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숨결로 기록되는 계절
요즘 우리나라의 날씨는 참 아리송하다. 이미 익숙한 사계절에, 지구촌 각지의 기후가 얽혀 들어와 교향곡처럼 울려 퍼진다. 지중해의 기운을 품은 적란운이 우주 끝까지 솟구쳐 오른다. 쩌렁쩌렁한 천둥은 심장을 후려치고, 번개는 하늘을 쭉쭉 찢으며 세상을 뒤집는다. 찰나의 폭우는 대지를 삼켜버린다. 언제 그랬냐는 듯 이내 비가 그치고 태초의 붉음이 하늘에 가득 차오른다. 이곳이 동남아의 바닷가인가? 이국적인 노을이 눈앞에 영화의 한 장면처럼 펼쳐진다. 다른 계절들도 마찬가지다. 극지방의 살을 에는 추위와 바람, 사막의 타는듯한 열기만 빼면 이 땅에서 모조리 경험할 수 있을 듯. 그중, 여름의 스펙트럼은 스스로 경계를 지우고 무한으로 확장된다.
올여름, 신문은 거의 매일 같은 기사로 시작한다.
‘이상기온이다. 관측 이래 이보다 더 뜨거운 날은 없었다.’
활자 속에서 날씨는 재난이 되고, 우리의 일상에는 고통이 된다.
“이렇게 더워서야! 살 수가 없네.”, “찜통이야. 그냥 찜통.”
그럼에도 스스로를 위로해야만 한다. 그래, 웃자.
“오늘이 우리 생에서 가장 시원한 여름일 거다!”
피할 수 없다면 즐기는 거다. 뜨거움 앞에서 쓰러지지 않기 위해선 결국, 마음가짐. 단 한 가지, 그것뿐.
투두둑… 초록을 두드리는 빗소리.
맴맴— 열린 창으로 밀려드는 매미 소리.
위이잉— 도심을 뒤 흔드는 실외기의 소리.
첨벙! 물가에 부딪히는 물살의 소리.
휘이익— 나무 사이를 가르는 바람 소리.
콰이앙… 스스로 쪼개며 터지는 파도의 소리.
귓가를 두드리는 소리들이 차례로 번져와 달아오른 살결을 식힌다.
강렬한 붉음이 땅을 달구면, 한 줄기 땀마저 노랗게 흐른다.
초록에 투명해진 눈은 땅의 호흡을 따르고, 파랑에 타오르던 숨결은 하늘로 날아오른다.
바람에 실려온 다채로운 여름이 내 살결을 훑고 지나간다.
산과 바다의 향기를 머금은 바람.
흙을 밟을 때 올라오는 뜨거운 열기.
빗줄기가 할퀴고 간 땅은 피어오르는 젖내를 울부짖는다.
자, 이제 여름으로 빠져들 순간!
자전거를 타는 내게 올여름은 특히 잊지 못할 경험을 남겼다.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날씨 덕에, 나는 여름의 한가운데로 푹 빠져들었다. 폭염과 폭우가 계주를 벌이는 하늘의 긴장감에 등은 땀으로 얼룩져갔다. 나는 결승선을 향해 달려드는 이 여름의 마지막 주자로 나섰다. 일기 예보 따위, 비구름은 언제나 예고 없이 내리 꽂혔다.
갑자기 쏟아지는 빗줄기는 나를 가두었다. 달아날 구멍은 보이지 않았다. 두려움이 나를 뒤흔들었다. 그러나 그 속에 온 나를 던져야 했다.
나는 멈추지 않고 달렸다.
여름의 모호함, 그 끝이 보이지 않는 전쟁터의 모서리를 향해 내 달렸다.
시각은 내게 특별한 감각이다. 보이는 것 너머의 대상을 찾아내는 즐거움이 각별하다. 그런데 이 여름은 내게 감각의 종합 선물세트를 내던졌다. 후드득후드득 떨어지는 빗방울은 온몸에 찌릿한 통감을 남겼다. 한 치 앞을 볼 수 없을 만큼 퍼붓는 비는 천지가 뒤집히는 듯한 묵직한 소리로 잠든 감각을 흔들어 깨웠다. 여름의 터널 안에서 울려 퍼지는 그 소리는 흡사 기승전결을 갖춘 교향곡 같았다. 여러 개의 악기가 하모니를 이루듯, 셀 수 없이 많은 빗방울은 하늘과 땅을 가로지르며 연주를 시작했다. 그 유명한 ‘흠뻑쑈’가 따로 없었다.
관객도, 지휘자도, 화려한 무대 장치도 없었다. 그러나 그 소리는 온몸을 관통하며 내게 질문을 남겼다. 초록이 다하면 결실이 맺히듯, 이 여름의 교향곡 속에서 나 또한 그렇게 자라날 수 있을까. 여름의 교향곡 속에서 나는 아직 미완의 음표이지만, 언젠가 하나의 선율이 되어 끝없이 울려 퍼질 것이다.
여름의 첫 자락, 완성을 향한 태양이 뱉어내는 뜨거움과 함께 호흡하며 나는.
돌아보지 않는다. 그 순간 나는 계절의 흐름과 온전히 하나가 되어 타오른다. 우리의 목소리는 닮아가고, 함께 하는 노래는 사라지지 않는다.
여름의 모든 날에 흐르지만, 그 뜨거운 호흡은 내 안에서 함께한다. 계절은 변해도, 여름이 남긴 자국은 내 살결 위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나는 함께 숨 쉬며, 여름을 스쳐간다.
꿈틀거리는 모든 감각, 여름이 나를 흔든다. 그 뜨거운 공기, 소리, 끝없이 번져가는 색과 느낌을 온전히 내가 끌어안고 시간을 지나며 성장해 간다. 여름을 관통하며 더욱 짙게 채색될 나.
불완전한 열정으로, 달궈진 뜨거움으로, 타오르는 격정으로, 꿈틀거리는 생생함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