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동 사람들

801호

by 화몽

어무룩한 어둠이 스리슬쩍 물러갈 즈음, 그녀는 꿈틀거린다. 손가락이 무언가를 가리키듯 침대 위를 기어간다. 침실을 가득 채우고 있는 공기가 제법 무겁다. 두어 장 남은 달력이 이유 없이 펄럭이자 또 한 번 가느다란 그녀의 손가락은 그녀의 몸에 말려들어간 이불의 끝자락을 움켜잡는다. 가늘게 열린 눈꺼풀아래 길게 뻗은 속눈썹밑 눈동자가 굴러가며 그녀는 무언가를 느리게 더듬어간다.


그녀는 늘 이렇게 열어간다. 한번, 두 번, 세 번… 껌벅이는 눈꺼풀의 미세한 진동이 초록빛이 맴도는 빰을 타고 입을 열어 숨을 티어내고, 또 두 번, 세 번, 네 번 그 뒤의 수많은 숨들이 십일월의 밤빛보다 농익어가면 ‘휴~’ 하고 지나간 밤의 미련한 그것만큼 더 늘어져버린 몸짓으로 머리칼을 한 곳으로 모으며 허리를 곧게 하고 아직 남빛이 짙게 남은 오른쪽 엄지발톱을 바닥에 내려놓는다. 마저 다른 발을 바닥을 쓸며 내려 올려놓고 그녀는 벽을 본다. 시침과 분침만 따박따박 흘러가는 시계는 매번 어렵다. 4시? 5시? 깊은 잠이 그녀에게는 숙제다. 그래서인지 그녀의 작은 침대가 달라붙은 한쪽벽은 짙은 회갈색 암막커튼이 깊은 어둠으로 그녀를 힘껏 붙잡고 있다. 5시 24분? 6시 24분? 끔벅거리는 눈 끝에 걸려있는 깊은 새벽을 하얗고 더 기다란 손가락으로 털어낸다. 덜렁거리던 두발에 그제야 힘이 들어간다. 누군가 밀어놓고 가버린 녹슨 그네가 삐걱거리듯 그렇게 흔들리던 그녀의 다리가 스르르 가라앉는다. 801호, 습윤한 새벽이 눌러 담겨있는 그녀의 방바닥 아래, 낮은 곳으로 그림자의 호흡이 묻혀있는 다갈색 머리칼이 사방으로 엉켜 붙어 있는 생의 겉으로 더. 더더 바닥으로 흘러내린다.


몸에 잠겨있는 기억이다. 그녀의 잠은 언제나 불편하다. 살아있다고 여겨지는 흔적은 없다. 그럼에도 까끌거리는 숨결은 그녀를 어렵게 한다. 반복되는 일과의 뒤바뀜, 숱하게 오고 가는 삶과 죽음, 울분과 고통 기다림과 기도 그런 것들이 켜켜이 쌓이는 동안 그녀는 빠르게 닳아버렸다. 뱉어내는 숨에 삐그덕거리는 녹내가 묻어온다. 계절이 넘어가는 아침은 말이 없다. 그녀도 말이 없다. 말없이 풀어진 존재에게 남은 건 정적뿐이다. 굳어진 시간을 풀어주는 것. 그녀에게 지금 필요한 건 그것뿐이다. 사치스러운 뜨거움.


‘엄마, 나 돈이 조금 필요해. 이번 달 아르바이트비가 좀 늦어져서, 받으면 바로 갚을게.’


새벽에 온 딸아이의 문자가 나를 일으킨다. 며칠만인가? 아니, 그 너머인가? 아파트 입구 건너 마트의 행사문자가 딸아이의 키를 훌쩍 넘겨 포개질즈음인가?


‘흐흐, 흣’


생각해 보니 그녀는 딸아이가 하는 알바가 무엇인지도 모른다. 씁쓸한 맛조차 삼킬 자격이 있는 엄마인가라는 생각이 그녀를 침대의 사각에 붙여놓았다. 딸아이에게 용돈을 이체했다. 잔액을 눈앞을 가린다.


