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천리의 반을 얻다
작은 꾸준함이 쌓인다.
작은 돌아봄이 남는다.
작은 움직임이 이어진다.
작은 발자국이 겹쳐진다.
작은 눈빛들이 반짝인다.
소소하고 사소한, 별것 아닌 별것들,
민들레 씨앗들이 흩날려 모여 봄의 들판을 만든다.
늦봄의 볕에 잠시 스쳐온 초여름,
단단하게 자라날 습관은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든다.
“제자리에, 준비… 출발.”
“탕!”
긴장감에 온몸이 얼어붙은 그 잠깐.
숨은 목을 치고, 훈풍이 출발선 위를 가른다.
시작이라는 순간은 참 미묘하다.
마음속에 생각이 번쩍일 때도 아니다.
아직 몸은 움직이지 않았다.
발이 땅을 디디고 떨어진 자리도 아니다.
이미 시작되었다.
첫걸음은 복잡한 실타래가 풀리는 틈.
떠나려면 출발선에서 넘어야 한다.
천리던 만리던, 그 너머 어디든.
살아갈 날들 또한, 작은 몸짓들이 쌓여 올릴 길이다.
발끝을 꼼지락거린다.
종아리 근육이 미세하기 떨리고, 손가락은 나도 모르게 주먹을 쥐었다 펴기를 반복한다. 출발을 알리는 총성보다 먼저 달려 나간 심장, 눈빛은 이미 결승선에 닿아있다. 오늘의 출발선은 아직 누구도 밟지 않은 순백이지만, 수많은 발끝을 기억하고 있다. 트랙 위로 뜨거워진 고무 냄새와 모래 알갱이들의 흙내가 뒤엉켜 올라온다. 팽팽이 당겨진 신발끈은 시작을 알릴 총구만을 바라보고 있다. 시계의 초침은 평소와 똑같이 움직이지만, 바람은 발 앞에 멈춰져 있다.
풋바람에 들썩이던 꽃잎들이 잠잠해지는 사이에 나는 서있다.
누군가는 별자리를 따라, 누군가는 바람을 타고 날개를 편다.
하늘의 문이 열리는 순간, 너머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들에 대한 알싸함. 두려움과 기대감은 동시에 푸른 여백을 채운다. 그렇기에 바람결에 몸을 맡기는 것은 어렵다. 그럼에도 눈빛은 구름 너머로 향한다.
시작해야 한다는 것.
익숙한 공간에 잠시 이별을 고하고
낯선 바람을 탈 때 비로소 길이 열린다.
작은 날갯짓이 모이면 바람과 함께 할 수 있다.
순간은 그렇다.
설렘과 긴장, 기대와 망설임, 호기심과 두려움,
새로운 순간은 빛과 그림자가 겹쳐진 곳에 서 있다.
가슴은 뛰고, 숨은 막힌다. 눈빛은 흔들리고, 손은 떨린다
마침내 몸이 앞으로 기운다.
이어진 걸음들이 모여 결국 나를 일으킨다.
오늘 나는 다시, 시작의 자리에 선다.
나를 찾아, 나를 향해 마음의 문고리를 비틀고 길로 나선다
아침에 일어나 이불을 정리하고 창을 열어 새 숨을 쉬는 일,
책장을 펼쳐 한 줄을 읽으며,
따뜻한 물 한잔으로 나를 채우고,
자고 있는 아이와 눈을 마주하고 깨우는 일,
작은 몸짓들로 오늘의 걸음들을 시작한다.
작은 씨앗처럼 흩뿌려지고, 어디선가 싹을 틔우고 나와 눈을 맞춘다.
첫 발자국은 흙 속에 심긴 씨앗,
그 씨앗들이 나를 보듬어줄 큰 숲을 이루어 나를 감싼다.
눈을 뜨면 몸을 길게 늘이고 접으며 아침을 연다. 오늘은 손 위에 놓인 선물처럼 조용히 다가온다. 발걸음마다 낯선 길이 스쳐 지나가도, 그 길 위에 쌓인 순간들이 나를 조금씩 세운다. 명상과 운동, 소박한 식사와 짧은 문장들, 사소한 일들이 모여 나를 엮는다. 퍼즐의 조각이 제자리를 찾아가듯, 오늘도 나는 나를 맞춰가고 있다.
올봄엔 일기를 다시 쓰기 시작했다. 짧은 기록들이 하루를 붙잡아 주었고, 그 문장들은 작은 씨앗처럼 내 안에 흩뿌려져 조용히 길을 틔우고 있었다. 곁에는 화분 하나를 들여놓아 잎이 자라는 모습을 바라보며 함께 키우기로 했다. 일기와 식물, 두 작은 습관이 나란히 자라며 내 안의 숲을 조금씩 넓혀주었다.
나는 오늘, 천리의 반을 얻었다.
나는 오늘, 천리의 반을 얻었다.
나는 오늘, 천리의 반을 얻었다.
용기 내어 또 다른 여정에 첫 흔적을 남겼으니.
나는 오늘, 천리의 반을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