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을 마주함

똑똑똑

by 화몽

회색 벽에 기대서 있는 초록 빗자루가 바람을 쓸어 모은다. 가만히 고요히 길쭉한 손잡이의 끝은 울긋불긋한 벽돌에 붙어 있지만, 빗자루가 먼지를 가져와 주변에 흘린다. 길가 슈퍼의 지난달 광고지, 구멍 난 회색 장갑, 청소기의 찌꺼기, 구겨지고 탁해진 휴지들, 삐쩍 마른 지난 계절의 나뭇잎들이 구멍이 숭숭 난 채로 이리저리 찢겨 구겨져 있다. 가을이 던지고 가버린 조각들이 눌러져 있는 분홍색 쓰레기봉투는 활짝 열려 있다. 초록 빗자루가 으스러지고 깨져버린 빌라의 구석진 걸음들을 쓸어 담은 봉투는 인두에 눌려 타버린 일기장 냄새가 난다. 앞뒤로 조금씩 틀어진 채 차곡차곡 쌓아 올린 진회색 벽돌 12개는 이미 여러 번 쓰였는지 그 모서리들이 제각각이다. 회색 시멘트가 발라진 벽은 군데군데가 떨어져 붉은 속살이 그대로 흘러나와 있다.


당연한 것들이 지루해지는 빛, 오후의 연기가 가진 채도가 그렇다. 색감은 잊히고 흑과 백이 엉키어 내는 호흡으로 채워지는 시간의 여기는 그래서 반걸음은 느리게 간다. 울퉁불퉁하다 전후좌우로 흔들린 흔적 사이에 나뭇잎들이 흘러들어 간다. 틈, 솟아나 운다. 회색의 눈물 위로 이끼들이 낮게 깔린다. 틈은 턱을 만난다. 회색 벽에 흘러내린 녹물은 틈 사이를 메우고 턱에 걸린다. 말끔했을 대리석 계단은 모서리들이 깨져 있다. 생각 없이 뱉은 껌이 들어앉은 사이로 반쪽만 열린 반투명 샷시문이 올라서 있다. 거미줄 자국을 쓱 하고 지워낸 위에 반쯤 뜯겨 뒤집어진 전단지가 위태롭게 붙어 있다. 모눈종이를 닮은 반투명 유리 뒤로 겹쳐져 쓰러져 있거나 대충 던져 서 있는 자전거들이 모여 있다. 누가 타는지 언제 끄는지 어디로 가는지 반은 계단 아래로 향해 있는 바퀴들은 오랫동안 멈춰 있다. 간다. 나아간다. 머물다. 아아진다. 기다리고 넘어간다. 당연한 것이 부끄러워지는 장면들이 우리 삶을 가득 채운다. 심장의 주인을 찾아 붉은 손잡이를 잡고 늙어버린 계단을 턱 하고 두드린다. 턱들 위에 버티는 나는 반투명 유리창에 붙어 있던 그 전단지다. 이상향을 잃어가는 나는 현재진행형이다. 낮은 계단의 틈에 턱 하고 걸린다. 느슨해진 발은 어디로 가는지를 잊고 턱에 걸터앉는다. 아래와 위 그 중간은 사라진 계단 하나 둘 그리고 셋 사이에 밟힌 무채색의 시간들은 천장에 붙어 있는 형광등에서 뿌려진 땀이다.


101호와 102호의 간격은 한 뼘, 두 뼘, 네 뼘 반이다. 이만큼의 간극이 두 문의 무게 위에 있다. 초인종도 누워버린 무게 위로 두드려 본다.

‘똑똑똑…’


경계와 사이의 틈 속으로 내 주먹이 빨려 들어간다. 틈에 낀 나는 누군가의 집 너머를 본다. 단단한 청회색의 낡아빠진 문은 지독하게 맑다. 서늘한 속살이 물기 위로 떠오른다. 알고 있지만 알 수 없는 흔적들은 사라지지만 문과 그 사이의 틈에 불완전한 하루하루로 끼어 있다. 여전스레 물려 있는 나는 마음을 꺼낸다. 후 하고 길게 날숨을 뿌리고는 주먹을 쥔다. 심장 안에 박혀 있는 주인을 부른다. 영원은 이 정도의 무게로 그 어느 하늘로도 날아오르지 못한다. 그럼에 오늘은 덩어리가 된다. 생목 안에 걸려 있는 응어리를 끌어올려 물어본다.


‘똑똑똑…’

‘문틈 건너에 있는 누군가는 나를 보겠지. 멈춰 있는 걸음은 가라앉아, 틈에 걸려 있는 것뿐이야.’


하나의 걸음이 넘어갈 너머가 여기라면, 나는 묶여 있다. 갇혀 있다. 찢긴 전단지 한 장의 두께만큼의 턱에 끼여 있다. 무채색의 눈동자에 비춰질 무지개는 그림자의 뒤편으로 펼쳐진다. 이를 깨물고 고개를 들어.


‘똑똑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