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동저고리

다름을 품어내는 색의 조화처럼

by 화몽


‘오지랖’은 본래 한복의 웃옷이나 윗도리에 입는 겉옷의 앞자락을 뜻한다. 이가 너무 넓으면 안에 있는 다른 자락을 가리게 되어 ‘오지랖이 넓다’가‘남의 영역을 침범한다.’’, ‘남의 일에 쓸데없이 과하게 참견하다’의 의미로 쓰인다. 여기서 중요한 부분은 ‘과하다’이다. ‘과하다’라고 말하는 기준을 따라 ‘오지랖’은 친절과 간섭, 배려와 불쾌함 사이의 아슬아슬한 줄타기가 시작된다. 같은 말과 행동도 전혀 다른 색으로 타자의 마음을 물들인다. 젖어든 마음은 빛이 될 수도 그림자를 드리울 수도 있다. 결국 받아들이는 마음의 선택이기도 하다.

우리 민족은 다른 사람들에게 유난히 관심이 과한 편이다. 그래서인지 오지랖은 관심의 또 다른 표현이라는 생각이 전반적으로 깔려있다. 사이가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우리가 남인가?’라며 선을 넘어 쑥 들어오기가 일상다반사다. 명절이면 시작되는 어른들의 한수두기는 날이 어둑어둑해질 때까지 끝나지 않는다. 작별을 고하는 그 순간까지 뒤통수에 꽂히는 말들은 상처가 되기 일쑤다. 이를 당연하다 여기며 어린 시절을 보낸 우리가 이제 그들의 자리에 들어가 앉았다.


나는 빵순이다. 요즘 유행하는 빵지순례를 한다며 큰아들과 나이가 비슷한 친구들을 종종 만난다. 친분이 쌓인 친구들이 한두 명씩 늘어갔다. 그중 대학교 3학년인 친구와 여러 번 함께 시간을 가졌다. 그들과 대화하다 보니 그 또래의 고민이 툭툭 터져 나왔다. 가볍게 이야기한다는 것이. 평소 좋은 인상이 있어서 나도 모르게 이런저런 조언을 해주었다. 말이 가지고 있는 무게를 잘 알기에 조심하는 편이다. 호감을 느낀 상대가 열심히 내일을 준비하는 모습이 이쁜지. 나도 모르게 그만 라떼스러움을 장착해 버렸다. 내게도 과한 관심이 상처로 남았던 기억이 떠올라 조심하려 했지만, 아뿔싸… 후회가 급 밀려 들어왔다. 나는 이미 그 친구의 유학 로드맵에 마침표를 찍어버렸다. 나의 애정이 묻어있음을. 그녀의 선택에 강요가 아닌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내 맘을 알아주기를… 혹여 오지랖이 될지 걱정이 되어 급히 표정을 살폈다. 내 쪽으로 몸을 기대고 반짝이는 눈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휴… 다행이다.


“오지랖은 관심에서 시작한다. 상대방에 대한 애정이 밑에 깔려있다.”


오지랖은 우리 음식과 닮았다. 정형화된 조리법이 드문 한식과 비슷하다. 가가호호 다 다른 방법으로 김치찌개를 끓인다. 조리 재료들과 양념 등을 대충 이 정도면 되리라는 감에 따라 가감한다. 순전히 감이다. 선의에서 출발하지만, 간섭으로 결승선을 끊게 될 수도 있는 묘한 터닝 포인트를 알아채는 것. 사랑이라는 이름의 폭력이 자행될 수 있기에 민감하게 감을 키워야 한다. 오지랖은 관심에서 시작한다. 상대방에 대한 애정이 밑에 깔려있다. 상대방을 아끼는 마음을 곱게 펼치자. 꼭 여미어진 보자기를 풀어내는 엄마의 미소의 화사함을 떠올려본다. 조심스래 펼쳐진 색동저고리의 소매가 내게 안길 때 그 따스함이란. 오지랖은 순결한 그분의 미소, 그 빛이었다. 색동저고리의 빛은 서로 다름의 합에서 나온다. 차가 아닌 합임을 품을 때 불편한 간섭이 아닌 엄마의 사랑처럼 반짝인다.


서로 다른 빛이 이어진 색동저고리처럼 엮일 때, 우리도 익어간다. 오지랖도, 결국은 사랑의 또 다른 이름일지도 모른다.


“조심스레 펼쳐진 색동저고리의 빛깔처럼, 오지랖은 다름이 어울려 만든 사랑의 무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