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동

1101호 _ 흰

by 화몽

찌잉찌잉찌끄그윽이 잉… 운다. 울고 있다. 그러다 고개를 든다. 들어 올린 고개를 서서히 흔든다. 옆에서 더 옆으로. 조금씩 더 조금씩. 흔들리는 고개를 따라 네 흑단 같은 머리칼이 운다. 흔들리는 검은 머리칼 끝에서 검은 눈물이 흩 날린다. 그림자 속 눈이 흩어진다. 검은 눈을 깜박인다. 깜박이는 눈발은 열린 창을 건너 들어온다. 검은 새가 찌이잉거리며 난다. 바람을 타는 날개는 하늘을 켠다. 찌그러지는 소리가 현을 타고 머리칼을 더 흔든다. 씨꺼먼 눈발이 점점 거세진다. 나는 창을 닫는다.


창을 닫자 밖은 더 깊게 검어가고 안은 흔들리는 검은 머리칼을 타고 흩날리는 흰 눈이 쌓여간다.


<1101호>


1101호 안에는 기이한 눈발이 날리고 쌓여가는 눈에 나는 묻혀 들어간다. 무모하게 하얗게 되어간다.

1101호는 그득하게 차오르는 흰 집.

1101호의 작은방에서 막 달아오르는 생명을 싸매던 흰 배넷저고리를 묶어주던 하얀 손가락을 기억한다.

1101호의 큰방에서 막 꺼져가는 생명을 닦아내던 흰 손수건이 쌓여가던 하얀 초침이 똑닥거린다.

1101호에 아무렇게나 벗어놓은 하얀색 나이키 운동화가 더 하얗게 되어간다.


운동화에 들러붙은 길가를 지우려면 하얀 비누를 풀어놓고 흔들면 된다.

수백수천수만 그 너무를 채운 점들을 투명한 물안에 흔들어 거품을 키운다. 철썩거리는 파도가 나를 하얀 거품 앞으로 데리고 간다.

흰 거품들을 품고 내게 달려드는 파도는 내 나이키 운동화를 박스 속에서 만 꺼내 하얀 신발줄을 엮어가던 그때로 데리고 간다.


마우스를 꺼내 하얀 모니터 창을 본다. 드르륵 굴러가는 마우스의 볼이 거품을 닮았다. 그중하나를 내 손안에 안고 파도를 찾아간다.

여기저기 여행 사이트들을 커놓고 파도를 만날 계획을 짠다. 어디가 좋을까? 더 하얀 거품이 들끓어 오르는 곳, 새 하얀 물결이 나를 덮칠 그곳, 그래서 우윳빛으로 투명해질 나를 기대하며 마우스를 빠르게 굴린다. 두어 군데를 비교하던 손가락이 한 점에 멈춘다. 두둑 툭툭 검지와 중지로 책상 위를 두드리며 나는 한 점에 멈춘다.


‘그래, 여기가 좋겠어.’


2월의 동해 바다다. 동해의 바다는 2월은 더 희게 빛난다. 적어도 내겐 그렇게 기억된다. 누군가에게는 푸르고 반대편은 검고 그 심연은 북미의 울창한 초록일지 모르지만 그렇다. 내게는 눈부시게 하얗다. 스크롤을 아래위로 굴리며 기차 시간을 내려본다. 해가 꼭짓점을 찍고 바다 너머로 돌아가려 할 때가 가장 희다. 수면을 내려 찍는 2월의 햇살이 파도 위를 빠를게 구르며 더 하얗게 빛난다. 나는 그 순간을 만나러 간다. 기차역에서 내려 해변까지 갈 버스노선을 확인한다. 대략의 이동 시간을 계산하고 미리 점찍어놓았던 기차표를 예매한다. 떠남은 항상 즉흥적이다. 내 삶도 그랬고 네 순간도 그렇게 증발해 간다. 계획은 흰 수건을 비틀어 짜듯 꼬이고 나는 그렇게 울퉁불퉁한 껍질로 그대로 말라간다.


여기 1101호에서 하얀 나무껍질이 되어간다. 나이키 운동화는 더 희게 마르고 허연 먼지를 털어내고 흰 운동화 끈을 조여 묶는다.


나는 1101호를 나선다. 성글게 짜인 새하얀 뼈의 부름처럼 삐그덕거리는 현관을 열고 새운동화보다 더 하얀 나이키 운동화를 쑥 내민다. 툴툴거린다. 꼬인 신발끈이 어색하게 끝을 숨긴다. 긁어내듯 뽑아내는 손톱이 까슬거린다. 어딘가 긁힌 건가? 미세하게 조각난 손톱의 톱늬가 시곗바늘을 흔든다. 엘리베이터에서 나와 앞니로 손톱을 뜯어낸다. 어긋난 면낯은 결국 다른 상처를 부른다. 작은 소리로 너, 너, 너… 작은 구멍에 구멍이 더해지면서 나는 설 자리를 잃는다.


1101호를 나선 나는 진흙을 개어낸다. 치덕거리는 흙내음을 읽어낸 나는 귀신처럼 찾아낸다. 내게 생긴 수만은 자국들을 매워낸다.


바다로 향하는 나는 1101호를 나왔다. 끝을 알고 가는 나는 1101호를 뒤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