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호, 기척
낌새가 있다. 꽉 찬 조짐이 싸하게 웃는다.
네 기침의 파편들로 가득 차 있다. 온통온통, 쪼개진 자취가 사이사이로 가라앉는다.
내 폐의 꽈리들은 네가 남긴 잔향들로 그득 차, 오른다.
지워져 간 너의 존재가 남아있다. 여기저기, 저기 여기. 진심 말장난이네.
뒤집어 내민 내 숨에, 내 머리칼에 찔러놓은 작은 나비 삔에, 내 점퍼의 접힌 소매 끝에, 내 립글로스의 뚜껑에, 내 눈가가 그려놓은 웃음에, 내 입가에 맺힌 침묵에, 내 모든것에…
그리고 온 내, 그 안에서 흐느끼네. 기침하는 건 너인데. 기척을 느낀 건 나이고. 저 멀리 섬 하나에서 시작한 진동이 내 앞까지 전해져 네 어깨를 붙들고 좌 삼삼 우 삼삼으로 흔들거리게 하는지.
멈추지 않아. 검은 가래가 끓어 올라 툭하고 네 혀끝을 태워.
’큭큭크윽 컥.‘
네 기침은 계속 그림을 그려. 그려낸 것은 문자가 되어 글을 쓰고, 난 노래를 불러. 기침은 지치지 않아. 너만 기진맥진, 동공은 찢기듯 출렁이지. 기침은 벽을 타고 올라가. 누렇게 변한 담쟁이덩굴을 따라간다. 벽지에 놓인 담쟁이는 네 기침을 머금어 색을 잃어가. 턱을 놓고 축 처지고, 기침은 커지고 아침은 그렇게 자라나.
그러지 마. 그러지 말아 줘.
매일의 아침은 같은 아침이 되고, 먼지떨이처럼 털털 털리는 내 머리칼은 이 빛에 그러지 말라고 두 눈을 덮어. 어제도 그 전날도 또 그 전의 전의 전날도 아침이었다. 내게 오다 만 빛의 줄기. 다가오다 뒷걸음치는 기척이다.
입에 물고 있는 아이스크림처럼 배배 꼬이는 목소리가 녹아 흐른다. 아이스크림 막대를 타고 내 두 번째 손가락의 첫마디를 물어버린다.
‘아파…’
끈적거린다거나 차갑다. 뭐, 이런 단어들이 맞는 표현 아닌가? 아프다니. 네가 남기고 가버린 기침이 뜨겁게 아이스크림을 달군다. 아, 그렇다. 나는 아픈 거다.
‘큭큭크윽 컥…억. 큭’
뭐라고 이게, 온몸에 번져있는 네 흔적에 난 들썩인다. 엄지발가락 구석에서부터 끓어오른 기침을 그윽하고 내놓는다. 언제더라? 엄마 몰래 찬장 아래를 열어 투명한 유리병 속에 곱게 갈려있던 미숫가루를 입안에 탈탈 털어놓고 급히 마신 물에 뿜어버린 가루처럼 내 앞에서 터진다. 네 기침이 콩이고 쌀이고 보리고 뭐, 그렇다. 온 집안에 가루다. 보이지도 않는 가루. 엄마가 알면 그때 떨어진 손바닥보다 매서운 것이 내게 올지 모른다. 문제는 가루는 보이지 않는다. 이렇게 온 집안에 가루. 가루가루… 들인데.
“띵동”
“띵… 똥, 띵동…”
……
,
‘ 이 아침에 누구지? 택배 시킨 것도 없는데. 엄마가 뭐 시키셨나?
마룻바닥으로 축 끌리는 내 두 발을 뒤에 앞으로 저어가며 회색의 철문 앞으로 간다. 택배란 툭, 던지고 가기 마련인데. 한 번도 아니고 몇 번이나 집 안을 뒤 젖는 것으로 봐선, 뭐. 나가봐야지라고 한다.
“ 띠리링, 처억”
’ 뭐야…. 에잇.‘
손바닥으로 가려질 만한 아이스박스 하나. 빠른 배송 부탁드린다… 라, 가나다라마바사아.. 자타.. 카하.. 뭐더라.
’큭큭커억…. 콜록콜록….‘현관문 밖에서 호시탐탐 나를 노리던 건 택배가 아니다. 냉기다. 1월의 그 척척함. 무엇을 알고 싶은 거냐? 101호의 어디를 탐색하려는 건지, 의도가 욕심이다. 입술을 질끈 감는다. 이 기침은 날 노린 냉기에 덜컥당한다. 잠시 잠잠하던 그것이 쉬지 않는다. 뜬 눈을 올려다본다. 베란다를 넘어간다. 우리 동에 내려앉은 11시 45분의 그림자는 거실을 삼킨다. 1월이라 그런 거다. 기침도, 이 기침을 대신하겠다던 그도. 새해의 1월이라 새로워진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오른다. 그렇다면 나는 이별이 아닌 저 별로 새별로 가는 거지. 숨이 조여 오는 게 아닌 트이는 거라고. 짙은 어둠이 아닌 곁에 어둠을 두는.
덜컥하고 닫힌 문안으로 재빠르게 나를 따라 들어온 건 하나가 더 있다. 몇 호지? 이 시간에 다들 배를 움켜잡을 지금 얼큰한 김치찌개 냄새. 기침이 몽롱하게 만들어. 나를. 그래서 배고픈지도 모르고 하루가 이만큼 지나친 것도 놓치고, 너를 또 말하고, 그러는 중이네.
기꺼이 간다. 짧아지는 그림자의 끝을 밟으며 갈 거다. 밝음에 가까이, 이 기침이 잦아들면… 우리 집은 1층이다. 101호. 럭키비키 하네. 나는 가면 되지.
뭐, 첫술은 가볍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