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리로 그려보는 화몽의 북살롱 _ 01.나는 나무에게서 인생을 배웠다.
나무 _ 명사.
1. 줄기나 가지가 목질로 된 여러해살이 식물.
2. 집을 짓거나 가구, 그릇 따위를 만들 때 재료로 사용하는 재목.
우리 집 책꽂이의 시계는 2020년 가을에 멈춰있다. 코로나 초기 한국에서 들어올 때 모셔온 책들이 가지런히 잠들어있다. 그 뒤로 한국을 갈 수도 책을 받아보기도 어려워 새로운 책은 아직 들이지 못하고 있다. 고르고 골라 모시고 온 책들이 북경에서 2번 그 자리를 옮겼다. 상해까지 3번이나 이사를 했으니… 그러나 문제는 그렇게 귀하게 모시고 온 책들이 가지런히 꽂혀 읽힐 날만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이다. 책장 한 장 넘길 시간이 없었다. 무엇이 그리 바쁜고 마음에 빈틈이 없는 날들이 이어졌던지… 어쩌면 핑계일지도. 얼마 전까지 나의 마음엔 눈발이 날리고 있었다. 끝나지 않을 것 같던 겨울에도 봄은 온다. 우연히 불어온 바람이 겨우내 쌓인 눈을 녹이며 나의 걸음을 책꽂이 앞으로 움직였다. 평소 인스타에 멋진 캘리그래피 작품을 올리시던 난주의 서탁님이 ‘글연’이라는 필사방에 추가 참가자를 모집한다는 글을 보고 바로 두 손 두 발을 들었다. 첫 필사 책을 고르자니 그간 조용했던 책들이 서로 읽어달라 아우성이다. 한참을 바라봤다. 그래,너로 정했다!
< 나는 나무에게서 인생을 배웠다.>
나는 책을 읽을 때 표지 앞뒤 날개에 추천사나 작가의 말을 눈여겨 읽는 편이다. Prologue도 꼼꼼히 챙긴다. 부족한 이해력을 작가의 책 소개 글과 전문가의 추천사에 기대는 편이다. 책의 얼굴이 되는 세네카에 적혀있는 문구들도 큰 도움이 된다. 이곳에 쓰여있는 간략한 한두 문장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주된 메시지가 되기 때문이다. < 세상에서 가장 나이 많고 지혜로운 철학자. 나무로부터 배우는 단단한 삶의 태도들.> 이 짧은 한 줄에 나무의사 우종영 선생님의 삶의 철학이 고스란히 묻어있다. 책을 읽으며 내 마음에 담고픈 문장들을 하나하나 필사해 나갔다. 나만의 글씨를 만들고 있는 요즘. 이 책은 캘리그래피에 대한 나의 막혀있던 생각들에 작은 물고를 내어주었다.
나는 나무를 좋아한다. 아니 사랑한다는 표현이 더 맞을지도 모른다. 높은 산이나 넓은 바다 앞에 서면 먼지 같은 우리는 대자연에 압도당한다. 방대한 우주 안에서 나는 작은 미물에 그치겠지만 살아 숨 쉬고 있다는 사실 이 하나만도 놀랍다. 나무의 생은 더욱 크고 위대하다. 이 책을 접한 후 나의 나무에 대해 무지는 둘째치고 그들의 마음을 오해하고 있었음이 부끄러웠다.
나무는 움직일 수가 없다는 것은 유치원생들도 알고 있는 사실이다. 주어진 환경 안에서 최선을 다한다. 그곳이 뜨거운 벌판 한가운데거나 높다란 바위, 꽁꽁 얼어붙은 땅이라 해도 말이다. 책장을 넘기며 나무는 그저 묵묵히 견디고 살아낼 수밖에 없다 여겼던 내 생각이 하나만 생각하고 그 너머를 보지 못했음을 알았다. 그들은 선택할 수 없음에 순응하는 것이 아닐지 모른다. 그러한 자신의 모습마저도 버티어내며 오늘을 산다. 움직일 수 없다 능동적 삶을 산다 생각한 건 잘못된 생각이었다. 길어야 백 년을 사는 우리 인간의 눈에 대부분의 나무들의 자람은 더디게 느껴진다. 그러나 그들은 우리들보다 더 오랜 시간을 자연과 함께 했다. 조금이나마 나은 내일을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나무의 종에 따라 차이가 크지만 그들은 자신만의 속도로 조금씩 내일을 향한다. 주변의 다른 나무의 자람에 속상하거나 쓰임새의 차이에 낙담치 않는다. 묵묵히 자신의 자리에서 하늘을 향해 오른다.
지금 나에게 가장 필요한 나무의 가르침이 바로 이것이 아닐까? 비교하고 눈치 보며 누구보다 더 멀리 더 높이 더 많이 가지려 오리의 발짓을 흉내 내고 있을까? 군더더기로 나를 감출 필요도 애써 웃어낼 이유도 없다. 걷고 또 걷다 시련 앞에 무너져도 오뚝이처럼 일어나 또 걷자. 나의 보폭으로 앞만 보고 달리는 경주마가 아닌 더 멀리에 있는 나를 생각하며 나아가자. 다른 이들의 잣대에 나를 맞추기 보다 스스로 사랑하고 안아주자. 그래, 화몽아. 참 애썼다. 너 정말 씩씩해!
책 < 나는 나무에게서 인생을 배웠다 > 를 화몽의 한문장으로 그려본다.
“ 나다움을 찾기위해 오늘에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