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식탁
그럼에도 난, 그렇기에 난, 그래서 난, 수없이 연다. 귀를.
휘청이는 음색을 따라 걷는다. 유행처럼 말하는 다정, 늘 그렇게 나는 입을 열어 다정하게 듣는다. 불안한 바람은 초조한 달 끝에서 붉게 나를 찌른다. 바늘을 이어가다 나는 찔린다. 서걱거리는 손가락은 딸각거리는 발걸음이 되고 자그마한 소동을 따라, 그렇지. 따라 걷는다. 상냥한 나는 다정하게 나에게 눈길을 주고 차분히 걸어. 걷는다.
그럼에도 난, 그렇기에 난, 그래서 난, 따스하게 걷는다.
이 방에서 빼꼼히 내다본다. 문고리를 두드리고 문지방을 내려다보며 흘려버린 나날을 주워 주먹 안에 꼭 담아. 손을 닫고 문을 열어 걷는다. 두드리는 바람은 이미 멀어져 가고 나는. 딱 1인분만큼의 소야곡을 흘려놓고 그렇게 간다. 탁탁, 탁 하나, 둘, 셋, 타타 탁 흘려놓은 1인분은 나무 향을 베어 물고 칼날 아래로 스며든다. 딱 1인분의 소야곡. 고요함은 쓸려가고 쓸쓸한 보풀들이 엉켜있는 앞치마를 목뒤로 넘겨 묶는다. 흩어진 머리를 쓸어 모아 한데 묶는다. 흩어진 것들은 늘 그렇다.
그럼에도 난, 그렇기에 난, 그래서 난, 준비한다.
펼쳐지는 햇살은 커다란 냄비에서 원을 그리며 녹아드는 소면을 닮았다. 거실의 창가에 매달려 나는 흘낏 보는 햇의 장난스러운 눈동자는 기름 위에서 봉긋하게 익어가는 계란 노른자 같다. 살에 등을 맞대고 싱크대 앞에 선다. 햇은 무뎌진 어깨에 올라앉아 너머를 밝힌다. 촤르륵 연다. 물살을 열고 한 손을 담는다. 햇살을 담고 다른 손을 마저 물살에 맡긴다. 살림을 산다. 주방을 연다. 작은 의식이다. 유난히 시린 아침의 온도를 올리는 수수한 기도다. 소소한 기척이 운다. 낯익은 소음들이 나직이 칭얼거리는 이곳은, 이곳에, 이곳을 나는 마주한다.
그렇기에 난.
나는 나를 노래한다. 손가락 마디가 살랑인다. 팔랑이는 손목을 따라 들썩이는 은빛 날은 뒤집힌 초승달 같다. 옅은 꽃망울이 낯에 스며들면 나는 나를 노래한다. 1인분은 어딘지 모르게 내 것은 아니다. 꼬르륵거리는 뱃소리는 영차하고 일어선다. 노를 젓듯 잎새들을 흔들어 씻는다. 콩나물도 흔들어 채반 위에 걸친다. 별것 아닌 달 것의 순간이 모여 보글거리며 끓어오른다. 투명한 한 꼬집을 보글보글 올라오는 거품 속에 던진다. 한숨 내려앉은 한 모금을 삼키며 찬물에 헹궈 볼에 넣고 소금, 다진 마늘, 깨를 솔솔 올려 살살 달랜다. 조물조물 참, 가슴을 둥글게 안아주는 단어다. 조물조물 무치고 조물조물 그녀의 시간을 주무른다. 1인분은 흐릿한 기억을 잘라낸다. 1인분을 더해 그녀의 기억까지 조물거린다.
그래서 난, 그녀에게 기운다.
그녀의 자국, 그녀의 온도, 그녀의 향기 그런 그녀의 순간에 기울고 귀 기울인다. 마음은 가고 내 손은 온다. 올라가는 온도가 나를 이곳에 가두고 울컥하는 온기가 국물을 데운다. 그래 그녀는 콩나물무침을 좋아했어. 초라하고 또 볼품없는 대가리가 툭 꺾인 슴슴한 콩나물무침 말이다. 내게는 말라붙은 몸뚱이로 만져진 그것들이 그녀에게는 젖가슴을 빨고 있는 내 모습 같았나? 바싹 볶아 향이 풋풋한 하얀 통깨들이 내려앉은 새하얀 하이얀 새, 하나. 한 마리가 날다 내린 뒤 뒹굴거린 그녀의 입꼬리가 흰옷을 입고 훠이훠이 날아간다. 그래서,
그렇기에 나는 뽀얗게 올라오는 흰쌀밥을 소복이 담아 올린다. 쭉 뻗은 젓가락 사이에 얽힌 콩나물 대가리를 손바닥 접시에 올린다. 달큼하게 끓어오른 멀건 된장국을 옴폭한 국그릇에 담는다. 흰 대가 훤히 비치는 김치를 송송 썰어 담고, 그녀를 마주한다.
마주한 그녀는 고개를 들지 못한다. 쏟아 흐르는 눈빛을 내 두 손으로 받는다. 혹여나 그녀가 애정하던 콩나물의 슴슴함이 무뎌질까. 봐, 진심이었던 그녀는 흐려져 간다. 스려저간다. 미끄러진다. 내게서 말이지. 똑똑하고 두드려보는 내게 뚝 뚝뚝 떨어진다. 그녀는 그럼에도 내게 기척을 두고 멀어져 간다. 식어가는 된장국의 꼬릿한 망울이 된다.
내게는 늘 말줄임표로 찍히던 그녀는 이제 마침표가 된다. 전하지 못한 말들이 맴돌아 진한 국물이 한편 뜨끈하게 생각나는 일월의 아침, 나란히 서 있는 창가의 햇살들이 느슨한 오늘의 나를 일으켜 세운다. 네 맛도 내 맛도 아닌 게 우리네의 맛이라던 그녀의 목소리가 새 날의 살을 타고 내게 다가온다. 매 날 만나게 될 그녀는 이제 무형의 존재로 그렇게 내 안에만 존재한다. 그럼에도 이렇게 기척을 남기며 수줍음에 어깨를 마주할 그녀,
그래서 난, 그럼에도 그녀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