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찾아가는 길, 더 이상 숨지 말고 당당하게 나아가길...
"자자. 조용히 해주세요. 다음 순서는 2학년 10반 박미소 친구의 순서입니다.
와우~ 혼자 나온 친구는 처음인데요. 노래는... 박수로 불러볼까요?"
그 순간 내 얼굴은 꽉 차게 익혀 바닥에 툭 떨어진 홍시처럼 터지기 일 초 전이었다. '미쳤지. 미쳤어.'를 주문처럼 외우며 정신줄을 안드로메다로 보내버렸던 순간이었다. 어디서 밑도 끝도 없는 용기가 솟았는지. 고등학교 2학년 수학여행 장기자랑 시간에 나는 출사표를 던졌다. 사람들 앞에 나서면 머리부터 발끝까지 붉게 물들던 내가 말이다. 몇 주 전부터 아이들은 팀을 짜 머리를 맞대고 맹훈련을 했다. 나는 연습은커녕 노래만 몇 번 들은 게 전부였다. 검은색으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가리고 동네 옷가게에서 득템 한 선글라스로 얼굴의 반을 숨겼다. 페어즐리 스카프를 코까지 올린 채 컴컴한 무대 한가운데에 섰다. 총천연색 조명이 들어오고 쿵쾅거리는 음악은 던져졌고 난 그저 움직였다. 아이들은 이미 난 다른 사람이 되었다. 노래가 끝나고 보니 썼던 모자는 집어 던졌고 검은색 야구점퍼도 반쯤 걸친 상태였다. 500여 명의 친구가 보는 앞에서 나 지금 무슨 짓을 한 거니? 부끄러움은 끝이 없었지만 주체할 수 없는 흥분감. 이 쾌감은 대체 무엇일까?
걷고 뛰고 구부리고 펴는 모든 몸짓은 아름답다. 생김새가 주는 메시지와는 다른 의미가 존재한다. 그래서 나는 사람들의 움직임을 자세히 관찰하는 편이다. 어릴 때는 티브이에서 보는 댄스 가수들의 춤이 전부였고 무용에 대한 사춘기 소녀의 반항심이 있었다. 그러나 머리가 희끗희끗해지니 태풍의 움직임 같은 그것의 아름다움이 궁금해졌다. 격정적으로 불어오는 바람 속에 새벽의 고요함을 동시에 지닌 춤, 그저 경이롭다. 그래서 나의 버킷리스트 일 번은 발레를 배우는 것이다. 웬 춤, 그것도 발레라니. 구부정해지는 허리나 콩콩 두드려야 할 나이지만 토슈즈에 몸을 맡기는 것에 도전해보고 싶다. '나는 사차원인가?'라는 생각이 하루에도 여러 차례 든다. 아니 오차원, 육, 칠, 팔... 무한대의 공간에 존재하는지도 모른다. 춤도 노래도 그림도 글도 그렇다. 자체 만족감이 주는 포만감은 청담동 초밥집을 싹쓸이한 배부름도 대신할 수 없으니. 내 생각을 표현한다는 것 이전의 원초적 배출만으로도 찐 즐겁다. 남의 눈 따위는 사실 안물 안궁. 그래, 난 이상한 사람인 거다.
미대 서양화과에 입학하자 아빠가 내게 금지 항목을 적어주셨다. 일종의 서약서였다. 자세히 읽지도 않고 오케이 했다. 서약서에 서명을 마치자 흐뭇한 미소를 지으시며 아빠가 한마디 휙 던지셨다.
"요즘 예술가라는 인간들은 반쯤 미쳤어. 그림이 고상해야지 다들 정신병원에 가야 해. 넌 절대로 그러면 안된다. 여자가..."
요즘 같으면 '아빠! 지금이 어떤 세상이냐며!' 팔짝팔짝 방방 뛰어오르고, '라떼 할배는 어쩔 수 없다.'라고 하겠지. 하지만 25년 전에는 달랐다. 사실 새내기 대학생이 아빠의 서약서를 얼마나 맘속에 곱씹었겠으며 아빠의 말씀을 귀담았겠는가. 아빠의 걱정은 일도 쓸데없었다. 그때의 난 노는 게 제일 좋았다. 아빠가 우려했던 예술을 하는 사람들과는 빛의 속도로 멀어져 갔다. 그랬던 내가 요즘 철부지 꼬마처럼 코 질질 흘리며 갬성팔이 중이다. 나이 탓일까? 호르몬이 문제야. 아이들도 자라서 살닿게 엄마를 찾는 일이 드물어가니. 이성적 사고로 눈물을 닦으며 꼬리뼈를 내리치는 생각들로 멍하니 커피만 뻐금거린다. 내 자리, 식탁 의자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니 어제와 다른 색감이 그득하다. 해가 서쪽으로 기울면 그만큼 우리의 코끝은 차가워지고 마음은 뜨거워 지겠지.
오늘 아침 문득 박효신의 '야생화'를 듣고 눈에 눈물이 고이는 내 모습에 아빠의 목소리가 비췄다. 내게 왜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 '아! 그랬구나. 아빠가 그랬던 거야.' 나는 아빠의 판박이이다. 나이가 들어가며 그냥 그분의 마음과 생각이 읽힌다. 학교 동기 회보에 낼 글이라며 읽어보라 내게 내미신 짧은 가을 인사 글을 보는 순간 '와'하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사진 기자셨던 아빠가 찍은 손주들의 사진들을 보고 있노라면 알겠다. 아빠가 예술을 한다는 자, 그림을 그리고 노래하고 연주하며 춤을 추는 사람들을 그리도 혐오스러운 존재로 깎아내렸는지를. 아빠의 가슴 안에도 뜨거운 불씨가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오히려 두려웠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아빠에게서 나를 보듯이, 그분도 자신과 꼭 닮은 내가 사차원의 씨앗을 가지고 있음을 아셨을 거다.
아빠가 내게 담아주신 소중한 아이, 오랜 시간을 묵혀왔다. 켜켜이 쌓여간 배양토속에서 고개를 빼꼼히 내밀 때가 되지 않았을까? 칠칠맞게도 눈물이 주르륵. 코를 팽하고 풀며 쌓이는 휴지를 바라보며 이것은 청승이 아니라 계절 앓이라 우겨본다. '띠리링, 빨래가 다 되었다.'라고 세탁기가 반짝거리네. 시계를 보니 벌써 10시가 넘었다. 오늘의 촉촉 놀이도 여기까진가? 아쉽다. 아직도 나는 목마르다. 조금만 더 촉촉한 마음으로 시간을 보내보련다. 아파트 건너 찻길에서 빵빵대는 소리가 시끄러워도 창을 열고 가을바람에 따라 흐느적거려본다. 듣도 보도 못한 발짓과 손짓으로 빨래를 털어 널어본다. 흔들흔들 궁둥이를 흔들어본다. 오른쪽 하늘 왼쪽 땅을 꾸욱 찔러보며 리듬에 몸을 올린다. 님들은 웃을지 몰라도 나는 춤이라 우겨보며 흥은 살리고 한은 탈탈 털어낸다. 내 안의 똘씨여 나오렴. 도망가는 건 부끄러우니, 더는 숨지 말아야지. 당당해질 나이다. 낭랑 17세가 아닌 낭만 44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