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히 전해지는 삶의 언어
사람과의 관계에서 대화는 필연적이다.
너와 내가 우리가 되어가는 과정에서 대화란 필연적 요소이다. 관계를 단단하게 만드는데 말은 풀과 같은 역할을 한다. 서로의 틈을 좁히고 이를 단단하게 이어준다. 물론 공감과 배려를 기본으로 한 대화라는 기본전제하에서 가능한 일이다.
간혹 말은 다의성을 지닌다. 사전적 의미가 아닌 화자의 마음이 반영된 주관적 의미를 가지기도 한다. 미묘한 차이를 지닌 표지판을 잘 따라가야 상대의 마음에 닿을 수 있다. 이리저리 뒤집어보며 말맛을 느껴야 한다.
사이를 좁혀야 하는 관계가 아니라면 이는 참 피곤한 일이다. 공식적인 영역에서의 말의 무게란 무거울 수밖에 없다. 그래서 가끔은 무언의 공간으로 나를 집어넣고 싶을 때가 있기 마련이다.
의미 있는 말들이 켜켜이 쌓인 관계는 때론 고요한 대화가 가능하다.
시공을 공유한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서로를 나눌 수 있다. 척하면 착하고 눈빛만으로 통한다. 그러나 이심전심이 가능한 사이는 쉽게 찾아오지 않는다. 막연히 기다린다고 내가 다가오지 않는다. 오고 가는 진심 속에 공감의 싹이 튼다. 애정이 물고를 틀면 우리라는 나무는 쑥쑥 자란다. 침묵은 더 이상 어둠이 아닌 여명을 가지고 오는 별이 된다. 서로의 눈 속에서 빛을 찾는다.
우리는 각자의 잣대로 세상을 재단한다.
보고 싶은 대로 보고 듣고 싶을 것만 듣는다. 많아도 탈이고 없어도 틈을 만드는 게 말이다. 여기에 서로의 기준을 가져와버리면 말은 시한폭탄으로 돌변한다. 누군가에게는 깊은 상처가 된다. 칼자루를 쥐고 있다고 칼끝을 피할 수 있는 것만도 아니다. 두려워 입을 닫아버리면 상처는 깊게 곪아간다.
누군가와 마음을 나눈다는 건 모래성을 쌓아 올리는 것처럼 힘겨운 일이다. 나와 너 사이의 피로감이 쌓이면 말이 필요 없는 대화 상대가 절실해진다. 그들은 멀리 있지 않다. 우리와 항상 함께 있다. 신발끈을 조여 메고 문밖으로 나가면 어디서든 만날 수 있다.
나에게 기준을 들이밀지 않고 기다려주는 그는 자연이다.
주지 않아도 나를 채워준다.
억지로 털어내지 않아도 나를 담아준다.
자연이 지닌 너그러움과 그윽함은 세상에서 받은 상처는 보듬어주고 사랑은 부풀려준다. 산등성이를 탈 때 푸른 하늘과 닿는 나는 자유롭다. 모래밭에 흘려놓은 쓰라림은 은빛 거품들이 씻어준다. 물결에 아른거리는 간지럼은 햇살에 날아오른다. 수풀사이로 흐트러지는 나를 산들바람이 안아준다. 사방천지 가득 피고 지는 풀꽃들이 내게 속삭인다. 자연과 주고받는 말이 필요 없는 대화는 일생에 절정경험을 남기기도 한다. 지리산 고개를 오르락내리락하며 숨이 다할 만큼 고통이 차 올랐을 때 만난 붉게 타오르던 구름처럼 경이로운 찰나처럼 내게 박힌다. 시간이 멈추고 오롯이 나만 존재했던 순간은 격렬한 대화로 새겨진다. 잔잔한 물결이 일듯 늘 만나는 둘레를 세세히 살피면 조근조근 말을 걸어오는 존재가 있다.
말이 아닌 함께 존재하는 공간의 진동으로 교감하는 자연.
자연은 그런 벗이다. 자연은 그런 어머니다. 자연은 그런 나 자신이다.
말이 필요 없는 관계는 그리 멀리 있지 않다. 지내온 시간이 이런 관계를 만들어준다.
관계 안에서는 더 이상 말이 가장 큰 의미를 지니지 않는다. 오히려 어긋나게 한다.
눈빛이 마주치는 순간.
손끝에 스쳐가는 바람.
숨결이 담겨있는 온기.
천천히 맞춰오는 발걸음.
시간의 먼지를 털어내는 손길.
믿음에서 나오는 끄덕임.
내 안에서 자연을 찾아보면, 이내 드러난다.
자연스럽게 침묵으로 서로에게 다가가면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고, 더 깊이 빠져들어간다.
우리는 결국 더 단단해진다.
말이 고요히 사라진 순간, 서로는 우리가 된다.
사이는 무릇 하나로 겹쳐지고,
바람이 계절을 따라 흐느껴 노래하듯,
침묵 안에서 피어오르는 대화는 꽃이 된다.
그 꽃을 당신과 함께 피어내기를 바라며,
살구빛 손을 내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