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위 달빛아래, 우리는 서로의 색으로 물든다.
’이런, 식용유가 아슬아슬하더니…‘
평소와 조금 다른 부엌의 온도. 웬만해선 꺼내지 않는 커다란 냄비와 프라이팬들이 인덕션 위를 꽉 채우고 있다. 풀어놓은 계란물과 범벅된 밀가루가 여기저기에 말라붙어, 하얀 싱크대위에 계절을 벗어난 개나리처럼 피어올랐다. 전을 부치며 튀어 오른 기름 방울이 사방으로 흩어져 꽃향기마저 한결 노릇노릇 젖어들었다.
애틋한 4월의 봉오리들을 그려보며 지지고 볶았다. 절반이나 남았던 식용유 통이 어느새 바닥을 드러냈다. 기름 한 방울이 사무치다 봄꽃보다 아련해지다니… 평소라면 한 달도 거뜬히 버틸 텐데, 오늘은 달랐다. 장바구니를 부지런히 챙겨 골목으로 나섰다.
아파트 뒤쪽 비탈골목을 올랐다. 무거운 나뭇가지에 가려진 노랑 원들이 운동화 끝에 걸려 흔들거렸다. 걸음에 손끝의 기름내가 흘러내렸고, 딱 손톱만큼 덜 자란 샛노란 달이 밤의 빛을 모조리 빨아들인 듯 하늘을 가득 채웠다. 명절은 명절이구나, 골목에 번진 달빛이 그러했고, 부엌의 기름통이 텅 빈 것도 그러했다.
꼬신내가 춤을 추고 달큼한 맛을 뒤집어쓴 채 분주히 보낸 오후. 빗금은 그은듯한 가을밤은 묘하게 차분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은근히 따스한 품을 내어주면서.
작은 장터로 분한 마트 앞. 늦은 시간이라 자동차도, 발걸음도 줄어든 길가에는 상차림용 과일과 채소들이 박스째 점거한 채 막바지 색을 내고 있었다. 붉은 사과, 노란 배가 가을빛을 묻혀 반짝였다. 아이 손을 잡고 고깃거리를 고르는 단발머리 엄마. 감꼭지를 유심히 살펴 손바닥에 올려보는 할머니와 그 곁을 함께하는 평생지기, 전 거리를 기웃거리는 갓 짝을 이룬듯한 부부의 입가에서는 수줍은 웃음꽃이 달려 있었다.
내 몫을 계산하고 서둘다 멈췄다. 전광판처럼 밝은 달빛이 내어준 길 위로 사람들은 제각각, 그러나 같은 곳을 향했다. 비슷한 상차림, 소소한 자리. 매년 돌아오지만 매번 다르며, 모두 각자의 이야기를 품은 날이다.
서랍 깊은 곳, 보자기 매듭을 풀던 밤톨 같던 손.
그 손이 이제는 묵직한 장바구니를 든다.
보름달만큼 커다란 프라이팬에서 노릇노릇 구워지던 전 하나 몰래 집어 들다,
엄마의 눈빛에 낙엽처럼 바스락—나는 총총 달아났었다.
그러나, 접혀있던 치맛단을 풀어내던 엄마의 손끝은 어찌나 보드라운 온도를 품었던지…
이제는 같은 기름 냄새를 묻힌 채,
채반 위에 구워진 전들을 포개어 올리고, 나물들도 척척 무쳐낸다.
옆에서 쪼그려 앉아 계란물만 휘휘 젓던 내가,
이제 안주인의 몫을 건네받게 되었다니…
매달 크고 작은 상을 차려 올리던 우리 집은 늘 분주한 잔칫집이었다. 프로 주부, 엄마의 솜씨가 더 도드라지는 날이 바로 추석 같은 명절이었다. 도마 위로 던져진 무덩어리가 또각또각 숨 가쁘게 깍둑 썰리고, 달궈진 커다란 냄비에 고기가 지글지글, 불꽃처럼 튀듯 볶아졌다. 침이 고이고 눈이 절로 커졌다. 커다란 양푼에 잘게 조각난 야채와 다진 고기, 두부가 와르르 쏟아져 들어갔다. 손바닥이 반죽에 박힐 때마다 어깨가 뻐근해왔지만, 그만큼 따듯해질 가족들의 눈빛이 선하게 그려졌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고모들이 남은 야채들을 몽땅 넣고 반죽을 빚으며 “아이고, 또 찢어졌네” 하고 한쪽눈을 찡긋 눈을 감으며 웃었다. 꼬마였던 나는 온 얼굴을 찡긋 모아 따라 웃었다. 그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던 엄마도, 부엌 문턱을 기웃거리던 아빠도 가득 차오른 달처럼 얼굴이 환해졌다. 까치발로 베란다의 소쿠리를 들쳐보던 동생의 등짝에 떨어지는 손바닥이 ‘철썩’하고 떨어질 때면, “저희 왔습니다!”하고 들어오는 손님들의 인사보다 더 큰 소리가 집 안을 울렸다.
