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오늘이 가진 취향은 무엇입니까?"

거창한 자아의 탐색이 아닌 소소한 오늘의 나를 생각해보는 것. 자기찾기.

by 화몽

코발트블루를 풀어 놓은 듯한 하늘. 구름은 너른 호수 위에 떠 있는 조각배처럼 유유히 떠내려간다. 창을 넘어 들어온 아침 햇살이 방안 저 멀리까지 환히 밝히는 오늘. ‘아, 가을이 오는구나.’ 하늘빛을 보니 새 계절이 다가온다는 생각에 설렌다. 며칠 전까지 휘몰아치던 비바람이 같은 하늘 아래였다는 것이 거짓 같았다. 태풍이 아쉬워 떠나지 못하는 여름을 밀어낸 것일까? 불어오는 바람이 제법 시원한 아침시간 나는 따뜻한 차 한 모금을 넘겨본다.

" 언제부터 였지? "


나는 찬 음료를 마시지 않는다. 따뜻한 음료만 고집한것이 언제쯤인지는 정확치않다. 어느 순간 이 따스함이 포근하고 편안했다. 덩치가 큰 곰 인형을 안고 폭신한 이불 위에서 뒹굴거리며 엄마를 부르던 어린시절 같다 할까? 땀이 비 오듯 떨어지는 한여름에도 나는 따뜻한 음료를 마신다. 커피숍에서 종업원이 '따뜻한 라떼 맞으시죠?' 라며 재차 확인한다. '난 따뜻한 걸로!' 얼음이 동동 떠 있는 커피를 가져오는 이들이 종종 있어 주문을 부탁할 때도 강조한다. 건강 타령한다며 노인네 보듯 내게 핀잔을 주는 친구도 있지만, 이건 내 취향인걸. 한겨울에도 아아를 외치면서 왜 나만 특이하게 보는걸까? 따뜻한 음료를 마시면 단 한 번의 목 넘김만으로도 느낄수 있다. 온몸으로 퍼지는 온기가 내게 전하는 만족감이 좋다. 건강을 위해 마시는것이 다가 아니다. 자동 미소를 만들어 내는 나만의 취향 그것을 하나씩 찾아 나가고 있을 뿐이다.


올여름 장마는 특히 길었다. 기상청 관측 이래 가장 지긋지긋하게 이어진 비였다. 이 비가 지인들과의 대화창의 주된 화제거리였다. 장대비를 뚫고 간식거리를 사러 나가는 길에 찍었다는 사진 한장이 대화창속에 올라왔다. 푸르름이 가득한 동네 어귀를 걷는 한 여인의 뒷모습. 이를 담겨있는 사진을 보며 나는 이런저런 생각에 빠졌다. 이 비에 분홍색 원피스와 분홍색 우산이라니, 발목까지 내려오는 원피스를 입으면 빗물이 다 튈텐데라며 쓸데없는 걱정이 들었다. 그러나 내게 그녀의 하얀색 플랫슈즈가 눈에 들어왔다. 순간을 담아낸 사진 속 그녀의 발걸음은 당당해 보였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하나로 관통한 취향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정면을 바라보며 꽂꽂히 허리를 세우고 젖은 바닥을 힘껏 딛고 걷는 뒷모습이 그녀를 말해주었다. 분홍색을 좋아하는 그녀의 발걸음에 그녀만의 향기가 묻어나고 있었다.


취향이라는 단어로 대변될수도 있는 나. 내안의 자아를 찾기 위한 노력들이 커지고 있다. 가부장적인 위계질서가 당연시되었던 한국 사회는 이미 변했다. 대다수의 규칙에 순응해 살아가던 이들이 감춰진 나를 찾기 시작했다. 나는 식당에서 음식이나 음료를 주문할 때 나는 다른 이들과 메뉴를 맞추는 편인가? 먹고 싶은 것을 과감히 말하는 쪽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이곳에는 '내가 먹고 싶은 게 없다!' 선언을 하고 다른 곳에서 먹고 오겠다는 용감한 발언을 주저치 않는가? 내 경험 속 나역시 메뉴는 둘 이상을 넘지 않도록 맞추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세상이 변해간다. 소신 발언, 내 취향의 커밍아웃이 필요치 않을까? 심지어 내가 이것을 좋아하는지도 몰랐다는 이들도 많다. 더이상 남과 다름을 문제로 낙인찍지 않는다. 나이 먹은 것이 문제가 될까? 유치하다는 단어를 어리숙함과 연결해 분홍색 취향의 그녀를 오해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녀의 걸음은 홀로 거침없이 당당했다. 적어도 내게는 그렇게 보였다.


2020년, 나는 코로나 19로 예상치 못한 한 해를 보내고 있다. 북경으로 이사를 하자마자 불거진 전염병을 피해 한국행을 택했고, 이번 주 다시 북경으로 돌아왔다. 겨울 코트 하나 달랑 들고나와 3계절을 지낸 것이다. 본의 아니게 당장 입을 옷들을 새로 살수 밖에 없었다. 평소 눈팅만 하던 스타일의 옷들을 과감히 골라봤다. 이런저런 이유로 손이 잘 가지 않던 옷들이 대부분이었다. 따뜻한 다크초콜릿 향의 커피 한 모금을 입에 머금은 듯 입는 순간 평온해졌다. 그동안 의식주로 표현되는 나의 취향을 스스로 무시하며 지낸 게 아닐까? 거창한 자아발견이 아닐지라도 이 얼마나 놀라운 알아차림인가. 화려한 꽃무늬 옷들이 이렇게 무난할 수 있다니. 튀는 색을 입는다고 도드라지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차리는데 무려 44년이 걸렸다. 심지어 제법 잘 어울린다.


부처의 수행, 명상가의 시간처럼 어려움이 동반하는 길이 나를 향하는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스쳤다. 자아, 자기, 자존감 같은 어려운 말보다 짜장과 짬뽕의 취향에 거짓이 없는 나. 반숙과 완숙 중 하나를 선택하거나 과감히 '삶은 달걀 싫어요'를 외칠 수 있는 나를 찾아보자. 이 길이 어렵고 고단한 것만은 아닐듯하다. 얼마 전 읽은 '아티스트 웨이'에서 소개된 '아티스트 데이트'도 이런 자아찾기의 한 방법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나의 나에 의한 나를 위한 시간을 만들어 선사하면 이전엔 몰랐던 모습이 살짝 드러날지도 모른다. 오늘도 난 '똑똑' 내 마음에 노크한다. '화몽님 오늘 시간 좀 있나요?'라며 나만을 위한 데이트를 신청한다. 분홍우산에 분홍 옷을 입고 빗길을 걷는 그녀처럼 꽃 치마를 휘날리며 따뜻한 커피에 달큰한 디저트를 만나러 나선다.


" 당신의 오늘이 가진 취향은 무엇입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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