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9월 17일 목요일 밤 9시 42분.

중국 북경에서 2주간의 격리를 마치고 집으로 향하며.

by 화몽

2020년 9월 16일 수요일 오후 3시 42분. 격리 기간 중 마지막 코로나 검사가 3시로 예정되어 있었다. 시간은 지났으나 닫힌 문 밖은 쥐 죽은 듯 조용했다. 나는 격리 기간에 소식을 전하기 위해 만들어진 위챗 단체방을 열었다 닫았다를 반복했다. 몇몇이 검사가 어떻게 되었냐며 질문을 올렸지만, 묵묵부답. '조금 늦어지는 걸 거야. 곧 소식이 있겠지.'라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그러나 여기는 중국. 걱정이 목구멍을 타고 올라와 연신 마른침만 꼴각거리며 넘어갔다. 문 가까이에 서서 복도에서 나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지금 이 순간 이곳에는 고요만 가득했다. 나는 애꿎은 문고리만 잡았다 놨다 되풀이했다. '문을 한번 열어 볼까?'라는 생각에 손에 힘을 주는 순간,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똑. 똑. 똑."

왔다. 나와 아이는 빼꼼히 고개를 내밀고 이름을 확인했다. 4번째 코로나 검사라 척하면 착하고 입이 벌어졌다. 긴 면봉이 기분 나쁘게 내 혀를 쓸고 목구멍 언저리를 스쳐가며 확인을 마쳤다. 비행기 탑승을 위한 첫 코로나 검사로부터 17일이 지났다. 오늘 밤만 지나면 집에 갈 수 있다. 딱 하루 남았다. 7개월간의 코로나 방랑자 생활에 마침표를 찍는 순간이 눈 앞에 있었다. 아이와 나는 서로의 얼굴을 마주 봤다. 흥에 겨워 춤이 절로 나왔다.


2020년 9월 17일 목요일 오전 5시 18분. 평소보다 좀 이른 시간에 눈이 떠졌다. 조금만 더, 애써 잠을 청해봤지만 쉽지 않았다. 십여분 스트레칭을 마치고 물 한잔을 준비해 책상 앞에 앉았다. 오지 않을 것 같던 날이 드디어 왔다. 오늘은 2주 격리의 마지막 날이다. 눈물이 핑 돌고 만감이 교차했다. 정말 힘들었다. 내 의지로 땅을 밟고 하늘을 보는 일, 좋은 이들과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 가벼이 여겼던 일상의 소중함과 감사함을 심장 아래에 새겨놓는 2주였다. 아이는 온라인 수업을 들었고, 나는 캘리그래피를 쓰며 책도 읽었다. 그렇게 마지막 날의 초침을 돌아갔다. 마지막 저녁으로 빵과 우유가 나왔다. 14일간의 식사 중 가장 맛있다며 유니가 콧노래를 불렀다. 굳게 닫혀있던 문을 우리가 열고 나갈 수 있다는 생각이 버터향의 고소함을 더했는지도 모르겠다.


"똑. 똑. 똑."

이 하루 3번의 식사 시간과 필요한 물건들을 전달해줄 때 나는 소리이다. 외부와 철저히 차단된 시간 속에서 하늘에서 동아줄이 내려오는 소리인 것이다. 수십 번의 노크소리가 나를 찾아왔지만 지금 이소리는 전혀 다른 의미를 지녔다. 409호라고 적혀있는 노란 서류 봉투 안에는 자유를 위한 보증수표가 들어있었다. 14일간의 격리 확인증과 2번의 핵산 검사 결과지이다. '당신의 코로나 19 결과는 음성입니다.'라는 한 줄 위에 찍혀있는 붉은색 확인 도장. 서류의 여권번호와 이름을 꼼꼼히 확인했다. 마지막으로 유니와 나의 핸드폰의 헬스키트 어플을 열어보았다. 이 것이 마지막 관문이다.


'어... 이게 아닌데. 어..' 사라졌다. 우리의 신분증과 연동되어 여타 장소를 드나들 때 제시해야 하는 인증서이다. 그런데 그 중요한 것이 갑자기 사라졌다. 눈앞이 일순 노랗게 변하더니 총천연색으로 번져 나갔다. 이럴 때가 아니다. 정신을 차리고 사전을 열어 정확한 의미를 찾아봤다. 14일의 격리 기간이 지나지 않았다는 내용이었다. 그건 오전이랑 같은데 왜 여권 업로드해놓은 게 사라진 거야! 한국에 있는 동안 통신요금 내는 것을 깜박해서 중국 전화번호를 날려먹었다. 위챗 머니와 아이의 등교 문제로 핸드폰을 바꿔가며 로그인 로그아웃을 하다 날려먹은 게 아닐까 하는 걱정이 덜컥 들었다. 창 밖을 내다보니 가족들을 데리러 온 차들이 이미 주차장을 가득 메웠다. 곧 나가야 하는데, 이럴 때가 아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확인을 해보자.


'후니 엄마, 혹시 핼쓰 키트 이상해지지 않았어요?'... '앗! 유니네도 그래요? 아이들은 전이랑 같은데. 제 것만 이렇게 변해서 순간 심쫄했어요. 나만 그런 게 아닌가 봐요. 다행이다.'


그래, 그럴 거야. 검사 결과를 업데이트하느라 꼬였을 거라며 놀란 가슴을 진정시켰다. 공심재 백일장이고 읽으려고 꺼내놓았던 책이고 뭐고 공포의 한 시간을 보냈더니 아랫배가 살살 아파왔다. 머리는 띵, 십 년은 쪼그라든 느낌이었다. 남편도 밖에서 여기저기 알아보았나 보다. 내일이면 괜찮아질 것 같으니 걱정 말라고 전했다. 짐들 잘 챙겨 조심히 어서 나오라고. 고생 많았고 잘 견디어줘서 고맙다고.


"똑똑똑"


"나가자. 유니야. 드디어 자유다."

"응. 엄마!"


2020년 9월 17일 목요일 밤 9시 42분. 왔다. 드디어 시간이 되었다. 혹시나 빠뜨리는 것이 없는지 유니와 나는 방을 다시 한번 살폈다. 자기 덩치만 한 가방을 유니는 묵묵히 끌고 밀며 나갔다. 2020년 초부터의 시간이 꾹 눌러 담은 6개의 거대한 케리어를 굴리며 숙소 밖으로 나가자 저 멀리 남편이 보였다. 반년만에 만남이었다.

아빠에게 뛰어가는 유니를 바라보며 나는 잠시 멈춰 고개를 들었다. 까만 하늘에는 두어 개의 별들만 반짝일 뿐이었다. 지난 2주간 뿌연 유리 너머로 그리도 그리워했던 하늘이었다. 끝을 가늠할 수 없이 너른 밤하늘. 사방에서 자유와 가족을 찾은 이들이 기쁨에 환호를 질렀다. 나는 이곳을 빨리 나가고 싶어 서둘렀다. 남편이 자동차 키를 누르자 주차장에서 헤드라이트가 번쩍였다. 그래, 시작! 새로운 전환점을 알리는 자동차의 불빛이 우리를 반겼다. 오늘 밤이 지나면 작은 전구의 깜박임과 비교할 수 없는 밝은 내일이 열리겠지. 희망으로 가득 찬 아침해를 만날 생각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너무나 당연해 소중함을 까맣게 잊고 있었던 그 하루를 감사히 맞이하리라 다짐해보며. 가자! 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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