지글거리는 기름내가 집안 구석구석 배어들고, 오고 가는 손님들의 이야기가 엮이며 지내는 며칠은 늘 시끌벅적했다 유행가 한 자락에 맞춰 할아버지의 저고리 자락이 들썩였다. 그 안에 숨겨진 사탕을 두고 벌어지는 화투장이 툭툭 부딪히는 소리에 맞춰 터지는 웃음은 해마다 같았지만 항상 달랐다.
매듭도 참 야무지다. 손끝으로 돌돌 밀어보다 결국 엄마를 불렀다. 티브이 속 공주님의 드레스는 못 입어도 내겐 색동저고리가 있었다. “ 그 새 좀 자랐네.” 발목이 덜컥 보이는 치맛자락에 듬성듬성 매여있던 실을 터 다시 입으니 딱 맞았다. 금박으로 멋진 무늬가 숨겨져 있던 보물 같은 한복을 입고 거울 앞으로 쪼르르 달려가 빙그르 두어 바퀴 비쳐보니 난 딱 공주님이었다. 고운 색들이 겹겹이 이어져 있는 색동은 나를 바라보는 어른들의 미소 같았다. 각기 다른 색을 지니고 계셨지만 함께일 때 저고리가 되었고, 다채롭지만 한선으로 꿰어져 어울림이 되었다.
때론 알록달록한 색동은 합일점이 없는 오지랖으로 던져지기도 했다. 지나친 관심이 툭툭 내쳐진 말들, 밥그릇 위에 올라오는 나물들, 끊임없이 이어지는 잔소리가 어린 내 귀를 따갑게 했고, 어른들은 그 안에서 피곤해했다. 지난날의 사랑의 방식은 서툴러 상처가 되기도 했지만 결국은 살갗을 맞대는 나누는 일종의 표현방법이었다. 조심스래 펼쳐진 색동저고리의 소매가 내게 안길 때 그 따스함이란. 오지랖은 순결한 그분의 미소, 그 빛이었다. 색동저고리의 빛은 서로 다름의 합에서 나온다. 차가 아닌 합임을 품을 때 불편한 간섭이 아닌 엄마의 사랑처럼 반짝인다. 서로 다른 빛이 이어진 색동저고리처럼 엮일 때, 우리도 익어간다. 오지랖도, 결국은 사랑의 또 다른 이름일지도 모른다.
관심이 사랑이 되려면 경계가 필요하다. 간섭이 아닌 애정으로 다가가려면 내가 아닌 너의 안에서 시작해야 한다. 비빔밥처럼 덜그럭거리며 뒤섞이는 삶이 당연히 여겨졌던 날은 지났다. 각자의 접시, 그 몫을 지켜주는 적당한 다정함이 간절해지는 요즘. 오지랖의 묘한 외줄 타기는 명절상에 오르락내리락하는 음식들 같기도…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줄 위에 있다. 내 몫의 삶은 혼자만의 것은 아님을. 누군가가 말이 나를 일으켜 세우고, 누군가의 시선이 나를 견뎌주고, 누군가의 지핀 불이 내 물들였다는 것을. 자연스럽다. 흐르듯 익어가는 계절, 붉은 기를 내려놓고 따스해진 노을의 끝에 과실이 맺히듯, 누군가가 있기에 나만의 무늬도 익어간다.
엄마의 손끝에 머물던 알록달록한 내일, 이제는 내가 이어갈 차례다. 내 아이들에게도 그리고 내 곁을 나눌 모든 사람들과 나눠야 할 몫의 마음의 빛이다. 색동처럼 겹겹이 쌓여 우리를 감싸줄 오지랖이 되고, 고요히 지켜내는 사랑의 품앗이가 될 그런.
기름병 하나를 덥석 사들고 들어오는 가을밤, 귀뚜라미 소리는 점점 커진다. 울퉁불퉁 패인 시멘트 길에 의미 없이 떨어져 있는 낙엽들이 내 발에 밟혀 바스락거릴 때, 삶이란 결국 우연이 겹겹이 쌓여 ‘우리’를 만들어 가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혼자 찍는 마침표란 없을 거라며, 함께일 때 더 깊은 곳으로 향할 수 있다고. 벽지 안에 숨겨져 있던 지난 명절의 스민 냄새가 내가 말을 건넨다.
명절의 풍경이 달라졌다. 상다리 휘어지는 제사상은 기억 속에 두고,
우리는 서로의 얼굴이 보이는 테이블에 둘러앉는다.
소박한 그릇에 담긴 된장국과 막 볶아낸 찬들이,
젓가락 오가는 소리에 포근한 웃음이 더해진다.
풍성하지 않아도 옆을 나눈다는 사실이, 우리가 그리는 사랑의 모양이었다.
아이의 깔깔거림과 어른들의 나직한 숨소리 한데 섞여,
대화가 멈춘 순간에 고인 공기마저 넉넉한 숨결을 품었다.
저물녘의 빛은 그렇게 조용히 우리를 덮었다.
열린 창문 사이로 바람이 커튼을 흔들며 나를 스쳐간다.
지나며 이어간다. 서로를 이어주는 거미줄이 되어.
우리는 저마다의 자리에서, 지켜보고 건네며 익어가는 계절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