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의 최고봉 대청을 그리며.
나는 오늘도 올연히 고독을 즐긴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같은 곳을 지키는 벅수의 삶을 나 스스로 선택했다. 그렇다. 나는 이곳의 터줏대감이다. 아니지, 터줏할아범이라는 말이 더 맞을지도 모른다. 1년 365일을 넘어 몇 곱절이 넘는 날들을 한결같이 서 있었다. 이 근방 노인네들이 앞다투며 저희가 더 너르고 높은 세월을 살아왔다 싸워댄다. 콧방귀가 저절로 나온다. 손주뻘인 녀석들이 내 앞에서 감히 제 이름 석 자를 내놓을 수 있으려나? 거참. 내가 잠자코 있어야지. 나이 들어 나서는 것은 그 모양새가 보기 싫으니 말이다. 바다와 육지가 서로의 자리를 나눠 가지는 날이 내 생의 시작일지도 모르기에.
매일 내 앞에 펼쳐진 바닷가 모래알만큼 많은 이들이 나를 찾거나 곁을 스쳐 새로운 길을 떠난다. 깊은 밤 어둠을 소란스럽게 만들던 별들도 숨을 죽이면 나를 찾아 오르는 이들의 발걸음 소리가 땅을 울리기 시작한다. 가장 빠르게 내게 오르는 길은 그들이 걸음을 재촉하면 3시간 정도 걸린다고 한다. 해수면을 뜨겁게 뚫고 올랐다 이내 세상을 한입이 삼켜버리듯 심해로 잠기는 해의 움직임. 내 곁에서만 볼 수 있는 장관이다. 자연의 법칙에 지리할만큼 순응하는 움직임. 그러나 나는 억 겹의 시간 동안 단 하루도 같은 광경을 보지 못했다. 하루하루가 새로웠다. 인간들과 나누는 이 풍광은 내 존재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작년 가장 더운 하루 한 모자가 나를 찾았다. 아침 해를 맞이한 그들이 내 그림자 위에 걸터앉아 예상 못한 추위에 서로를 감싸 안고 체온을 나눴다. 작은 밥 덩이를 서로 나눠 먹는 모습에 내 맘도 아련해 왔다. 하지만 내게 드리워진 운무와 바람은 내 소관이 아니니 방도가 없는 터. 이런 이들이 수를 헤아릴 수 없음이 항상 안타까울 뿐이다. 하늘 높이 계신 하느님께 구름을 좀 거두시고 햇살을 내려달라 소리쳐도 들어주시지를 아니하니 내가 이빨 빠진 노인임을 인정하는 수밖에. 그나저나 오늘 새벽 별들이 내게 전해준 이야기 중에 그 모자가 나를 다시 찾아왔다는 반가운 기별이 있었다. 가을의 나를 만나러 와주었을까? 나의 색은 사계절 모든 날 크게 다르지 않건만, 어찌 되었거나 그들과의 재회가 기대된다. 내게 일 년이라는 시간은 발밑 한 알의 흙에도 못 미치는 시간이지만 인간에게는 제법 긴 시간이란 걸 살아오며 알게 되었다.
그래, 내게 오너라. 나를 다시 찾음은 너희가 그만큼 성장하였다는 뜻이다. 한걸음에 뛰어 내려가 얼싸안고 반가움을 전하고픈 마음은 굴뚝같으나 나이 탓인지 다리가 뻣뻣이 굳어 버려 기다리는 수밖에. 평생 한 번뿐인 미관을 준비해 놓으마. 당당히 올라오너라. 오르는 시간 또한 너희 모자를 단단하게 만들어줄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