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을 여며주는 말

10월, 따뜻해지는 나의 첫말

by 화몽


첫서리가 내려앉은 문턱.

시원하게 나를 쓸어내리는 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하는 10월.

옷장 속 서랍을 꺼냈다 밀어넣기를 반복한다.

더운 날은 길게 늘어지고, 겨울과의 사이를 이어주던 상념의 가을은 어느새 낙엽처럼 우수수 굴러다닌다.

울긋불긋 발길을 덮은 이불처럼 우리도 따뜻한 외투를 준비해야 할 때다.

몸도 마음도 미리 온도를 올려놓아야 한겨울을 용케 지낸다.


말에도 온도가 있다.

같은 말이라도 계절에 따라 귀에 감기는 온도가 달라진다.

붉은빛 벙어리장갑처럼 포근한 말,

얼어붙은 머리칼을 돌돌 말아 녹여주는 뜨개목도리 같은 말.


“밥은 먹었니?”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온 그 물음 안에 관심과 애정이 깃들어 있음을 안다.


그러나 어떤 말은 매서운 주먹 같다.

훅 하고 날아와 마음 곳곳을 때리고, 얼음장 위로 내던져버린다.


“밥은 먹고 다니냐!”

의심의 눈초리와 함께 날아오는 말은 겉으로는 비슷하지만 마음에 상처를 남긴다.

엔극과 에스극처럼 서로를 밀어내며 극과 극으로 갈라진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손길에 단추구멍이 헐렁해진 외투,

보풀이 올라온 두툼한 손뜨개 니트 같은 말이다.

지친 어깨를 포근히 감싸 안아주는 말.

소근소근 다가와 마음을 덮어주는 말.

그런 말들이 이 계절에 더욱 그리워진다.


새로운 경험은 건강한 물음표로 가득하다.

생경한 시간, 낯선 장소에서의 생활은 차가운 거리다.

내게 중국이란 그런 단어다.

일상의 언어가 달라지니 온도의 간극은 더 멀어졌다.

거리에는 이름을 모를 소리들이 가득했다.

높고 낮음을 오가는 음성은 흡사 거북한 언쟁으로 보였다.

의미를 알아가면서 서먹함은 줄었지만, 북경·우한·광저우·남경을 휘돌아 다시 북경, 그리고 상하이.

우리나라를 수십 번 오가도 모자란 거리를 넘어 살며, 말이 주는 다른 의미는 더 아련해졌다.


그들의 말에는 고저가 있다.

스타카토를 튕기듯 사계절을 담는다.

겨울을 머금은 햇살처럼 쨍하게 뻗치는 첫소리.

노곤히 피어오르는 봄의 아지랑이 같은 둘째 소리.

멀리서 달려왔다 발끝을 간지럽히고 도망가버리는 여름 파도 같은 셋째 소리.

마지막 소리는… 또르르 굴러 떨어지는 가을 열매.

툭툭 내던지는 소리들은 성조의 리듬에 따라 전혀 다르게 읽힌다.


우리말에도 다른 언어에는 없는 독특함이 있다.

툭 내던진 무뚝뚝한 반말은 끝이 울퉁불퉁한 돌멩이다.

잘못 맞으면 아프다. 가볍지만 뼛속까지 서늘해진다.

치근거리며 앵기는 반말은 봄볕이다.

새끼처럼 비비 꼬인 존댓말은 10월의 비처럼 깊다.

할머니의 체크무늬 숄은 36.5도를 지켜내는 존댓말이다.


“밥은 먹었니?”라는 말에 중국의 4성조가 묘하게 비틀려 겹친다.

거기에 반말과 존댓말이 엉기면 자아내는 온도의 차이는 사막과 북극을 오간다.

소리에 마음을 더하면 관계의 거리가 가까워진다.

세세한 온도를 안고 있다.

막 말문이 트인 서툼 같은 반말은 애정과 존중을 배우며 다채롭게 번져간다.

놓일 곳에 놓여야 한다. 계절에 맞는 옷을 꺼내 입듯.


아이에게 건네는 말은 솜이불처럼 가볍게.

친구에게 전하는 말은 따스한 향을 전하는 한 잔의 차다.

오래된 외투의 묵직함을 나누는 든든함은 부모님과의 대화다.

누군가의 등을 토닥여주는 한마디, 지금의 외투다.


첫서리가 내려앉은 문턱에서 입안으로 말을 건넨다.

따뜻하자. 따뜻한 눈. 따뜻한 손길. 따뜻한 입으로 당신에게 가자.


존댓말의 정갈함과 반말의 다정함을 오가며 당신의 옷깃을 여며본다.

살그머니, 느리게, 긴 호흡으로.


짧아지는 날과 길어지는 그림자처럼 10월의 달력을 본다.

이 한 장을 넘길 즈음에 조금 더 포근해질 나를 기다리며,

내게 다가올 너를 기다려 본다.


그렇기에 먼저 따스해질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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