‘흣…’


입 끝에 말라붙은 건 웃음인지, 눈가에 눌린 자국은 눈물인지 그녀 본인도 애매해 무어라 정의 내리기 버거운 아침이었다. 암막커튼 틈으로 새어드는 첫 빛이 아침이라고 그녀에게 입을 틔었다. 여전히 말이 없는 그녀는 그만 일어나야 했다.


웅—-우웅. 슥…

띠링링.

촤르르르. 띵, 두툼한 머그잔으로 80도의 뜨거움이 번진다. 목을 넘기는 숨이 그리 뜨거워지지 않아 두 손을 모아 잔을 움켜 잡았다. 씁쓸함을 목젖 끝에 남긴 채 왼손 검지손가락을 돌려 손잡이를 들고 천천히 거실을 건너 밖으로 눈을 돌렸다.


손끝에 감겨오는 경계가 흐려진다. 급하게 번져가는 차가움에 몸마저 부르르 떨린다. 보이는 것들은 왼손에 걸려있는 머그잔의 그 뜨거움인데 그녀를 덮치는 십일월은, 만만치 않았다. 베란다의 창이 딱 검지손가락의 길이만큼 열려있다. 항상 정확하다. 입에 머그컵을 끌어와 한 모금 마시고 차가운 바닥에 내려놓는다. 여기저기 벗겨져 시멘트 자국이 물고 뜯어 바래버린 하얀 벽에 툭 고개를 내밀고 있는 수전을 돌리자 물이 저기 여기로 튕겨진다. 차갑다. 놀란 그녀는 급히 돌려 막고 푸른색 물주전자 안에 짧게 잘린 고무관과 검지손가락을 쑤셔 넣고 다시 물길을 연다. 검지손가락이 차오르자 급히 닫고 해를 등진 허리를 올려 몸을 돌린다. 6시 51분.


‘하나, 둘, 셋, 넷… 240224,240302,240515,240529,240708… 안녕. 다들 잘 잤니?’


펼쳐지듯 던져져 있고 던져져 있지만 모여있는 작고 더 작은 화분들이 어깨동무하듯 엉겨 붙어 막 오른 햇살을 잡아당기고 있다. 열린 문틈으로 밀려들어오는 바람이 그것들을 더욱 하나로 스며들게 한다.


‘너는 어제 힘들었구나. 오늘따라 잎들이 축 쳐져 보이네. 물을 넉넉히 줄게. 늦어진 가을을 맞이하기 어려웠나 봐.’

‘240224, 손끝으로 너의 줄기를 따라올라 잎들을 살펴보니, 이리도 잘 살아주는구나. 잎맥을 따라 번지는 초록이 짙어지네.’

‘쑥쑥 자라네. 우리 240708. 줄기에 힘이 가득해. 이쁘다. 앞으로도 쭉 이렇게 하는 거야.’

‘어이쿠, 겉 흙이 다 갈라져버렸네. 니 자리에 유독 해가 강하게 든 거야? 말을 하지. 앞으로 조금 꺼내줘야겠다. 이제 나아질 거야.’

‘250125, 역시 내가 요 며칠 네게 신경을 바짝 쓴 보람이 있다. 누렇게 흐트러졌던 잎끝이 팽팽해졌어. 넌 혼자가 아니야. 잘 알고 있지? 영양제 하나 더 놓아줄게. 힘내자. 나와…’

‘바람이 무심하게 불어오네. 슬슬 계절 맞이를 해야 할까? 그래도 너희들은 함께니까, 괜찮을 거야. 이번 겨울도 잘 지나갈 수 있어.’

’ 손끝으로 흙을 비벼보니 물이 이미 말랐어. 250306. 목이 마르니? 좀 더 넉넉히 물을 주어야지.‘

‘잎을 만져보니 말라가네. 물은 넉넉한 것 같은데 너는 물을 자주 줄 수가 없어. 블라인드를 조금 내래 줄까? 아니면 해가 기울어진 쪽으로 옮겨줄까? 어느 쪽이 250717 너를 평온하게 할 수 있을지 고민해 보자.’

