ‘위험해!’하며 걱정의 잔소리를 던진다. 십여 녀 전의 내 모습이 그녀의 모습에 더해지니 세월 참 빠르다.


대중교통 안 타인의 모습과 행동들을 찬찬히 뜯어보는 일은 내게 쏠쏠한 재미를 던진다. 태생상 타인의 삶에 관여하거나 쑥 들어가는 일은 주저하는 편이다. 그러나 나와 수평적 시간을 공유하는 이들의 삶을 주관적으로 상상해보는 것은 또 다른 재미다. 옷차림과 앉아있는 모습, 마스크 위로 보이는 동그란 눈 속을 슬쩍 들여다보며 그림을 그려본다. 핸드폰을 보는지, 잠을 청하려는지, 책을 보거나 누군가와 대화를 나눈다. 작다면 작고 크다면 커다란 한량의 육각 상자 속에서 같은 시간점을 올라타 있고 나는 그들의 삶을 조망해본다.

홍대입구역 3번 출구. 에스컬레이터 아래로 내려 꽂히는 햇발이 따갑다 못해 쓰리다. 햇발을 피해 들어온 곳. 기타 연주와 어우러진 새소리, 유리빛 플레잇 트 천정을 유연히 넘어 한결 상쾌해진 햇살을 해바라기 하는 아이비 잎이 바람에 흔들리면 공기가 전하는 따스함이 참 좋다. 소곤소곤 이야기 나누는 이들의 음소들이 넘실 넘실 내게로 온다. 높낮이가 다른 소리들이 모여 은근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사람의 소리가 타국의 언어처럼 귀에 감기며 연주곡과 어울려 은은한 한 곡조가 된다. 나른한 햇볕. 기분 좋게 달아오르는 해의 살을 끌어안으며. 지금, 여기.

시어(詩語)나 소설 용어로 자주 쓰는 햇살은 ‘해의 살’을 뜻하는 말이다. 햇살과 햇발은 느낌이 다르다. ‘햇발’이 따가운 뙤약볕을 연상시키는 반면, ‘햇살’은 담장 아래에서 해바라기 하기에 적당한 부드러운 햇볕을 떠올리게 한다.

연남동 끝자락위에 자리잡은 요거트하우스.

건강한 음식과 너른 창으로 들어오는 햇살이 좋은곳.

대기줄이 필수인 자그마한 공간, 그러기에 소중한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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