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블루 처방전, 공심의 심야라디오'로 당신을 초대합니다.
초록색 잎사귀들이 옹기종기 만나 풀향기가 교실 안에 가득하네요. 교실 뒤 창으로 햇살이 들어와 초록 니트와 치마를 입은 우리들을 비춰주어요. 친구들이 모여있어요. 뭘까? 뭐지? 역시, 오늘은 댄스그룹 '노이즈'를 좋아하는 친구가 빈 엽서를 한 보따리 가져왔네요. 여고생들이 모여서 왁자지껄한 사연을 적어요. '오빠들의 노래를 틀어주세요.''***이 오빠들을 좋아해서 병이 났어요. 살려주세요!" 유치하기의 찬란함이 극에 닿았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3학년 10반 친구들은 실력 발휘 중이에요. 한쪽에서는 알록달록 색종이들 속에 마음을 접어 날리고 있어요. 투명한 유리병 속에 소녀들의 핑크빛 바람들이 가득 담겨있어요. 라디오에 사연과 함께 보낼 선물을 준비하고 있나 봐요. 내일은 또 어떤 친구의 마음에 소녀들의 손들이 옹기종기 모여 수다를 떨지 벌써부터 궁금해져요. 봄날 꽃바람처럼 향긋한 이야기로 우리들의 마음을 주파수에 실어 보내겠죠?
오래전 기억이네요. 오늘의 창밖이 주는 울긋 불긋함같은 친구들의 모습. 뭐가 그리도 즐거웠던지. 떨어지는 낙엽에도 배꼽을 부여잡고 웃었더랬죠. 엽서에 쓰인 내용을 읽으며 얼굴은 타오르고. 여고딩들의 순수함이 묻어난 순간들을 백여 장의 엽서에 옮겨 담아 여의도 방송국에 보내곤 했어요. 친구의 사연이 소개되기를 두 손 모아 바라보면서요. 그 오빠들이 저희를, 아니죠. 그 친구의 이름 세 글자를 읽어주기만을 바라면서요. 그 시절 저는 이불속에 쏙 들어가 얼굴만 빼꼼히 내밀고 라디오의 주파수를 맞추곤 했지요. 심야 라디오의 익숙한 시그널 음악과 함께 DJ의 막대사탕 같은 오프닝 멘트가 제게 노크를 했어요. 첫곡이 흐르면 조용히 제 마음도 음악에 맞춰 웃고 울고 찡그리며 이불속을 뒹굴거렸죠. 좋아하는 음악 한곡을 가슴에 품는 일이 요즘같이 쉽지 않았어요. 동네 음반가게 앞을 수없이 총총거리며 침만 발랐죠. 자음 순으로 빼곡히 꽂여 있는 테이프들을 매일같이 확인하며 하루 이틀 저금통의 무게를 늘려갔어요. 돼지 배를 쩍 하고 열어 동전을 한 움큼 쥐고 달려가 그들의 목소리를 주머니에 담으면, 와. 세상이 제 것이 되었던 그때. 그런 노래들은 또다시 사연을 싣고 라디오 채널에서 내가 돌아오곤 했어요.
3년여쯤 전이었어요. 친한 친구들과 함께 소녀들의 시간으로 타임머신을 타고 여행을 떠나봤답니다. 눈가 주름들이 제법 잡 힐법 한 그녀들이 같은 라이오 프로그램을 들으며 온라인 수다방을 열었어요. 밤 10시였던가? 우리의 귀를 따뜻하게 덮어줄 포근한 무릎담요 같은 곳이라며 누군가 추천을 했어요. 친구들과 몸은 떨어져 있었지만 같은 라이오 채널, 함께하는 노래로 그 순간을 오롯이 함께 했답니다. 요즘 친구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심장이 쫄깃하다고 하죠? 순간 제 이름이 이어폰을 타고 들어왔네요. '박미소 님이 사연을 보내셨어요. 지금 친구들과 따로 또 같이 이 방송을 듣고 있다고, 고등학생 시절로 돌아간듯한 마음으로 신청곡을 보내셨네요. 신청하신 곡은 바로 이곡입니다. 친구분들과 우정 앞으로도 소중하게 이어가시기를 바라면서...' 저와 친구들은 순간 조용해졌답니다. 같이 이야기를 나누며 듣고 싶다고 함께 하고 싶다고 설마 실시간 사연이 소개가 되겠냐며 보냈던 문자 속에 담긴 저희의 모습이 전국 방방곡곡으로 울려 퍼져나간가 죠. 한 친구는 감동이라며 눈물을 찔끔, 누군가는 이런 시간을 나눌 수 있는 우리가 사랑스럽다며 호호, 저는 무한 즐거움에 가슴속이 뜨거워졌어요.
세상은 정말 빨리 변해가요. 그래서 아쉬울 때가 너무나 많아요. 아직은 꼭 잡아두고 싶은데 손가락 사이로 흘러가버리는 것들에 맘 한편이 아려오기도 해요. 그 시절 그때가 그리워 홀로 허공에 그려볼 때가 종종 있어요. 그런 맘 저 혼자의 것이 아닌지 요즘 '레트로'라는 단어가 여기저기서 들려요. 지난주 제가 한 지인의 타임머쉰에 동승했지요. 박미소가 아닌 화몽이라는 이름으로요. 주파수를 타고 동그란 지구를 한 바퀴 돌며 지구인의 화합을 이루지는 못했지만요. 공심님과 한 시간이 넘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지요. 스피커 너머에서 누군가 제 목소리를 듣고 있다니. 라디오에서 사연을 나누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떨림이 제 마음에 똑똑 노크를 했어요. 제가 북경에서 지내는 이야기와 십여년간 중국이라는 나라에서 보고 듣고 느낀 보따리를 풀어놓았죠. 들어주시는 분들의 마음이 그대로 전해지는 뭉클한 시간이었답니다. 각자의 공간 속에서 서로 떨어져 있지만 비슷한 생각을 하며 같이 고민을 나누고 음악을 함께 들으며 손에 손을 이어 잡고 있는 듯했어요. 진심, 손끝이 따스한 순간. 이런 게 햄볶는 고소함이 아닐까요? 소소하지만 무한한 행복, 이번 주 금요일에도 찾아오네요. 톡톡, 당신의 마음을 두드릴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