‘생이다해 떨어진 잎들을 정리해 줄게. 숨 없이 붙어있는 잎들도 떼어줄게. 옆자리에 있는 다육이랑 친하게 지내. 튼튼한 친구니 너도 잘 자랄 수 있어. 너희들은 함께야.‘

‘여기 자리가 비는데 조만간 화분을 하나 더 데리고 올까? 아니지. 지금 있는 것들이. 자 보자… 21개니까. 봄이 오면 생각을 해볼까?’


슬리퍼 끌리는 짧은소리만 반복되는 그녀가 베란다 유리에 드리운다. 허리를 펴고 밖을 본다. 고개를 밀어 아래를 본다. 떨궈진 낙엽들이 바람의 급류를 타고 주차장의 흰 선들 사이를 넘나들며 천천히 날아오르다 미끄러지듯 녹아내린다. 타오르는 바람을 따라 솟아오르는 검붉어가는 몇 장의 낙엽들이 밑바닥에서부터 불타오르며 솟아오른다. 그녀에게로 단박에 뛰어오른다. 철재 난간에 묶인 그녀의 검지손가락을 붉은 손바닥이 잡았다.

스르륵 - 붉은 손바닥은

그녀의 손끝을

잡았다

그러다, 천천히


프드득.

‘어어어어… 안되는데…‘

그녀가 급히 다가갔지만 다가온 손은 아파트의 꺾어진 그늘을 타고 사그라들었다.

그녀는 뒤로 나아간다.

그녀는 멀리 본채 말을 닫는다.

그녀는 이제 시선을 내린다.

그녀 앞에 흩어진 채 묶인 작고 더 작은 화분들을 흩어본다.

여기에서 저기로.

저쪽에서 이쪽을 본다.

발아래에서 손끝으로,

안쪽. 바깥쪽…

그녀의 삼각형은 뭉개져가고,

오고 가고, 가고 당기는 시선은 이미 힘을 버렸다.

그러다 빈자리에 멈춘다.


라벨에 화분의 날짜대신, ‘오늘’이라는 마킹이 물자국을 따란 번져있는 울퉁불퉁한 모습의 흙만 단단히 눌려있는 화분 앞에 눈길이 서있다.


’……‘


’ 오늘아. 오늘아.‘

’ 우리 오늘아, 널 언제쯤 만날 수 있을까?‘

푸른 주둥이 끝에 더 짙은 물방울이 맺혀간다. 뚝뚝. 뚝…

그녀의 대화도 그 끝에 다가간다. 그녀는 손끝으로 오늘이의 흙을 눌러보며 다른 손을 끌어온다. 베란다 유리창에 끝으로 오른 해가 빛을 토해낸다. 종착지가 모호한 빛들이 부서지며 날아가버린다.


‘띠링‘

작은 화분들이 내어놓은 물길이 그녀의 그림자밑으로 번져 흐른다. 물때가 끼어 횟빛이 더 그슬린 슬리퍼 위를 튕기던 엄지발가락에 선홍색이 차오른다. 핸드폰을 꺼내는 그녀의 오른발이 화분들 옆에 겹쳐있던 빈 화분을 넘어뜨린다. 덩어리에서 떨어진 흙색 플라스틱 화분이 바닥을 긁으며 구른다. 덜그럭거리는 화분을 발끝으로 잡는다. 멈춰 선 화분이 열린 창 틈으로 밀려드는 미열의 바람에 흙조각들을 날린다. 그녀의 머리칼마저 흩고 서둘러 사라져 버린다.


얼굴을 비추자 빛이 열린 핸드폰에는 알림이 와있다. 7시.

‘브런치. [연재] ’그럼에도, 당신. 11월_기다림’의 1화:<80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