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 20년 동안 끈질지게 목소리를 냈다, 댐을 백지화했다
각계각층의 연대로 문정을 지키다
✍ 지리산댐 백지화 운동은 누가 어떤 계기로 시작하게 되었을까.
* 지리산댐 백지화 운동의 시작: 1991년 경남 산청에 대규모의 양수발전소 건립 계획이 세워지면서 아름다웠던 '고운동'은 댐 건설로 인해 수몰되었죠. 댐 개발에 반대하는 사람들과 환경단체의 목소리가 있었지만, 국가적 이익이 소수의 권익을 억누를 수 있었던 시기였기 때문에 금방 묵살되었어요. 당시로서는 국내 최대 규모였기 때문에 보상금을 받기 위한 이들의 목소리도 컸고, 여러 이유로 인해 3년 만에 착공을 하게 되었죠.
1998년 산청 양수발전소가 거의 완공될 무렵, 정부는 문정댐 건설 계획을 추가 발표했어요. 경남 함양군 휴천면 문정리, 지리산 북부 하천 엄천강을 최대 높이 141미터, 길이 896미터의 초대형 댐으로 막겠다는 계획이었죠. 지리산 칠선 계곡, 백무동 계곡 초입을 호수로 만들어 버리는 무지막지한 발상이었어요. 처음에는 소수만이 '문정'의 댐 건설을 반대했지만, 점점 많은 사람들이 목소리를 더하며 지리산댐 건설 백지화를 요구했죠. 1999년 진주환경운동연합은 지리산댐 백지화를 위해 댐 건설 예정지 주민들을 만나고 반대 목소리를 수집했어요. 그 이후 지역공동체, 학계, 종교계, 시민사회가 함께 지리산댐 백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 모든 변화에는 더 나은 환경을 만들려고 노력했던 이들의 품이 있다.
* 본격적인 운동의 시작: 지리산 살리기 국민행동은 주민들의 댐 건설 반대 목소리를 지리산 밖으로 꾸준히 전달했어요. 지리산을 사랑하는 열린 연대는 활동에 물심양면 힘을 보탰죠. 지리산댐 건설 계획이 일시 중단되었던 2002년, '지리산 살리기 국민행동'과 '지리산을 사랑하는 열린 연대'의 결합으로 '지리산생명연대'가 탄생했어요.
* 어떤 활동을 이어나갔을까: 지난 15년여의 시간 동안, '지리산생명연대'를 중심으로 각지의 시민사회단체들이 결합한 '지리산권 시민사회단체 협의회'는 '지리산 문화제' 등을 통해 댐 건설을 비롯한 각종 지리산권 현안을 대중에게 알리는 활동을 전개했죠. 시민사회와 더불어 지역공동체, 학계, 종교계도 각자의 방식으로 지리산 댐 백지화를 위한 목소리를 냈어요.
지역공동체: 20년 동안 지리산댐 백지화 운동에 앞장섰던 선시영 지리산댐 백지화함양대책위원장을 비롯한 주민들은 지리산댐 건설 계획의 허점을 찾아내고, 스스로 정보를 찾고 공부를 하며 반대의 목소리를 냈어요.
학계: 경남 과학기술대학교의 박현건 교수와 인제대학교의 박재현 교수는 전문성 있는 자료와 분석으로 백지화 운동에 참여했어요. 홍수 피해라고는 전혀 없는 지역에 왜 홍수조절용 댐을 짓는 것인지 의심했던 주민들은 박현건 교수의 분석을 통해 지리산댐이 남강과 낙동강 유역 전체의 문제임을 알게 되었어요. 박재현 교수는 수자원공사가 지리산댐 건설 계획의 근거로 삼았던 여러 데이터를 지속적으로 감시해왔고, 남강댐 홍수 조절 대책과 부산 및 동부경남지역 취수원 확보를 위한 대안을 제시하며 변화의 가능성을 구체화시켰죠.
종교계: 1998년 용유담을 예정지로 한 다목적댐에서 천년고찰 실상사까지 수몰 범위에 포함시키는 바람에 불교계를 중심으로 범국민적 반대 여론이 형성됐어요. 하지만 실상사가 수몰 예정지에서 제외되면서 대중의 관심은 금방 식어갔죠. 여전히 남은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역할을 고심하던 불교계는 2014년부터 2017년까지 '지리산댐 갈등 해결을 위한 사회적 대화'를 화쟁위원회의 이름으로 8차례 중재했어요.
2018년 9월 18일, 지리산 댐은 20년 만에 환경부의 "지속 가능한 물관리 정책을 위한 로드맵" 발표를 통해 결국 백지화가 되었어요.
✍ 이 운동은 어떤 변화를 만들어왔을까.
* 중요한 가치를 되찾아야 할 때: 지리산댐 백지화와 함께 댐 건설 장기 계획 상의 12개 댐 계획 모두가 사실상 폐기되었어요. 또한 유역단위 물 관리 정책 수립, 댐 법 개정 등 지리산댐 백지화 운동에서 출발하여 제기된 문제들이 가시적인 변화로 나타나게 되었죠. 국가를 두려워하던 이들의 소수 의견이 있었고, 거기에 힘을 더해 준 시민사회, 소신을 따르는 학자와 선의를 실천한 종교인들에 의해 지리산댐 백지화 운동은 가능했어요. 20년의 세월이 지나는 동안 소수의견은 더 많은 사람들과 공감대를 형성해왔고, 다수의 목소리로 세상을 바꾼 주체가 되었죠.
함께 관심을 기울이고 변화를 만들어가야 하는 과정들이 아직 많이 남아있다.
* 개발계획이 휩쓸고 간 자리, 공동체의 회복이 필요한 때: 오랜 세월 국가에 맞서 오면서 원하는 변화를 만들어내는 동안, 주민 공동체는 분열과 갈등, 배제의 아픔을 겪어야 했어요. 찬성과 반대로 나뉘어 오랜 유대의 역사가 끊어지는 동안, 국가는 분열을 부추길 뿐 봉합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죠. 국가의 무분별한 개발 속에 다치는 공동체가 생겨나지 않도록 앞으로도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필요해요.
지리산댐으로 인해 사라지거나 파괴될 위기에 처했던 지역이 각종 대안적 삶을 모색하는 공간으로 변화하게 되었어요. 이 또한 소중한 것을 20년 동안 지키고자 했던 사람들이 뿌리내린 씨앗이라 할 수 있죠. 이번 기회에 '지리산댐 백지화 운동'이 가지는 의미를 생각해보고 이 변화에 함께 해보면 어떨까요?
앞으로 우리 함께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보아요!
그럼 다시 또 만나요! 안녕!
※ 위 내용은 서울시NPO지원센터 변화사례 아카이브 내용을 축약하여 만들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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