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색을 찾아가는 계절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한 여름 도시의 낮, 궁금했다.
뜨겁게 달궈진 대형 프라이팬. 톡톡, 계란을 두드렸다. 흘러내린 노랑은 곧바로 끓어올랐다. 껌처럼 아스팔트에 눌어붙은 내 호기심을 타고, 구름 한 점 없는 하늘로 증발해 버렸다. 망고처럼 샛노란 햇살이 쏟아져 내렸다. 여름을 짝사랑한 해바라기는 태양을 향해 황금빛 함박웃음을 터뜨렸다.
가장 선명한 색으로 내 무늬를 그리기 시작했다.
맛과 향, 색과 촉감, 소리 그 모든 게 나를 뒤흔들며 색을 잡아끌었다.
생각이란 게 끼어들 틈도 없었다. 오직 본능만이 나를 움직였다.
좋아서 하다 보면 잘하게 되고, 잘하게 되면 더 좋아진다.
여름을 뜨겁게 만드는 건 한 순간의 불꽃이 아니다. 꺼지지 않고 이어지는 숨결 같은 꾸준함이다. 좋아하는 마음이 한결같든지, 끓어오르는 여름의 열기처럼 오래 가든, 중요한 건 지치지 않고 몸에 새겨가는 일. 거기에 밑줄 쫙, 별표 다섯 개~ 돼지꼬리까지 얹어 필수표시! ‘해야겠다’라는 생각이 올라오기 전에 몸이 반응해 달리고 있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말처럼, 유행을 좇는 일은 결국 오래가지 못한다. 텔레비전도 잘 보지 않고, 가십거리에도 별 관심이 없다. 남들이 뭐 하는지도 잘 모른다. 오히려 여기저기 기웃기웃 흔들리다 보면 안갯속에 갇힌 기분이 든다. 시대에 뒤처질지는 모르나 나는 내 길을 가는 고래이고 싶다.
같은 배에서 태어난 일란성쌍둥이도 서로 다르듯, 사람들을 몇 가지의 유형으로 나눈다는 건 애초에 불가능한 일 아닌가? 그렇기에 나만의 색깔을 아는 일은 중요하다. 그것이 나를 찾아 떠나는 여정에 꼭 필요한 나침반이다. 이 첫 번째 단계에서 우리는 수많은 심리검사들을 해보기도 한다. 모래 속에서 진주 찾기지만… 그럼에도 MBTI에서 INFP 유형을 읽었을 때, 마치 신점이라도 본 듯한 기분이 들었다. 알고 있었던 사실이지만, 그제야 인정했다. 나는 직감과 감정에 몸을 맡기는 사람이라는 걸.
인생 뭐 있어? 해보지도 않고 미련곰으로 남는 것보다는 해보고 후회하는 게 나으니까.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 희미했던 내게 여름의 색을 휙 쏟아부었다.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리는 깃발을 올려다보는 우물 안 개구리가 세상을 향해 뛰어오르기 딱 좋은 계절,
샛노란 속살이 터져 나오는 순간, 온몸을 감싸는 달콤함처럼,
실패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다시 일어나 한걸음 나아가는 것.
넘어지고 무릎이 까져도 괜찮다. 더 큰 흉터는 몸이 아니라 마음에 남는다.
이까짓 거,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게 계획이다. 우리는 99.9%가 운인 세상에 산다.
결과는 운에 맡기고 나는 최선을 다해보는 거다. 망해도 고!
초긍정 에너지로 가득 채운 달콤한 여름의 주문을 외친다.
망고 망고! 망해도 고!
당근과 채찍, 이 두 가지가 지금의 나로 이끌어 준 일등 공신이다. 누군가의 칭찬과 사랑하는 사람들의 눈물이 바로 그것들이다. 부러진 방향키를 고쳐 하나씩 잡아 나가기 시작했다. 사람이 변하면 죽는다고 했던가? 그렇다면 나는 한 번 죽었다. 다음 생을 기약하지 말고, 현생에서 다시 출발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이글거리는 태양이 온몸을 휘감던 날이었다. 개미 한 마리 찾아보기 어려운 한강변. 땀자국은 온몸으로 번졌고 머리칼에서는 땀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턱을 치고 올라오는 숨에도 나는 멈추지 않았다. 열기로 터져버릴 듯한 두 주먹을 오히려 불끈 쥐고 앞으로 앞으로… 달렸다. 뜨거움의 벽을 뛰어넘는 순간, 나의 모든 감각은 깨어났다.
그렇게 운동을 시작했다. 피구 시합할 때면 사각의 라인에 숨어 있던 내가, 그나마 매일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보았다. 목적을 가지고 시간을 정했다. 내 두 다리로 걷고, 내 머리로 생각하고, 내 가슴으로 사랑하다 죽음을 맞이하겠다는 원대한 꿈을 꾸며 독종이 되어보기로 했다.
우유부단한 내게 작별 인사를 고하고…
오빠들을 위해 쐐기풀로 옷을 만들던 그림책 속 공주의 마음으로 나만의 루틴을 만들기 시작했다.
운동, 식습관, 책 읽기, 글쓰기, 캘리그래피, 그림 그리기 등으로 내 하루를 촘촘히 채워 나갔다.
신기한 건 내가 원래 잘하던 것도 있지만, 정반대의 것들도 포함되었다는 점이다.
좋은 줄은 알고 있었지만 흥미가 없었던 것들이 하다 보니 즐거워졌다.
교과서나 과제 때문에 겨우 한두 권 읽던 책들이 이제는 그 어떤 놀잇감보다 큰 즐거움을 준다.
백일장 따윈 생각도 안 하고 좋아하는 그림만 그리고 뛰어놀던 내가, 글 쓰고 다듬어가는 시간을 기다린다.
새까만 밤, 에어컨 실외기 소리가 웅웅 거리며 내 심장을 두드리고 귓가를 맴돈다. 창문을 열자 후텁지근한 공기와 함께 멀리서 풍겨오는 흙냄새, 그리고 매미 소리가 쏟아져 들어왔다. 모든 것들이 새로운 의미로 내게 말을 걸어왔다. 여름밤이 전하는 단어들로 빚어낸 문장들을 다듬었다. 나의 글들은 계절과 함께 하는 교향곡이었다.
좋아서 하는 사람은 절대 이길 수가 없다. 누군가보다 잘하기 위함이 아니다.
지금 이것 하나만은 분명하다. 나는 행복하다. 나 스스로 만들어 가는 시간이 즐겁다.
이 여름의 뜨거움 그 이상의 열기를 내 안에서 만난다.
계절의 끝에서 나는 다시 선다.
한낮의 절정으로 노랑을 만들고,
쏟아지는 파랑으로 나를 그리고,
넘어가는 붉음에 물들어 간다.
달궈진 나는 이제 초록의 숨을 쉰다.
계절의 빛이 나만의 팔레트 위에 번져간다.
색에는 옳고 그름이 없다. 빛에 따라 다르게 번져갈 뿐.
여름은 여전히 다채로운 빛을 뿜어내고,
그 빛은 계절이 지나도 내 안에서 반짝인다.
삶이란 빈 공간, 나의 색을 느끼며 조금씩 채워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