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을 보다.
꾸다 보면 결국은 깨어날 눈,
내려진 겉을 너머 은근히 드러나는 하늘 너머의 실타래는 희게 더 희게 지어져 간다. 쉬어지는 숨은 새끼손톱아래를 파고드는 가시처럼 아리고 하… 숨겨진 결은 찢긴 공책 속 줄에 맞춰 써 내려간 꿈이라 흡… 곁을 내어준 나는 이렇게 낯설어진 너를 놓아주려 달린다. 두 발을 차디찬 구름 위에 가지런히 놓아두고 두 손은 두툼해졌다 가라앉기를 반복하는 가슴 위에 올려놓고 두 눈은 손바닥 한쪽과 그 반쪽만 한 창 너머로 던져놓고 오른다.
오른다.
오르고 또 오르다 구르는 나의 눈동자는 하얗게 펼쳐진 그래서 푸근할 낮은 온도의 빛에 입김을 불어 감는다. 되감겨오는 바람은 푸르다 못해 하얗게 쌓여간다. 딱 3도의 각으로 내려앉은 내 어깨 위에는 쌓이기 어려워. 쓰윽쓰윽하고 모조리 미끄러져가 버린다.
어깨를 적시는 흰 바람.
젖어버린 머리끝은 어깨 아래로 드리우고 두 손을 모아 문지르든 내 가슴은 짝을 잃고 가라앉는다. 반쪽의 가슴은 가난한 노래를 부른다. 부르던 노래는 끝내지 못한 채 아래로 아래로 조아리고 있던 두발의 그 밑으로 가라앉는다. 그 밑에서 가지게 될 노래는 더 가난하고 쓸쓸하고 더더더. 아쉬워 두 입술을 질끈 깨물겠지.
시월쯤 나는 1에 하나를 더한 그때, 그런 계절앓이는 매년 더 힘겨워진다. 유독 이번 겨울을 지나는 길목은 소란스럽다. 조용히 다물고 있는 입안에서 맴도는 기침을 안으로 삼키며 걷는 낯선 선택은 나의 목마름에 하얀 소금을 뿌린다. 침을 삼킬 때마다 넘어오는 짠맛은 쓰디쓰다. 눈빛에 쓸려내려 한 겹 더 앙상해진 가지마다 더해지는 눈발에 쓴 걸음이 남긴 자국은 더 깊고 더욱더 푸르다. 푸르다 못해 하얗게 차오르는 그 길, 밑을 가늠할 수 없던 그 바다의 바닥에서 울려 퍼지는 울음소리다. 반쯤 눈밭으로 숨어 나를 넘겨보는 낮은 나무둥이가 던져내는 단어들이다.
‘너는 누구니?’
‘너는 어디서 왔니?’
‘너는 왜 여기에 있니?’
‘너는 무엇을 원해?’
‘너는…?’
낮은 음색으로 나를 두드리는 그런 단어들이 내 마음 안으로 젖어들고 나는 눈밭으로 빠져들고 한낮의 나는 그렇게 잊혀간다. 하얗게 눌어붙은 발자국만 오롯이 나를 따라온다. 왼발 오른발 왼발 오른발 그렇게 하나하나가 둘이 되고 둘둘이 자박자박 모여 길이 된다. 낯선 이곳에 나는 온전히 하나고 불어오는 호수의 파도소리만 이런 나를 기록해 간다. 오고 가고 가고 오는 써억 써억 소리가 비벼낸 돌맹이들은 호숫가의 시간만큼 깎여가고 가고 가고 또 가는 나는 깎여가는 시간 속으로 다시 간다. 매일 시작하던 인사와 일과를 마치면 물어내던 안부도 다른 방식으로 희미해져 가던 지난겨울의 시작. 이도 저도 아닌 우리가 되는 데 걸린 시간은 참 짧기도 하다.
‘나는 나.’
‘나는 너의 마음에서 왔지.’
‘나는 지워져 가는 나를 지우기 위해 여기에 왔어.’
‘나는 무엇을 알기를 원하고…’
‘나는… ’
이런 묵음의 대화조차 사치라 여겨질 즈음 푸른 하늘은 희끝한 구름들 속으로 넘어가고 설산의 테두리도 하늘로 번져가 눈을 뜰 수 없을 만큼 너른 날갯짓을 하는 철새의 틈으로 걸어 들어간다. 날개는 네게 있지만 두발은 내게만 있어 뛰어들 수밖에 없는 나는 날수도 없다. 세상에서 미련하게 등을 돌린 나는 이곳에 있고 이곳에 하얀 길을 낸다.
눈부시게 흰 파랑의 자락을 향해 내 손끝을 던지는 나, 위대한 개츠비가 너머 보던 호수의 한편에 서있다. 그의 등을 바라보며 걷는 나는 초록을 넘어 하얗게 새어져 간다. 닿을 듯 말 듯 차오를 듯 말 듯 꺼질 듯 말듯한 숨을 곁에 두고 푸른 숲가를 걷는다. 그래서 꺼져가는 길의 자국들을 넘어 기꺼이 한 발을 내민다. 찌질하게 녹아버리고 말 나는 온몸으로 춤을 추며 기침을 뱉어낸다.
눈을 감을 수밖에 없는 나는 이 파랑의 끝이 하얀 천조각에 닿아있다고 오늘의 일기를 걷는다. 걷고 또 걸을 수밖에 없는 나는 흰색의 짙은 농도에 발가락을 담그고 차디찬 오른손을 왼손으로 잡는다. 별빛 끝까지 차오른 눈의 벽에 나를 던질 수밖에 없음에 웃음만 난다.
나는 너로 그려져 간다. 하얀 소금이 사그라져가는 이 푸른 호수를 뒤로하고 그려져 간다.
눈이 부시게 하얀 파랑을 그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