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캔디, 이제 웃자!

오늘의 웃음이 내일을 밝힌다.

by 화몽


지인들을 만나면 지난 이야기에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언제부터인지 오늘을 넘어선 이야기들보다는 지나간 시간을 곱씹어보는 일들이 많아졌다. 살아온 시간이 그만큼 쌓였다는 의미일까? 아니면 새로운 무언가가 두렵기 때문일까? 내 몸은 오늘에 서 있지만 항상 뒤를 보고 있는듯한 느낌이 든다. 이런 생각들은 문득 내 나이가 벌써 이렇게 되었나? 하는 놀라움으로 이어지곤 한다. 짧게는 4~5년 길게는 30년을 훌쩍 넘어선 사건들도 종종 수다 메뉴로 올라오기도 하니 말이다.


1년 전, 그렇다. 벌써 1년이 지났다. 그맘때 나는 이사를 했다. 나는 이사의 달인이다. 결혼 후 20번 가깝게 이사를 했다. 가깝게는 도시 안에서 멀게는 국경 너머 짐을 싸고 푸르기를 20번 가까이했다. 사연 없는 이사가 있겠는가? 크고 작은 이유로 즐겁기도 하고 마음이 무너질 만큼 힘들기도 했다. 그 무게로 따지자면 가장 큰 이사를 한 것이 작년 이맘때였다. 20여 년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넘어지고 일어서 나아가기를 반복하며 살아왔지만 가장 큰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 허우적거리던 때였다. 아침드라마의 주인공이 바로 나였다. 다행히 이제는 그땐 그랬어라고 미소 지으며 말할 수 있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고 했던가? 바닥을 친 공이 다시 튀어 올랐다. 안 좋게 풀렸다고 생각했던 일에서 오히려 새로운 길을 찾았다. 캔디처럼 살면 되는 거였다. 울면 울 일이 생기고 웃으면 웃을 일이 생기는 게 세상의 이치. 뭐든 마음먹기 나름이었다.


바닥을 친 공은 다시 튀어 오르듯, 삶도 결국 다시 일어선다.


새로 만난 길에도 크고 작은 돌부리가 있을지도 모른다. 아스팔트가 넓게 깔린 8차선 도로로 달리다가 싱크홀을 만날 수도 있다. 정도가 다르겠지만 누구나 치열한 하루하루를 보낸다. 무엇을 위해 그렇게 달려왔던가? 누구를 위해 쉼 없이 살아왔나? 날 이렇게 끌어온 원동력은 무엇일까? 내일을 짐작할 수는 있지만 확신을 가질 수는 없다. 그럼에도 나아가야 하는 게 우리 삶이다. 자연스럽게 들숨과 날숨이 교차하는 지금을 살아내는 것. 그렇게 힘겨웠던 시간도 결국은 지나가듯 흐르는 시간에 나를 맡기는 넉넉함이 필요하다. 질문으로 가득한 거미줄을 조금 치워내고 멍때리는 시간을 가져봄은 어떨까?


벌써 오늘도 다 지나갔다. 그렇게 일주일, 한 달, 일 년, 십 년이 더 빠르게 흘러 나는 죽음에 가까이 가고 있다. 그러니 지금, 이 순간이 너무나 소중하다. 어제에 매달리지 말고, 내일을 걱정하지 않고 오늘을 잘 지내야지. 뭐든 마음먹기 나름이니까. 삶은 웃음과 울음 사이의 줄다리기다. 결국은 웃음이 이긴다. 오늘의 웃음이 쌓여 내 삶을 따스하게 비춘다.


내 안의 작은 캔디야!

웃어라 웃어라 캔디야. 울면 바보다 캔디 캔디야!


웃어라 웃어라 캔디야. 오늘을 지켜내는 힘은 웃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