틈과 턱, 턱과 틈사이가 이어짐
나답다…
꾸다 만 꿈은 가슴의 틈에서 마저 잠을 청한다. 나다워지는 시간은 이미 마침표를 찍는다. 이리저리 굴리듯 돌아가는 시곗바늘은 한 발 한 발 쌓여간다. 그렇게 생명은 꿈틀거린다. 슬며시 돌려 앉은 나는 나다.
꺾인 하루의 단면이 하얗게 반짝인다. 흐르는 빛을 따르는 살아남는 사람. 너인가? 나던가? 내밀어지는 숨이 보여주는 건 이번 한 해의 노래다. 다시 크게 반짝인다. 눈이 부시다. 시리도록 부시다는 촌스러운 말 외에는 딱히 표현할 말이 없다. 말과 날은 이렇게 겹치면서 면면으로 등을 맞대고 있다. 물기를 머금은 오후는 십이월의 윤이다. 맑은 겨울의 구름은 침묵 앞에서 무거워진다. 일렁이는 해의 긴 선들이 내 어깨를 찌른다. 창틀에 걸린 기운이 너머로 들어오지 못한 채 꺾여있다. 틀의 틈새에 웅크리고 있는 너는 시간이 잃은 목소리다. 들리지 않는 울임이다.
등에 지고 가는 건 뭐지? 바다 먼지가 말라붙은 거북이의 등껍질은 더 이상 무겁지 않다. 푸른 파도가 밀고 오는 구름을 따라나선다. 멀리, 오늘의 끝에 붙어있을 내일의 처음으로 나간다.
‘그땐 그랬어. 반짝거렸지.’
‘그랬지? ’
‘응.’
건조한 계절은 나를 더 메마르게 한다. 발뒤꿈치가 그렇다. 도톰한 회색 양말을 종아리까지 당겨 올리며 중얼거리는 나는 일어난다. 발바닥이 쳐내 깊어진 회색 코트를 걸치고 검은색 운동화에 발을 들이밀었다.
스치듯 면면이 닿은 이면에는 흔들리는 단면에 비친 내가 있다. 세로 가로, 종과 횡으로 나눠진 경계에는 턱이 있다. ‘띠리릭‘ 소리에 밀려들어오는 문턱 이면의 세상이 있다. 맞으러 나는 간다.
눈이 내리는 풍경위로 비를 뿌리는 구름이 지나간다. 맑은 하늘은 왠지 내 것이 아닌 듯, 비바람만 휘휘 돈다. 그저 계절 탓이라 덮어두기엔 문턱이 너무 높다. 턱에 걸린 나는 집을 나서는 것마저 휘휘 젖는다.
‘살아있나? 숨을 쉬네. 꿈틀거린다. 그렇지 않으면 내 발등을 잡고 있을 수는 없잖아…‘
내 말은 내게 숨는다. 뱉어지기 전에 이미 겁먹고 숨는다.
휴… 연기도 불길도 없는 용암의 틈을 넘어서기 위해 난, 얼굴을 감싼다. 웅크린 채 넘어선 문틈 밖은 또 다른 수많은 가지가지의 턱과 틈이 엮이며 짜인 세상이라는 커튼을 걷어본다. 무겁게 타오르는 너른 천조각을 들춰낸 나는 얼음 위에 던져진 성냥불이다. 사그라지기 전에 서둘러 나로 번진다. 붉어진 손끝이 차갑게 빛나는 버튼을 누른다.
2
3
4
5
6
7
8
9…
띵…
밑바닥에서 올라온 푸른빛이 나를 환히 밝힌다. 두꺼운 얼음판 아래 있던 어둠은 이래서 부끄럽다. 빛을 바라보는 내 안에서 다시 울컥하는 두려움이 두 발을 묶는다. 엘리베이터 안쪽에 이미 나는 서있다. 두려워 머리칼이 바짝 서이는 나는 틈 밖에, 저 쪽에 있는 나는 이런 나를 보며 웃는다. 가볍게 벌어진 입술 사이로 튀어 오른 소리가 나를 부른다.
‘넘어와.’
넘는다. 나는 문틈을, 엘리베이터와 허공의 턱을 이어 짓는다. 산다는 것은 틈의 연속이다. 턱의 뒤틀림이다. 각각의 시선이 낳은 균열이 세상이고 우리다. 사이와 사이사이에서 어른거리는 빛이 나를 부른다.
1
띵…
고개가 열린다. 처억하고 내밀어진 오른발은 왼발보다 항상 먼저다. 쉽게 던져진 종이박스들에 남겨진 이름은 또 다른 너다. 작고 크고 길고 좁은 모래색의 종이박스들에 칭칭 감긴 테이프들은 그들의 이름을 그리고 너를 읽는다. 내게 보인 너는 흔들린다. 앞 뒤로 흔들리는 나는 참을 수 없다. 흐릿한 웃음을 뒤로 던지고 속도롤 높인다. 우편함을 지나 몇 개의 계단을 내려가 우툴두툴한 아스팔트에 닿는다. 이리저리 굴러다니는 낙엽, 휴지조각, 먼지, 버려진 순간들을 타고 흐른다. 노란 방지턱을 올라섰다 내려앉는다. 쿵하고 숨도 바닥을 친다. 뜨겁게 내민 숨은 차가운 눈빛들을 피한다. 인도와 차도사이의 회색 턱아래에는 밤이 붙어있다. 배수로로 흘러 들어가는 내 그림자를 밟고 지나는 셀 수없는 발들. 굴러가는 바퀴들의 자국들이 뒷목을 타고 올라온다. 저 멀리 버스 정류장에는 내게 보이기를 기다리는 그림자들이 있다. 길어지는 그림자들은 초록색 버스에 오른다. 이어 호는 파란색 버스를 보며 나 역시 턱을 오른다. 오른 턱에는 큰 반짝임이 있다. 나와 너머를 구별 짓게 하는 투명한 빗금의 끝에 누군가가 또 다른 너머를 무심히 본다.
‘오뎅국물인가?’
점을 잃은 그의 눈은 나를 피한채 흐르는 사람들을 보고 또 본다. 일회용 젓가락의 포장지를 뜯던 그의 손은 멈추고 잃어버린 점을 가져와 주변을 살핀다.
오늘의 나는 얼마나 많은 틈을 겪었나? 이 문턱 앞의 나는 망설이다 시선을 편의점 안으로 던져 넣는다. 서늘해진 손으로 유리문 손잡이를 힘껏 잡아 민다. 넘어왔다. 나는 결국 이곳으로 온 나다. 모두의 사연을 지나온 나다. 세상을 겪어갈 나다.
“어서 오세요. 찾으시는 게 있으실까요?”
’ 안녕… 안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