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의 기척
나는 빛과 어둠의 사이에서 그것들이 던져놓은 그림자를 걸치고 있다.
나는 숨과 결 사이에서 뽀얗게 흐트러져간다.
나는 너와 너 사이에서 번져가는 손때다.
너와 너는 나를 사이에 두고 그렇게, 그럼에도, 그렇기에 나는…
다가가다 흐려지고 그리워하다 스르륵 스며들며 너와 너는 네가 되어간다.
우리라는 단어는 참 동그랗다.
네가 내게 다가와 그렇게 그리고 또 그리워하던 그 동그라미들처럼 해맑다.
너와 너, 그리고 나. 우리라는 관계는 물리적 셈과는 다른 규칙으로 동그랗게 커져가다가 지워져가기도 한다. 그렇게, 우리는 세상에 던져진 자그마한 회색 돌멩이다. 이리저리 굴러다닌다. 던져진 너와 너는 서로의 경계를 맞춰가며 너의 몸을 그려나간다. 그려진 몸은 참 동그랗다.
동그란 회색 돌멩이는 여기저기를 견뎌내며 중심으로 손발을 모은다. 그렇게 동그래지고 그렇게 단단해지고 그렇게 부드러워지며 그렇게 투명해진다. 동이 오르는 한점, 가로로 흩어지고 세로로 잠잠해진다. 사지는 셀 수 없는 수포의 점들로 채워져 있다. 바로 코 앞, 차마 건넬 수 없는 그 점에도 너와 너는 맞춰진 서로로 등을 마주한다. 왜 너와 너는 빛으로 마주하지 못하고 내가 건넨 그림자로 겹쳐지는지, 그럼에도 너와 너는 나를 사이에 두고 그린다. 그리고 또 그린다. 회색의 돌멩이가 맑아지고 더 맑아진다. 회색의 돌멩이가 투명해지고 더 투명해진다. 그렇게 투명해진 우리는 내가 되어 등을 마주한 너와 너를 비춘다.
등을 마주한 너와 너, 서로의 그림자 위에 포개져 우리가 되어있는 너와 너.
너 그리고 너, 곱게 채쳐진 밀가루가 횡과 종으로 엉키어 내려앉은 무명천에 폭 들어 안긴 너. 그런 너를 기다란 눈으로 내려 안는 또 다른 너. 너와 너의 키재기가 오르락내리락하는 초분시각을 바라보던 나. 나는 시시각각 흐르다 여미고 내려오다 들어 오르는 너와 너의 재잘거림을 결결이 햇살에 흩날려본다. 내 호흡에 서서히 올라타는 너와 너의 바람은 바램이 되어 내 허리춤을 스치다 공기 중으로 날아오른다.
나는 너와 너를 비춰내는 다리가 되어 우리의 목소리를 세상에 던져낸다.
나를 잡는 너와 너의 손끝에서 나는 내 의미를 읽는다.
작디작은 처음은, 그 무엇도 아닌 한 톨의 쌀알이다. 입안에서 돌돌 거리던 쌀알은 말이 되어 속삭인다. 너에게 또 너와 너에게 그러다 문득.
너와 너는 나를 본다. 나를 느낀다. 나를 안고 나를 밀어낸다.
나는 너와 너의 벽이 되다가 드르륵 열리며 기회가 된다. 나를 넘나들며 세상을 향하는 너와 너는 내게 진한 된장국 한 수저를 넘긴다. 꿀꺽. 아, 수백수천 번을 삼켰지만 나는 이 맛을 모르고 있다. 그렇게 되어가는 기분을 삼킨다.
이런 식이다. 모르던 나를 너와 너를 통해 겪어낸다.
너와 너, 그렇지. 그래, 내게 남겨진 너와 너의 손자국이 나다.
그늘진 시내에 멍울이 번져가듯 쌓여간 시간의 테가 물결을 남긴다. 하나의 물결이 다음 물결에게 기댄다. 귀를 기울이면 가까이 온다. 결들이 서로 공명하는 떨림이 단어를 고른다. 선택된 것들이 문장이 만들어 내는 너와 너의 일기다. 너와 너의 돌려 쓰는 일기는 마지막 장에서 새 신을 신는다. 꽉 묶인 신발끈을 다시 조여주는 너는 너의 또 다른 너에게 한쪽 눈을 찡긋한다.
너는 본 건가?
못 본 건가?
본거지?
그런 거지?
나는 알 수가 없어 너와 너에게 묻는다. 설명할 수 없는 향기를 그리며 입을 열어 세상에 나를 건네본다. 그런 내게 너는 남은 한쪽 눈을 마저 감는다. 떨어지는 너의 손끝은 마저 다물지 못한 채 나를 본다.
두 눈을 감고 본다.
그리고 너는 두 손을 안고 내게 온다. 이제 너 만의 세계를 나와 함께 간다.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